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함안 말이산고분 13호분 이른바 아라가야 천문도 공개 당시 저간의 학계 반응을 나는 잘 기억한다.
현장은 본 적도 없고, 아예 관련 자료도 받아든 적이 없는 친구들이, 것도 버젓이 고고학으로 먹고 산다는 자들이 고인돌 성혈 운운하며 헛소리들을 해대는 꼴을 보면서 내가 이런 놈들이 고고학도인가를 다시금 의심했으니
심지어 어떤 고고학도입네 하는 놈이 어떻게 우리한테 미리 검토도 받지 아니하고 조사단에서 성급하게 천문도라 기자들한테 공개하느냐 하고 지껄이는 꼴을 봤다.
이 말이산 13호분 문제의 발굴현장 공개 뒷이야기는 이미 상세히 저간의 사정을 다룬 적 있거니와 아래가 그것이라, 마침 과거의 오늘에 이 이야기가 보여 새삼 보탠다.
말이산 13호분 발굴현장 공개 뒷이야기
https://historylibrary.net/2242?fbclid=IwAR1vJqQh35NLa_2NDoYxcNXU3sz8VNOQ_uE_j044IoeTMvNViNiBZ_tdWpc
저에 연속하는 이야기로써, 내가 당시 발굴현장 문화재청장 참관을 추진하고자, 미리 내려가서 현장을 점검할 때 사진 몇 장이 다행히 남아 문화재 현장 일화 하나로써 정리한다.
이것이 발굴현장 공개 전 현장에 미리 내려가 내가 살필 때다. 이 상태로는 현장 공개가 불가능했다.
천지사방, 특히 입구 쪽에 흘러내린 돌더미 흙더미가 가득했다. 저길 뚫고서 들어가 문제의 천문도 돌을 확인했다.
돌은 이렇게 박혀 있었다. 이건 고인돌 덮개돌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재질이 완전히 달랐다. 무덤방 천장 덮개돌은 7장인가 8장인가를 썼는데, 유독 이것만 그것도 복판에다 떡 하니 내걸었다.
이전에 나는 함안 일대를 돌면서 고인돌들을 관찰한 적이 있다. 그에서 내가 이상했던 점이 재질이었다. 돌들이 하나같이 이상했다.
그래서 이 이상한 점을 지금은 팀장이 된 함안군 학예사 조신규라든가 이곳을 많이 발굴한 조사단원들한테 물었다.
"왜 돌들이 이쪽은 하나같이 저런가?"
이쪽에서 나는 돌들이 그렇다 했다. 그러면서 함안 일대가 이상한 점이 화강암을 구경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말을 나는 저장했다.
이런 경험들은 문제의 저 돌덩이가 고인돌 덮개돌 재활용인가? 아니면 진짜로 천문도를 새긴 것인가를 판단케 하는 결정적인 동인으로 작동했다.
가야 무덤에서 흔히 보이는 무덤방 시렁 걸치기 흔적이다. 통나무나 깎은 큰 나무를 박아 걸쳤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복원도가 있으니 참고 바란다.
그 기능?
나로서는 오랜 의문이다. 이걸 풀어보겠다고 생각은 좀 했는데 현재로서는 모르겠다.
합천박물관이던가? 함안박물관에도 있다고 기억하는데, 저걸 토대로 복원한 무덤방이 있기는 한데, 나로서는 영 께름칙한 데가 아직은 많다 해둔다.
이것도 언젠가는 풀지 않겠는가?
왜?
나 아니면 풀 사람도 없다고 본다.
그래 김태식을 키운 건 팔할이 오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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