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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하염없는 부러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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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님 따라 나발도 부는 법. 하지만 가끔은 내가 원님이 되어 나발을 앞세웠음 하는 때가 없지는 않다. 


오늘 우리 공장 출판 혹은 문학 혹은 학술 담당하는 친구들 밥상을 흘끗흘끗 살피니 다음주에 소개해 줬음 해서 출판사에서 배달한 신간이 두툼한 무더기를 이루거니와, 개중 보니 움베르토 에코가 있다. 
얼마전 타계한 이 친구는 소위 전공 분류가 쉽지 않아, 소설가이기도 하다가 역사학자이기도 하고, 문화평론가인 듯도 하니, 아무튼 천태만상이라, 그러면서 그들에서 각기 일가를 이루었으니, 그래서 나는 편의상 잡탕주의, 잡식주의 문필가라 해둔다. 국내에서는 에코 열풍이라 할 만한 현상이 있고, 그에 편승해 그의 주저라 할 만한 것은 얼추 다 번역된 줄 알았더니, 그렇지는 아니한 듯, 이 신간이 혹 번역 재판 혹은 수정판인지 확인하지 아니했으나, 대체 이 친구 얼마나 많은 글을 써제끼고 갔는지 모르겠다. 

일전 로마에 간 김에 몇몇 서점을 지나치거나 들렀더니, 규모 큰 곳에서는 에코 코너가 예외없이 따로인 모습을 보고는, 아, 그가 이태리 본고장에서 차지하는 위치 역시 막중함을 여실히 보았으니, 고백하건대 난 그런 에코가 하염없이 부럽더랬다. 시덥잖은 잡글 혹은 깊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글 모아 전업작가입네 하는 이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그 무게, 에코라는 이름이 주는 그 중압감이 나는 한없이 부럽다.  



에코만이 아니었다. 온·오프라인 통털어 이런저런 관계로 얼키설키한 분들이 근자 이런저런 포스팅을 통해 연이어 자기 책을 냅네 어쩌네 하는 소식을 전하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용심이 나서 책 좀 내야겠다 진반농반으로 이야기했지만, 그런 용심을 자아낸 그 책들이 하필이도, 그리고 공교하게 오늘 몰려 들건 무엇이람?  

개중 무언가 대작 한 편을 꼼지락꼼지락 몰래몰래 탈초하는 중이라는 풍문을랑 살랑살랑 춘천발로 들려준 김풍기 선생이 마침내 그 비밀을 저절로 폭로했으니, 보니 《오언당음》  역주라, 슬쩍감쪽 듬덩듬성 이쪽 저쪽 훑어보니 노작勞作이라, 그 노고에 무한 경탄해 마지 않으면서도, 앞으론 1년에 최소 한 권 이상 내리라 하고 두어 종 내고는 십수년째 절필에 가깝게 은둔한 나 자신이 부끄럽더라. 


김영문 선생은 언제나 그렇듯이 묵직한 대작을 또 냈다. 이 분은 이 자리 빌려 잠깐 소개하는 다른 분들과는 조금 결이 달라, 직업적인 전문 번역가다. 한데 그 작업이 나로서는 조금 기이하기만 한 점이, 이 냥반은 왜 상대적으로 수월하면서도 분량이 적은 번역은 거의 하지  않고, 저토록 굵데데한 것만 골라 번역하느냐다. 기간 선생이 선보인 다른 번역에 견준다면 이번에 선보인 《역사, 눈앞의 현실》은 조족지혈에 지나지 않아, 가장 얄팍한 축에 속한다. 혹 이 글을 보는 출판업자가 있고, 선생한테 번역을 의뢰하고 싶거들랑, 좀 짧은 책 좀 맡겨줬으면 하며 거듭하니 부탁한다. 



한편에서는 부러움을 주고, 한편에서는 노고에 찬탄을 자아내는 지인들 신간을 보고 막 돌아서는데, 저자 이름이 익숙한 다른 책이 눈길을 자석처럼 땡긴다. 저 책 역시 그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출간 소식을 접한지 불과 어제라, 틀림없이 내가 아는 그 이름이다. 왜인가? 홍상훈 선생이 술을 즐기며, 마셨다 하면 말술이요, 마셨다 하면 울분 토로라,  《한시 속의 술 술 속의 한시》 라는 타이틀 자체가 그 삶을 대변한다 하겠더라. 

그 잦은 투덜거림을 역작으로 풀어내고자 몸부림했으니, 그 자신 극구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심심풀이 땅콩으로 긁적거린 데 지나지 않노라 한사코 사래칠 것이 뻔하나, 나는 저를 고통의 소산으로 본다. 그래서 그를 연민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가 부럽다.  

돌이켜 보면, 내가 미친 듯이 글이란 걸 쓰고 싶었고, 실제 그랬던 때가 미친 듯한 때였거니와, 요즘 이런저런 일로 그런 증세 비스무리한 것은 아니로대, 도통 글로 손길 가지 않으니, 아! 이젠 더는 글을 쓰지 못할 듯한 불안함이 엄습한다. 

써볼까나? 

무얼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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