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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한글이 과학적이라는 신화에 대하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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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이 지구상 문자 중에서 가장 과학적이다."

오늘(2012. 11. 7) 광화문 현판 토론회에서 한글 현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되풀이한 말이다. 한글 과학적이 않다고는 말 안한다. 하지만 과학적이라는 말은 "과학적이지 않은 그 무엇"과의 비교를 통해서라야만 가능하다. 과연 한글은 무엇에 견주어서 과학적이라는 말인가?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월인천강지곡



영어가 한글에 비해 비과학적이란 말인가? 불어가 비과학적이란 말인가? 히라카나 가타까나가 비과학적이란 말인가? 한문이 비과학적이란 말인가? 조형 원리, 제자 원리가 과학적이라고? 뭐가 과학적이냐? 발음하는 기관 모양을 본뜬 것이 과학적이라더냐? 그러면 뫼 산을 모양을 본떠 山이라는 글자를 맹글어 낸 상형 한자는 과학적이 아니라더냐? 


한글이 과학적이지 않다라는 말이 아니다. 한글이 과학적인 만큼 다른 문자 체계도 다 다름 과학적이다. 없는 신화 맹글어 내지 마라. 


한글은 과학의 신화에서 빨리 끌어댕겨 내려야 한다. 한글이 과학적이기 때문에 한글날이 공휴일로 지정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을 위해 고안한 지금까지 가장 효율적인 표기 체계이기 때문이다. 


흔히 한글이 과학적이라는 근거로 가장 수이, 그리고 가장 빨리 배운다는 점을 든다. 하지만 배우기 쉽다 해서 그것이 과학적이라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배우기 쉬운 것과 과학은 눈꼽만큼도 상관이 없다.  그건 그냥 배우기 쉬울 뿐이다. 


소위 상주본 훈민정음 해례본



문자를 배우고 익혀 그걸 읽는 것과 그런 문자로 표기한 언어 자체를 이해하는 건 전연 다른 문제다. 한글은 저 과학이라는 신화에서 벗겨내야 한다. 그래야 한글이 산다. 그런 점에서 아래와 같은 언급은 주목해도 좋다. 


한글의 창제에 대한 수많은 연구의 저변에는 '영명하신 세종대왕이 사상 유례 없는 과학적인 문자를 처음으로 만드셨다'는 국수주의적인 주장이 깔려있어서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어떠한 연구도 용납되지 않는 것 같다. 또 우리 학계의 풍토도 한글의 위대성, 과학성, 편의성에 대한 연구라면 얼마든지 환영을 받지만 이에 반하는 연구는 철저하게 외면하거나 배척하였다. 그리하여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비슷비슷한 연구가 반복되었고 이제는 누가 어떻게, 얼마나 더 한글의 우수성을 찬양하는지 경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이해하는 수준의 연구논문이 학회지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정광, 훈민정음과 파스파 문자, 역락, 2012, 11쪽) 


*** 이상은 2012년 11월 7일, 내 페이스북 포스팅을 갈무리한 것이다. 

덧붙이건대, 소위 상주본 훈민정음 해례본을 소장자가 천억원을 요구하니 마니 하는 헛소리도 따지고 보면 다 이 한글 과학이라는 신화가 낳은 촌극이다. 해례본이 무슨 천억원이라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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