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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송은의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오래된 할아버지 수첩 속 이야기-천수원명금고

여송은 온양민속박물관 연구원 


 

우와~~ 할아버지 여기가 어디에요? 나무도 정말 많고, 연못도 있고! 저 사람같이 생긴 돌들은 뭐에요? 얼굴모양이 다 달라요~!

 

허허. 좋으냐. 여기는 온양민속박물관 이라는 곳이란다. 이 할아버지가 아주 오래전에 일한 곳이기도 하지.

 

와! 할아버지 여기서 일하셨었어요? 정말? 몇살 때요? 무슨 일 하셨어? 궁금해요!

앗! 할아버지! 저기가 전시실인가봐요! 빨리가요~~!

 

허허 이 녀석아 넘어져요~~ 천천히, 뛰지말고 가야지~!

 

벌써 40년 세월이 훌쩍 넘었는데도 야속하게도 예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습니다.

혈기왕성하던 청년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 돌아왔는데 말이죠.

굽이쳐 올라가는 언덕길도 그대로이고, 언덕길 옆으로 보이는 아기자기 이름모를 풀들.

한걸음 한걸음 언덕길을 오를 때마다 보일 듯 말 듯한 마른적색빛 벽돌의 박물관.

모두 그대로입니다.

아, 변한게 있다면 당시 내 허리춤 만했던 나무들이 어느새 부쩍 자라 박물관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들이 되었다는 겁니다.

자라느라 고생했다!

 

박물관 유물 하나하나 제 손을 거쳐가지 않은 것이 없었지요.

그때는 뭐가 그리 좋아 호미 한 자루 보겠다고 섬으로 육지로 돌아다녔을까요.

사실 좋고 나쁘고도 몰랐을 겁니다.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게 더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저 유물에 얽힌 이야기 하나 하나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요.

 

 

 

우와 신기한거 정말 많아요!!

아아!! 할아버지~~~! 저게 뭐에요? 징 같이 생겼어요!

 

아~ 징 같이 생겼지? 잘 보았네. 징은 아니고 저건  '금고'라고 하는 거란다.

 

금고? 돈 넣는 금고??

 

허허허. 돈 넣는 금고라고하기에는 너무 부실하지 않을까?

한자로 되어 있어 어렵지? 쇠 금 '金'자에 북 고 '鼓'자를 써서 쇠로 만든 북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절에서 불교 의식을 치를 때, 종루나 당 처마에 걸어두고 쳐 소리를 낼 때 사용하던 거지.

 

아~~~! 왜 헷갈리게 금고라고 한데요! 쇠북이라고 하지!

할아버지! 여기 금고에 꽃이랑 덩쿨무늬 같은 게 있어요! 쇠에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새길 수 있었을까요?!

언제 만든 거에요? 정말 신기해요.

 

고려시대 만들었다고 하면 우리 강아지가 알까..

네 눈에도 신기하게 보이는구나. 허허. 나도 처음봤을 정말 두근거리고 신기했었지.    

 

 

천수원명금고薦壽院銘金鼓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6호, 금고金鼓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7호

1162년 제작, 한필석 기증,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신수리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유물. 

 

 

1976년 여름.

 

거 계슈? 물건 하나, 아니 두개 가져왔는디 아무도 안계슈?

 

아 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개울 건너 사는 한필석이라는 사람이오.

집을 질려고 땅을 파는데, 이런 둥글넙적한 게 두 개가 나왔소.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예사 물건이 아닌 것 같아 집으로 가져갔는데,

아! 마누라가 오래된 물건 집안으로 들이면 동티난나고 하며 한사코 밖에다가 갖다 버리라고 하질 않소.

그래서 내 그대로 그걸 개울에 던져 버렸지.

그 뒤로 태풍이 와 빗물에 쓸려갔겠거니 하고 일주일 뒤 개울가에 나가봤는데, 아니 이게 그대로 있질 않소.

그래서 엿장수한테나 팔아먹어야겠다 싶어 갖다주니, 뭐 흙 잔뜩 들은 쇠붙이 사려 들겠소. 퇴짜 맞고 군청으로 가져 갔지.

낑낑거리며 군청 가져갔더니, 요 밑에 박물관 짓는다고 하니 여기 갖다주라고 하질 않소.  

한 번 봐주쇼. 이거 박물관에 쓸만한 건지.  

 

저는 금고 두 점을 보자마자 가슴이 벌렁벌렁 거렸습니다.

앞면에 새겨진 문양하며 또 다른 한 점에는 옆 면에 명문이 새겨져 있었지요.

 

천수원명금고 옆면

옆면에는 1단 음각선으로 ‘正豊七年 壬午十一月 日 牙州地 薦壽院金口一座 重拾三斤捌兩造 納棟梁道人 練如謹記

정풍칠년 임오십일월일 아주지 천수원금구일좌 중십삼근팔량조 납동양도인 연여근기’

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금고의 제작연도가 고려 의종 27년(1162년)임을 알 수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설립자분께 전화 보고를 드리니, 설립자 분도 예사 물건이 아님을 직감하신 것 같았지요.  

저에게 알아서 잘 처리하라고 일러주시곤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그 당시 제 월급이 48,500원일 때입니다.

100원자리 지폐를 두둑하게 봉투에 넣어 준비하고,

금고를 가져오신 분을 모시고 박물관 앞 주막집으로 가 막걸리를 시켰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이제 자리를 뜨시려 하자 봉투를 쥐어드렸습니다.

그 분께서 봉투를 슥 보시더니 비누 한 장 값도 안 나오겠다며 그냥 두고 가셨습니다.

 

그렇게 이 금고 두 점이 박물관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금고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어 그분 집을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그 분은 뵙지를 못하고, 시골 부인들이 그렇듯 무서우셔서 그런지 문도 열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가끔 집 안에서 30대 중후반? 되어 보이는 부인이 "남편 없으니 돌아가세요" 라는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찾아갔지만, 문은 열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막걸리집에서가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작년인가 박물관 40주년이라 해서 다시 찾아 갔습니다.

이젠 저도 머리가 훵훵하니 희었고, 그 분도 이제 백발 노인이 다 되었겠지요.

문을 두드리니 역시 문은 열어주지 않고, 안에서 다 나이든 할머니가

"우리 영감 죽었으니 만나고 싶으면 하늘나라로 가서 만나!" 라고 하셨습니다.

허허 이제는 이 세상 분이 아니신가봅니다.

감사의 인사를 다시 한 번 드리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그때 왜 봉투 받지 않고 그냥 가셨는지 묻고 싶기도 했는데 말이지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오래된 물건 집안에 들이면 동티난다고 내다 버리라고 말했던 그 부인의 얼굴은 볼 수 없었고,

문 건너로 또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내다 버리라고 한 그 부인 덕에 이 두 점 금고가 박물관에 올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금고가 박물관에 올 수 있게 도와 준 것이 아닐까요.

얼굴을 끝내 볼 수 없던 그 부인은 혹 금고를 지키는 보살이 아니었을까요.

 

지금 제 눈 앞에 있는 금고를 보니 그 때 생각에 다시 마음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저릿해옵니다.

 

 

할아버지~~~ 뭐해요? 우리 이제 가요~~!

 

오냐 오냐 그래그래. 어여 가자꾸나.

 

또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