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예연구사, 학예사, 연구사]
(오늘 다시 지방직 학예연구사가 화두에 올라 그무렵인 2018. 7. 4. 페이스북에 내가 썼던 글을 옮겨 왔다.)
1. 이미 선배 학예사가 있었으므로, 하계사니, 해설서니 하는 얘기는 다행히 듣지 않고 시작했다.
2. 지자체에서는 과장, 팀장 등의 보직이 없으면 주무관, 실무관으로 불리지만, 일반적으로 “주사님”이란 말을 쓴다. 저 단어가 도통 이해되지 않던 시절, 선생님이란 호칭을 썼다가, 지들은 뭐 그리 특별하냐고, 지들끼리 선생님이냐고 수근대더라. 그래도 난 우리끼리는 아직도 선생님이라고 한다.
3. 지내다 보니 차라리 “주사님”이라 불러주면 다행이더라. 그냥 “OO야” 이름을 막 불리던 사람이 부지기수. 서른, 마흔 넘은 사람들 이름을 막 부르는 문화가 너무 낯설어 차라리 “OO씨”라고 해주라고 했다. 가족같이 이름 부르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4.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 중의 하나는 “계약직”이냐는 소리였다. “학예연구사”라는 직렬이 생소해서 그렇다고 생각은 들지만, 자기들과 다르면 계약직이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시험봐서 들어왔으며 심지어 석사학위 이상이라고 하면, 처음엔 “우와~!” 하다가, 곧 시기질투로 바뀐다. 억울하면 니들도 공부해서 학예사 시험보라고 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지금도 변함은 없다. 물론 학위가 지금 하는 일하고 상관도 없지만.
5. 연구사가 하는 일은 정말 많다. 전문직이라면서 전문역량 발휘하기 어렵다. 행정부터 발굴, 현상변경, 학술용역, 보수정비, 활용사업, 보조금, 천연기념물 구조까지 기타 등등.... 규모가 작은 지역일 수록 저 일을 혼자 다하는 사람들이 많다. 슈퍼맨이라고 좋아할게 아니라 일을 나누고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를 줘야한다.
요즘 페북에 학예연구사에 대한 글이 많길래,
아침에 잠깐 생각나는 일 몇자 적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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