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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동문선東文選은 거질이다.
조선 전기 서거정이 그때까지 전해오는 명문장을 모아 꾸민 책으로 양과 질적인 면에서 높게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 조상님들은 동문선 시를 읽고 감동했을까. 정서적으로 공감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이라고 해서 말과 문장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보다는 그 괴리감이 덜했을 터. 우리는 말과 문장이 따로 논 정도가 매우 심했다.
요즘으로 치자면 한평생 국문시가 아니라 영시 창작에 몰두한 셈인데.
감동적인 영시가 일생에 몇 편 나올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되는 데 필요한, 소요한 시간이 너무 아깝다 하겠다.
20세기가 되어 비로소 국문시가 시 주류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이데올로기적 강제가 사람들 감정의 발산을 막았다.
80년대 이후 쓰여진 시 중 이데올로기적 강제가 강하게 녹아 있는 시들은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기에는 너무 화석화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동문선을 읽어도 느낄수 없던,
80년대 국문시를 읽어도 느낄 수 없던 감동을
요즘은 K팝 가사에서 느끼는 경우가 많다.
비로소 국문시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법을 알게 된 셈이라고 보는데
이런 경지로의 진입이 당대 문사들이 아니라 젊은 K팝 작사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 새삼스러울 뿐이다.
한국에서 시는 수천년간 학대당하다 이제 비로소, 마침내 자기 자리를 찾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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