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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한반도 횡혈묘橫穴墓 존재를 알린 2004년 공주 단지리 유적

by taeshik.kim 2024.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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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일자를 보아하니 2004년 4월 26일로 나온다. 

공주 단지리 소위 횡혈묘 무덤 발굴성과를 공개한 날이다.

이 발굴은 한반도에서 제대로 된 횡혈묘 존재를 알린 첫 보고라는 점에서 고고학계에서는 비상한 주목을 끌었다.

이 횡혈묘는 영산강 유역 호남지방에서 드문드문 확인되는 전방후원분田方後圓墳과 마찬가지로 왜계倭系 특성이 아주 강한 무덤 양식이다. 

다만 전방후원분과 달리 백제 왕국 핵심 지역 중 하나인 공주에서 확인된 횡혈묘가 덜 민감한 까닭은 전자는 자칫 임나일본부와 맞물릴 수도 있는 폭발성이 있는 것과는 달리,

후자는 설혹 왜인이 묻혔다 해도 공주이며, 이런 백제 중심지에 왜인들이 특정한 구역에 밀집 거주한다 해서 하등 이상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실제 기록을 봐도 백제 왕도에는 왜인 뿐만 아니라 다양한 다른 지역 사람들이 거주한 것으로 나온다. 

이후 이런 횡혈묘가 더러 보고된 것으로 안다.

그 기원과 관련해 분포 양상을 볼 때 왜에서 유래함은 틀림없다.

다만, 거기에 진짜로 왜인들이 묻혔는가 하는 점은 요즘 학계에서는 어찌 추단하는지는 내가 모르겠다. 

앞 사진은 그 발굴현장 설명회에 나온 출토품들인데 전부 토기다. 

이날 비가 왔다고 기억한다. 아래 첨부 기사를 보면 이날 기상조건이 최악이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나는 초반기 사진 촬영 몇 장을 하고는 서둘러 서울로 되돌아갔다고 기억한다. 

그때 무슨 일이 중요한 일이 터졌기 때문이다. 

직후 내가 무슨 기사를 썼는지 찾아봐야 무슨 일로 그랬는지가 기억이 날 듯하다. 
 

 
당시 이 유적을 충청문화재연구원이 했고, 당시 박순발 충남대 교수가 원장이었던 까닭에 조사단을 대표해 방송사들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다. 

이 양반 올해 은퇴일 텐데?

현장 공개는 26일이었지만 관련 보도자료는 그 며칠 전에 배포되었으니, 당시 내가 쓴 기사 전문을 소개한다. 

 
일본특유 고대묘제 "횡혈묘" 공주서 집단 확인(종합)
입력 2004. 4. 23. 05:30 수정 2004. 4. 23. 05:30
공주서, 언덕을 파고 굴 모양 무덤방 조성
5세기 후반 축조 추정, 규슈지역과 밀접 추정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비탈진 산 언덕에다가 구멍을 뚫은 다음 그 안에다가 굴과 같은 무덤방(현실.玄室)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한 이른바 횡혈묘橫穴墓 15기가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런 횡혈묘는 일본에서는 6세기 무렵 규슈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등장해 확산되는 일본열도 특유의 묘제墓制여서 백제와 일본열도간 교류를 엿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충청문화재연구원(단장 박순발)은 신풍-우성간 고속도로건설 구간에 위치한 충남 공주군 우성면 단지리丹芝里 일대를 발굴한 결과 횡혈묘 15기가 군집을 이루고있음이 확인됐다고 23일 밝혔다.

횡혈묘는 그동안 공주를 중심으로 한 충남지역에서 일부 흔적만 보였으나 이번에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그것도 군집을 이룬 채 확연하게 드러남으로써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에 획기적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들 횡혈묘는 잔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데다 부장 유물이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으며, 일부 무덤에서는 피장자의 인골까지 확인됐다. 
특히 구조적 특징이라든가출토유물로 본 축조 시기가 일본에서 이같은 묘제가 집중 등장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어 일본학계에서 그동안 모색해 왔던 일본열도 안의 횡혈묘 기원문제를 해명하는 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구조로 보아 이들 횡혈묘는 무덤방으로 연결되는 입구 시설인 연도가 극히 짧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으며, 무덤방은 대체로 천장을 둥근 반원형으로 만들었다.

무덤방 바닥에는 강자갈을 깔아 관 받침대로 이용하고 있으며 입구는 판돌이나 깬돌 및 자갈 혹은 나무판으로 폐쇄했다. 무덤을 처음 만들고 시신을 안치한 다음 나중에 다른 시신을 합장하는 추가장 흔적도 확인됐다.

이런 특징은 일본열도, 특히 규슈지역 초기 횡혈묘와 극히 유사하다.

이번 공주에서 확인된 횡혈묘가 규슈 지역에 등장하는 같은 묘제의 뿌리가 될 수도 있으나, 그렇게 보기에는 문제점 또한 없지 않은 것으로 지적된다.

무엇보다 일본열도에서는 이런 묘제가 수만 기나 확인 조사된 데 비해 한반도에서는 극히 한정된 지역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공주 횡혈묘에 묻힌 주인공은 규슈지방에서 건너온 일본 열도인들일 가능성도 제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나 일본서기 등지의 문헌기록에 의하면 백제가 웅진에 도읍하던 시대에는 백제로 집단 파견되는 일본열도인이 등장하고 있다.
무령왕의 경우 출생지가 일본열도로 되어 있으며 그에 앞선 동성왕은 아예 왜倭에 있다가 백제로 와서 즉위한 것으로 되어있다.
taeshik@yna.co.kr
 


공주 횡혈묘, 주인공은 왜인 아닌 백제인인 듯
입력 2004. 4. 26. 05:23 수정 2004. 4. 26. 05:23

(공주=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전형적인 일본식 무덤으로 꼽히던 횡혈묘橫穴墓 15기가 확인된 충남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유적 조사설명회가 개최된 26일 오후 발굴 현장.
오후 내내 폭우가 쏟아지고 기온까지 뚝 떨어진 데다 발굴장은 온통 진흙으로 질퍽거렸으나 고고학자와 취재진을 비롯해 200명 정도나 되는 사람들이 현장을 찾아 이번에 새로 발견된 유적에 대한 높은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했다.

이날 현장 설명회에서는 악천후 때문에 유물을 제외한 유적으로는 임시 비닐하우스를 설치한 횡혈묘 1기만 공개되는데 그쳤다. 주된 관심은 이번 공주 횡혈묘와 일본열도의 그것이 과연 어떤 관계일까 하는 데에 모아졌다.

횡혈묘란 언덕이나 암반을 마치 두더지 굴처럼 파고 들어간 다음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한 무덤 양식인데 지금까지는 일본에서만, 그것도 규슈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수만 기가 확인되었다. 출현 시기는 대체로 5세기 말 이후로 보고되어 있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일본 열도 자체 발생설이 우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웃 한반도나 중국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이런 무덤 양식이 도대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번 공주 단지리에서 이런 횡혈묘가 한두 기가 아니라 15기가 무리를 이룬 채 확인된 사실에 학계가 주목하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일본 자체 발생설이 압도적이던 횡혈묘의 기원을 한반도에서 구할 수도 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우선 형식이 같은 공주와 일본지역 횡혈묘 중 어느 곳이 시기적으로 빠른 지가 정해져야 한다.

이에 대해 이날 현장 설명회 참여 고고학자 어느 누구도 단언을 내리지 못했다.

무덤 축조연대를 확실히 알려주는 문자자료 등이 없는 상황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는 연대 추정 방법이 출토유물, 그 중에서도 특히 유행에 민감하다는 토기를 보아 판단하는 것인데 이번 공주 출토 백제 토기에 대해 어떤 이는 5세기 후반 제작품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6세기 중반을 올라가기 힘들다는 견해도 있었다.

조사단장인 충청문화재연구원 박순발 원장은 이들 공주 횡혈묘가 “가장 빠른 시기의 일본 횡혈묘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속하거나, 조금 빠르다고 볼 수 있다”고말했다.

또 하나 궁금증을 증폭케 한 대목은 기원이 어디에 있건 횡혈묘가 일본에서는일대 유행을 겪은 무덤 양식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는 이상, 혹시 이번 공주지역횡혈묘 주인공들이 혹시 왜인倭人일 가능성은 없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날 설명회에는 마침 일본 고분시대 토기 전공인 가시하라고고연구소 기노시타와타루木下亘(48) 총괄연구원이 참여했는데 그는 “일부 제작 기법에서 일본의 (고분시대 토기인) 스에키須惠器와 통하는 점이 없지는 않으나, 현지에서 만든 백제토기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로 볼 때 이번 공주 단지리 횡혈묘는 지금 시점에서는 백제 자체적으로 조성한 백제인들을 위한 무덤이라고 보아야 할 듯 싶다.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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