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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한국에서 학대당한 詩

by 초야잠필 2023.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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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동문선東文選은 거질이다.

조선 전기 서거정이 그때까지 전해오는 명문장을 모아 꾸민 책으로 양과 질적인 면에서 높게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 조상님들은 동문선 시를 읽고 감동했을까. 정서적으로 공감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이라고 해서 말과 문장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보다는 그 괴리감이 덜했을 터. 우리는 말과 문장이 따로 논 정도가 매우 심했다.

요즘으로 치자면 한평생 국문시가 아니라 영시 창작에 몰두한 셈인데.

감동적인 영시가 일생에 몇 편 나올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되는 데 필요한, 소요한 시간이 너무 아깝다 하겠다.

20세기가 되어 비로소 국문시가 시 주류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이데올로기적 강제가 사람들 감정의 발산을 막았다.

80년대 이후 쓰여진 시 중 이데올로기적 강제가 강하게 녹아 있는 시들은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기에는 너무 화석화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동문선을 읽어도 느낄수 없던,

80년대 국문시를 읽어도 느낄 수 없던 감동을

요즘은 K팝 가사에서 느끼는 경우가 많다.

비로소 국문시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법을 알게 된 셈이라고 보는데

이런 경지로의 진입이 당대 문사들이 아니라 젊은 K팝 작사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 새삼스러울 뿐이다.

한국에서 시는 수천년간 학대당하다 이제 비로소, 마침내 자기 자리를 찾았다고 할 수 있겠다.

르네상스적 천재인 세종은 한글의 쓰임새에 대해서 이렇게 갈파했다 "이르고져 하는 바 있어도 자기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 한글이라는 것을 가장 자유로이 이용하여 세종의 원래 뜻에 부합하게 한 사람들은 조선시대 문사도, 20세기 시 창작가들도 아니라 바로 K팝 작가들이다. 이들은 어떠한 언어적 장애도, 감정적 통제도 없이 자유롭게 한글로 자신들 감정을 표현한다. 한국에서 진정한 시창작이 시작되는 순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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