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파일 정리에 나섰다가 어느 디렉토리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글 모양을 보면 어딘가에 발표한 것인 듯한데 기억에 통 없다.
맥락을 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어느 시점에 쓴 것인가 보다.
대략 10년 전 쓴 글인데 지금 읽어보니 얼굴 화끈 거리는 대목은 없으니 그런대로 쓴 글인 듯하다.
***
‘규제’가 된 ‘실용정부’의 문화유산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재 전문기자
새정부 출범 두어 달 뒤인 올해 4월 말 충남 당진에서 있었던 일이다. 문화재 발굴조사 때문에 공장설립이 늦어진다며 시행업체측이 포크레인을 동원해 발굴조사 현장을 무단으로 파괴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굴조사원들이 현장에서 쫓아내고 카메라를 비롯한 조사장비를 빼앗겼으며, 현장조사를 나온 공무원 또한 위협을 받았다.
으레 그렇지만 이런 일이 터졌다고 한쪽에서 제보를 받으면 그 주장의 진위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쌍방의 주장을 청취해야 하며, 이럴 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거의 서로가 내세우는 사태 전개와 그에 대한 해석은 극과 극을 달리곤 한다.
언론계에 종사하는 필자 또한, 시공업체 대표이사에게 이런 주장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럴 줄로만 알았다.
한데 전화로 연결된 그에게서 놀라웠던 점은 한쪽 제보에서 들은 내용이 모두 ‘사실’이었다는 점이었다.
다만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은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 공장 부지에서 나온 저 돌더미가 무에 가치가 있는 문화재냐?
둘째,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사업 하는 사람들을 위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문화재 발굴 때문에 공장 설립이 늦어져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그에게 필자가 할 수 있는 ‘처방’은 실상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증상이 어느 정도라야지 얘기가 통하지, 저 돌더미, 규제 운운하는 그에게는 백약이 무효였던 셈이다.
필자 또한 어느덧 문화유산계라는 데에 10년을 투신한 마당에 새정부 출범은 몹시도 지독한 삭풍(朔風)을 불어오는 게 아닌가 하는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며칠 전 일이다. 필자가 몸담은 언론사에서 환경부를 출입하는 필자와는 입사동기인 기자와 얘기를 나누다가 불현듯 이 당진 사건이 생각나, 그에게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야, 환경부 분위기는 요즘 어떻냐?”
그는 손사래를 쳤다. ‘환경’의 ‘환’ 자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무슨 환경이냐는 것이었다.
하긴 그럴 것이다. 흔히 문화재청 공무원들이 자신들을 일러 자주 내뱉는 자조 섞인 말 중 하나가 “총은 주고 총알을 주지 않는다”는 한탄인데, 실상 환경부에 비하면 그래도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이란 제법 튼튼한 방어벽을 갖춘 셈이니 나은 편인 셈이다.
새정부 출범기에 즈음해 한때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한반도 대운하에 문화유산과 환경, 이 두 가지는 고사 위기에 몰린 것이다.
그것도 저 당진에다 공장을 세우려 하는 시공업체 대표이사가 밝힌 것처럼 '규제'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실용정부’의 기조와 그 총지휘자인 대통령의 뜻이 원래 그런지 아니 그런지는 필자가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문화재와 환경은 그에 마지막 남은 걸림돌처럼 인식되어 철폐되어야 할 규제로 인식되어, 붕괴 위기에 봉착하기도 한 셈이다.
한반도 대운하는 촛불과 함께 시들해진 형국이다. 아마도 그것이 되살아날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거의 없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대운하는 ‘멸종 위기’에 처했으나, 그것이 대표하는 경제성장, 실용주의라는 노선은 경제위기라는 국면과 더불어 여전히 위력을 발휘 중이다.
새정부 출범 6개월에 즈음해 지난 8월 정부는 각 부문별 규제 철폐 혹은 완화 ‘성과’들을 공개했다. 이 중에 문화 부문에서는 유일하게 문화재 분야가 포함됐다.
필자는 이 자체만으로도 상징적인 사건으로 본다. 왜 문화 부문에서도 문화재 업무만 포함되었을까? 그것이 ‘규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문화재 정책을 제외한 여타 문화 부문이 ‘지원’ 혹은 ‘육성’ 위주인 데 비해 분명 문화재는 ‘규제’ 측면이 강하다. 아니, 더욱 정확히는 그런 ‘규제’가 없으면 존재기반 자체를 상실하는 문화유산이 그 존재기반의 상당 부문을 상실하는 지경에 처한 것이다.
그렇다면 새정부가 자랑스럽게 내세운 문화 부문 규제 완화 혹은 철폐 성과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으로써 정부는 지난 4월 발표한 ‘문화재 조사제도 개선방안’이란 것을 들었다.
이는 널리 알려졌듯이 행정절차 간소화와 지리정보시스템(GIS) 조기 구축을 통한 매장문화재 지표조사 절차를 생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에 의하면 종래에는 사업자가 시굴조사 결과에 대한 요약보고서를 작성한 후 시·군·구를 거쳐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는 등 통상 6단계에 이르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개선안에서는 시군구의 허가 과정을 없애는 등 이를 3단계로 줄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정 규제 완화가 불러온 구체적인 성과는 어떨까? 정부는 일단 그에 따른 혜택이 가시적이라고 평가했다. 행정 절차가 크게 줄어들면서 업체들의 공사 착수에 가속도가 붙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일례로 화성도로건설 사업에서 토지공사(문맥상 도로공사 같은데 내가 혼동한 듯하다.)는 지역 내 유적 시굴 조사를 실시한 후 그 결과를 곧바로 문화재청에 보냈다.
허가 사인이 나기까지는 하루. 지침 개정 전이었다면 적어도 47일이 걸리던 절차였다는 것이다.
나아가 정부는 지난 7월에 개선안이 시행되기 시작한 이후 한달 정도 만에 이런 혜택은 본 사례가 11건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그렇다면 이런 매장문화재 제도 개선(안)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우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해 다시 최근 필자와 관련한 경험담을 들고자 한다.
이때만 해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민원’이나 ‘호소’가 필자에게도 날아든다. 그들의 호소는 한결 같다. 문화재 조사는 법대로 다 할 테니, 제발 발굴조사를 하루라도 빨리 받게 해 달라는 호소가 간간이 날아든다. 이런 측면에서 소위 저 ‘행정절차 간소화’는 분명 일정 부분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만 해도 그리 간단치가 않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의 책으로써 정부당국에서는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 설립 요건을 완화함으로써 지금은 조사원 8명(혹여 이 수치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이상으로 낮추었는가 하면, 소위 조사기관에 대한 ‘조사구역 제한’ 조건을 폐지함으로써 예컨대 경상도에서 활동하는 기관이 전라도에 가서도 조사할 수 있게 했다.
이 중에서도 기관 설립 요건 완화만큼은 굄돌을 빼서 위에다 놓는 격이랑 진배가 없다는 것은 문화유산계 전반이 인정하는 바이며, 후자만 해도 일단 응급조치는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으니 이조차 전자와 신세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문화유산 부문에서도 특히 매장문화재 조사에 논의가 집중되는 까닭은 누구나 인정하듯이 발굴조사의 수요와 공급이 현격한 불일치에서 말미암는다.
솔직히 필자가 정책 당국자라 해도 이에 대한 뾰죽한 묘수가 없을 듯하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한 때 정부 일각에서도 농담처럼 외국 조사기관 수입 문제가 나돌기도 했다.
이런 매장문화재 제도개선안이 지난 4월 발표되자 그에 극렬히 학계와 시민단체가 반발했다는 사실은 익히 보던 바이다.
행정 간소화도 좋지만 난개발로 인한 문화유산 파괴행위를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가 그 중심을 차지했던 것이다.
이런 호소가 어느 정도는 효과를 발휘해 지표조사 생략 방침은 철회되었다. 하지만 철회라고 하지만 더욱 정확히는 ‘보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경제와 실용주의를 앞세워 문화유산 보호책을 ‘규제’로 간주하는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주도한 주체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였다는 사실은 문화유산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한다.
나아가 지금도 그들이 주장하는 규제 철폐 혹은 완화라는 구호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압도적인 호소력을 지닌다.
경제 논리 앞에서 언제나 문화유산은 그 위치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런 운명은 아마도 지구에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 같다. (2017. 1. 5)
***
이 글은 사대강사업 시절 이명박 시대 문화재계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적지 않다.
내 주장이나 찬반이 있을 수 있으나, 저 시절 움직임은 그런대로 잘 정리했으니, 그런 자료 가치는 충분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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