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40주년 특별전시 영상,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배영동 교수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온양민속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였고, 현재는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본인이 꼽는 온양민속박물관 대표유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내가 온양민속박물관에 처음 오자마자 한 일은 개관 40주년 특별전시 준비였다.
개관 40주년을 맞이하여 박물관의 역사를 보여 줄 수 있는 아카이브 전시를 준비중이었고,
이를 위해 박물관과 깊은 인연이 있는 분들을 인터뷰하고, 기록하는 업무를 맡았다.
막 들어온 신입이, 온양민속박물관에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초짜가 무엇을 알아 인터뷰 질문지를 작성했겠는가.
뻔하디 뻔한 질문들을 적었고, 쭈볏쭈볏 그 질문들을 내밀었었다.
배영동 교수님께도 그랬다.
뻔한 질문지를 들고, 인터뷰 영상을 꼭 찍어야 겠다고 통보하다시피 하며 무작정 안동으로 내려갔다.
뻔한 질문 중 하나가 위에 캡처 이미지에서도 보이겠지만 '온양민속박물관을 대표할 수 있는 유물은 무엇일까요?' 이었다.
이 질문에 돌아온 교수님 대답은 뻔하지 않았고, 내가 온양민속박물관을 다니면서 마음속에 지닐 화두를 하나 만들어 주었다.
"이 질문은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라는 질문과 깊게 관련이 있다고 봐요. 제가 박물관에 근무할 때는 갑옷이라든지 투구라든지 소위 상류층 사람들이 사용하던 고급스러운 전통 유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민속박물관이라는 성격을 고려해서 보면 오히려 그것은 민속박물관 보다는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박물관과 더 어울리는 유물이 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민속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은 무엇일까요? 저는 민중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것을 민속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볼 때 제가 소개하고 싶은 유물은 2전시실에 있는 '나락뒤주'와 '통구민'입니다.
...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백성들 대부분의 염원은 배고프지 않게 먹고사는 일이었을 겁니다. 굶주리지 않고 사는 것이야말고 농민이나 어민들의 한결같은 소망이었지요. 농사를 잘 지어 나락뒤주에 곡식을 가득히 채워두면 마음이 든든해지고, 통구민을 타고 바다로 나가 주인 없는 고기를 마음껏 잡을 수 있다면 먹거리가 풍성해 질 수 있었습니다. 나락뒤주와 통구민은 가난한 서민들에게 노력하면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꿈꾸게 해 주는 유물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그 두 가지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배영동 교수님 인터뷰 中
유물카드 속 나락뒤주 斗廚 Grain Storage, 20세기, 짚·대나무·진흙, H274.0cm
배영동교수님이 온양민속박물관 대표유물로 꼽는 것 중 하나인 '나락뒤주'이다.
'나락뒤주'는 말 그대로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수장고)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뒤주와 모양과는 좀 다르다. 더 크고, 마치 집모양 같다.
나락뒤주에도 지방마다 모양이 조금씩 다른데, 이 나락뒤주는 대나무로 몸통을 항아리처럼 불룩하게 만들고, 위에는 짚으로 엮은 송낙모양의 모자를 씌었다. 앞면의 위쪽에 작은 널문을 달아 나락을 넣고 빼었다. 쥐 피해와 나락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안쪽에는 진흙으로 초벌을 바른 후 모래·토사·밀풀 따위를 잘 섞은 것을 덧발라서 틈새를 메웠다. 현재는 안쪽에 메꾼 것들은 거의 떨어져 나갔다.
이러한 형태의 나락뒤주는 경남 진주지역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나락뒤주도 진주에서 구입해 온 것이다.
당시 유물수집목록을 보면 1977년 4월 19일 경상남도 진양군(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하만우씨댁에서 수집해 온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나락뒤주의 키가 2미터가 넘는데, 몇 가마정도나 들어갔을까. 10가마? 20가마? 사실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정도 크기의 나락뒤주를 갖고 있는 농부라면 그 마을에서 꽤 부자에 속하지 않았을까.
분명한것은 이 뒤주에 나락들이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농부들의 마음도 차곡차곡 흐뭇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나락뒤주'는 무엇인가?
그 나락뒤주에 무엇인가 열심히 채우고 있는가?
요즘 자조적인 우스갯소리로 '티끌모아 티끌' 이라고도 하지만 그래도 티끌이 남아있지 않은가.
나락뒤주의 크기가 크던 작던, 나만의 것을 계속 채운다면
그것은 결코 티끌 모아 티끌이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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