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 & THESIS

함안 말이산 고분군 도항리 425번지 일원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by taeshik.kim 2023. 9. 9.
반응형

함안 말이산 고분군 도항리 425번지 일원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2023. 08.

함안군·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1. 조사개요
§ 조 사 명 : 함안 말이산 고분군 도항리 425번지 일원 발굴조사
§ 위 치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425번지 일원
§ 조사면적 : 1,265㎡
§ 조사기간 : 2023년 5월 15일 ~ 2023년 12월 31일 (실조사일수 43일)

2. 조사경위 및 목적
§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은 1세기~6세기까지 가야 남부지역의 유력한 세력으로 성장했던 아라가야 지배층의 고분군으로 함안분지 중앙을 남북으로 뻗은 독립된 소구릉에 조성되어 있음.

구릉 정상부에 대형 봉토분이 조성되어 있고, 구릉 사면부에 중소형 고분이 위치하여 고분군의 배치를 통해 계층적 신분질서를 보여줌.
 



§ 일제강점기인 1914년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고, 1917년 52기의 고분에 대한 분포도와 각 고분의 입지, 분포외관, 현상 등에 대한 기술이 이루어졌음.

이후 1986년 창원대학교박물관에 의해 14-1호분, 14-2호분 조사, 1991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도항리 35호분과 그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함.

1992년에는 초대형 목관묘인 마갑총이 발견됨과 함께, 1992~1997년 고총고분인 5호분, 8호분, 15호분 등의 조사와 1997~1998년에 경남고고학연구소에서 시굴조사를 실시함.
 



§ 2000년 이후에는 2006년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실시된 도항리 6호분 발굴, 2013~2014년에 경남발전연구원에 의해 실시된 정밀지표조사 등을 통해 고분의 성격이 명확하게 밝혀지게 되었음. 

2014~2015년 경남발전연구원에 의해 100 호분․101호분, 21호분에 대한 발굴, 2016년 25호분과 26호분을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하였음.

2018년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5-1호분과 5-2호분, 2019년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서 13호분과 주변지역 조사, 같은 해 두류문화연구원에서 45호분과 주변지역 발굴조사를 진행한 바 있음.
 



2022년에는 말이산 75호분 발굴조사를 통해 가야중심권역에서는 처음으로 중국제 청자완이 출토되었음. 최근고분군 정비를 위한 수차례의 시굴조사가 이루어진 바 있음.

§ 본 과업은 함안 말이산 고분군 도항리 425번지 일원에 대해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및 관련 규정에 의거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를 선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고분군의 정비사업을 추진하고자 함.
 
 




<함안 말이산 고분군 조사현황>

조사연도 구분 조사지역 조사기관·내용·참고문헌
1910년 지표 말이산고분군 Ÿ 도쿄제국대학 세키노 타다시(關野貞)
Ÿ 말이산고분군에 대한 최초의 조사
Ÿ 1916년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유리원판 m877-04(백사리고분
군)은 말이산고분군의 최초 사진자료
朝鮮總督府, 1916, 󰡔朝鮮古蹟圖譜󰡕三
함안박물관, 2013, 󰡔말이산󰡕, 함안박물관 개관10주년 기념 특별전
1914년 발굴 現1호분 Ÿ 도쿄제국대학 도리이 류조(鳥居龍藏)
Ÿ 조선총독부의 역사교과서 편찬을 위한 제3차 사료조사 시 대형 봉토분 1
기를 발굴조사
Ÿ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원판 사진으로 봉토(m130084)와 내부(m13008
5)를 확인
함안박물관, 2013, 󰡔말이산󰡕, 함안박물관 개관10주년 기념 특별전
1915년 지표 말이산고분군 Ÿ 도쿄제국대학 구로이타 카츠미(黑板勝美)
Ÿ 도쿄제국대학의 고대 한일 교섭 관련 자료수집으로 조사
Ÿ 남문외고분군에서 파괴된 석곽묘를 발굴
Ÿ 말이산고분군과 성산산성을 하나의 연결사진으로 촬영
함안박물관, 2013, 󰡔말이산󰡕, 함안박물관 개관10주년 기념 특별전
1917년 지표 말이산고분군 Ÿ 조선총독부 이마니시 류(今西龍) 남문외고분군과 함께 60기의 봉토분 일련
번호 부여
朝鮮總督府, 1920, 󰡔大正6年度古蹟調査報告󰡕
발굴 現4호분
(舊34호분)
現25호분
(舊5호분)
Ÿ 대형 봉토분(수혈식석곽묘) 1기 발굴조사(봉분 직경 39.4m, 높이 9.7m)
Ÿ 25호분은 봉분 중앙의 4m 아래에서 개석 6매 확인. 5번째 개석에 인접하
여 小壙(소형석곽?) 확인
朝鮮總督府, 1920, 󰡔大正6年度古蹟調査報告󰡕
국립김해박물관, 2007, 󰡔특별전 – 함안 말이산 34호분󰡕
1918년 발굴 現12호분
現13호분
Ÿ 조선총독부 야쓰이 세이이치(谷井濟一) 대형 봉토분인 13호분(야쓰이 제1
분)과 중형분인 12호분(야쓰이 제2분)을 발굴조사
Ÿ 고분분포도를 비롯한 도면 3매와 유리원판 사진 14매 확인. 주능선 상에
위치한 현13호분은 횡혈식석실묘로 추정
함안박물관, 2013, 󰡔말이산󰡕, 함안박물관 개관10주년 기념 특별전
1986년 발굴 現14호분
주변
Ÿ 삼국시대 봉토분(석곽묘) 2기
昌原大學校博物館, 1992, 󰡔咸安 阿羅伽耶의 古墳群(Ⅰ)-道項里·末山里情密調
査報告-󰡕
1991년 발굴 現35호분
(암각화고분)
Ÿ 청동기시대 주거지 1동, 지석묘 8기, 삼국시대 봉토분(석곽묘) 1기
國立昌原文化財硏究所, 1996, 󰡔咸安 岩刻畵古墳󰡕
1992년 지표 말이산고분군 Ÿ 대형 봉토분 37기 번호 조정. 80여기의 고분에 대해서 위치와 번호 부여
昌原大學校博物館, 1992, 󰡔咸安 阿羅伽耶의 古墳群(Ⅰ)-道項里·末山里情密調
査報告-󰡕
1992년 발굴 現1호분
북쪽 일대
Ÿ 청동기시대 주거지 1동, 삼한시대 목관묘 11기, 삼국시대 목곽묘 19기, 석
곽묘 1기, 횡혈식석실묘 3기, 소형석곽 2기, 옹관 2기
國立昌原文化財硏究所, 1997·1999, 󰡔咸安道項里古墳群Ⅰ·Ⅱ
1992년 발굴 도항리
103-4번지
Ÿ 삼한시대 목관묘 1기, 삼국시대 목곽묘(마갑총) 1기
Ÿ 國立昌原文化財硏究所, 2002, 󰡔咸安 馬甲塚󰡕
1993년 발굴 現1호분
서남쪽 일대
Ÿ 청동기시대 석관묘 1기, 삼국시대 목곽묘 9기, 석곽묘 3기, 횡혈식석실묘 1기
Ÿ 國立昌原文化財硏究所, 1999·2000, 󰡔咸安 道項里古墳群Ⅱ·Ⅲ󰡕
1994년 발굴 現5호분
現8호분
Ÿ 삼국시대 봉토분(석곽묘) 2기
國立昌原文化財硏究所, 2004, 󰡔咸安 道項里古墳群Ⅴ󰡕
1995년 발굴 現15호분 및
주변 일대
Ÿ 청동기시대 석곽묘 1기, 삼국시대 봉토분(석곽묘) 1기, 석곽묘 3기
國立昌原文化財硏究所, 2000·2001, 󰡔咸安道項里古墳群Ⅲ·Ⅳ󰡕
1996년 발굴 現22호분 및
주변 일대
Ÿ 삼국시대 봉토분(석곽묘) 1기
國立昌原文化財硏究所, 2001, 󰡔咸安 道項里古墳群Ⅳ󰡕
1997~8년 발굴 말이산
고분군 북쪽
능선 일대
Ÿ 삼한시대 목관묘 37기, 삼국시대 목곽묘 39기, 석곽묘 6기, 옹관묘 3기,
기타 17기
慶南考古學硏究所, 2000, 󰡔道項里·末山里遺蹟󰡕
2001년 발굴 도항리
101-5번지
Ÿ 삼국시대 석곽묘 2기
國立昌原文化財硏究所, 2002, 󰡔咸安 馬甲塚󰡕
2002년 발굴 말산리
451-1번지
Ÿ 삼국시대 석곽묘 1기
慶南發展硏究院 歷史文化센터, 2004, 󰡔함안 말산리 451-1번지 유적󰡕
조사연도 구분 조사지역 조사기관·내용·참고문헌
2005년 발굴 도항리
430-12번지
Ÿ 청동기시대 구상유구 1기, 삼국시대 석곽묘 3기
東亞細亞文化財硏究院, 2007, 󰡔함안 도항리 택지개발사업지구내 文化遺蹟發
掘調査報告書󰡕
2005~6년 발굴 現6호분
(6-1호 포함)
Ÿ 청동기시대 석개토광묘 2기, 삼한시대 목관묘 1기, 옹관묘 1기, 삼국시대
봉토분 1기, 석곽묘 3기
東亞細亞文化財硏究院, 2008, 󰡔咸安道項里六號墳󰡕
東亞細亞文化財硏究院, 2008, 󰡔咸安道項里古墳群-함안 도항리 6-1호분-󰡕
2009년 발굴 도항리
428-1번지
Ÿ 삼국시대 목곽묘 17기, 석곽묘 19기
경상문화재연구원, 2011, 󰡔함안 도항리 고분군 -도항리 428-1번지 일원-󰡕
2013년 지표 말이산고분군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14, 󰡔함안 말이산고분군 정밀지표조사 보고서󰡕
2014년 발굴 100·101호분
및 주변 일대
Ÿ 청동기시대 석관묘 2기, 삼국시대 목곽묘 1기, 봉토분(석곽묘) 2기, 석곽
묘 1기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16, 󰡔함안 말이산 100101․ 호분󰡕
2015년 발굴 現21호분 Ÿ 삼국시대 봉토분(석곽묘) 1기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17, 󰡔함안 말이산 21호분󰡕
2015년 발굴 말이산
25·26호분
Ÿ 삼국시대 봉토분(수혈식석곽묘) 2기
우리문화재연구원, 2018, 󰡔함안 말이산고분군 제25·26호분󰡕
2016년 발굴 도항리 527번지
외 13필지
Ÿ 청동기시대 묘 6기, 삼국시대 석곽묘 7기
우리문화재연구원, 2016, 󰡔함안 말이산 고분군 정비사업부지 내 함안 도항리 52
7번지 유적󰡕
2018년 시굴 도항리
484-2번지
일원
Ÿ 삼국시대 봉토분 3기, 대형 석곽묘 1기, 소형 석곽묘 2기, 중·소형 목곽묘
9기, 구8기, 주거지 등의 생활유구 4기, 조선시대 분묘 4기
Ÿ 1993년도 가야문화재연구소 발굴 39호 및 40호 석곽묘 확인
극동문화재연구원, 2018, 「함안 말이산고분군 484-2번지 일원 발굴(시굴) 약
식보고서」
2018년 발굴 5호분 주변 Ÿ 삼국시대 봉토분(석곽묘) 2기(5-1·5-2호분), 석곽묘 1기(5-3호분), 부장곽 1기
경상문화재연구원, 2020, 󰡔함안 말이산 고분군 57·128호분, 석1호묘󰡕
2018년 시굴 13호분 주변 Ÿ 지표조사를 통해 알려진 86호분과 신규로 129호분 확인 및 청동기시대 문
화층과 구상유구 등 확인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20, 「함안 말이산고분군 13호분 발굴조사 약식보고서」
2018년 발굴 13호분 봉분 Ÿ 13호분의 축조기법을 확인, 천문개석 확인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20, 󰡔함안 말이산고분군 13호분 발굴조사 약식보고서󰡕
2019년 발굴 말산리
484-2번지
Ÿ 삼국시대 봉토분(목곽묘) 1기, 대형 목곽묘 2기, 목곽묘 2기, 석곽묘 1기,
수혈 1기
두류문화연구원, 2019, 󰡔함안 말이산 484-2번지 일원 문화유적 발굴조사 약
식보고서󰡕
2020년 시굴 도항리
490번지 일원
Ÿ 5구역: 삼국시대 석곽묘 2기
경상문화재연구원, 2020, 「함안 말이산고분군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 시굴조사
약식보고서」
2020년 시굴 도항리
934번지 일원
Ÿ 삼국시대 석곽묘 2기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20, 「함안 말이산고분군 13호분 주변 시굴조사
약식보고서」
2021년 시굴 도항리
517번지 일원
Ÿ 1지점-삼국시대 석곽묘 4기. 2지점-봉토분 4기(61~64호분), 3지점-봉토
분 7기(66~72호분), 4지점-봉토분 1기(74호분)
동양문물연구원, 2021, 「함안 말이산고분군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 문화재 발
굴(시굴)조사 약보고서.
2021년 발굴 도항리 902전,
580묘 일원
Ÿ 봉토분 1기(중국제 청자완 출토)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21, 「함안 말이산고분군 75호분 자문회의 자료집」
2022년 시굴 도항리 425번지
일원
Ÿ 원삼국시대 목관묘 4기, 삼국시대 목곽묘 8기, 석곽묘 1기, 주구 1기, 봉
토분 1기, 조선시대 구상유구 2기, 우물 1기 확인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22, 「함안 말이산고분군 도항리 425번지 일원 시
굴조사 약보고서.」
2022년 시굴 도항리 1000번지
일원
Ÿ (추정) 삼국시대 봉토분 2기, 조선시대 석축시설 1기, 소성유구 2기, 배수
시설 1기, 집석유구 1기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22, 「함안 말이산고분군 도항리 1000번지 일원 시
굴조사 약보고서.」

 
3. 조사내용
가. 입지 및 고분 분포양상
-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425번지 일원에 위치함.

- 말이산 고분군은 함안분지의 중앙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독립된 구릉지에 위치함. 중심능선부와 가지능선에 고분이 주로 분포함.

- 현재 고분군은 잔디 식재, 수목 정비 등이 잘 이루어져 있으며 일부(남반부)지역은 소나무와 참나무 등 수목이 우거져 있으며 도굴되어 고분들도 확인됨.

- 2014년 정밀지표조사에서 봉토분 127기가 확인되었으나, 2021년 정밀지표조사를 통해 추가로 확인된 봉토분을 포함하면 180기 이상의 봉토분이 분포하는 것으로 판단됨.

- 이번 발굴조사 대상지역은 말이산 고분군 최북단의 서사면부에 위치함. 근래까지 일부 경작이 이루어졌으며 민가가 인접해 있는 지역으로 2021년 사적지정범위 확대가 이루어진 지역임.


나. 조사내용
- 근래까지 이루어진 경작과 민가 조성으로 인해 표토 아래 바로 기반층인 풍화암반층이 확인되고 있음.

- 발굴조사 결과, 원삼국시대 목관묘 8기, 삼국시대 목곽묘 10기, 석곽묘 2기, 석실묘 1기, 고려시대 석곽묘 1기, 조선시대 수혈 1기, 구상유구 2기, 미상유구 1기가 확인되었음.

① 원삼국시대 목관묘
- 원삼국시대 목관묘는 조사대상지역 북서쪽 가장자리를 중심으로 집중분포함.
 



1~4호 목관묘는 목관묘가 다수 확인된 경남고고학연구소(현 삼강문화재연구원) 조사지역과 인접하고 있음. 근래까지 민가 가옥이 위치하고 있어 상부 교란이 매우 심한 상황으로 배수관 등으로 인해 목관묘가 일부 훼손되어 있음.

- 목관묘의 묘광 규모는 길이 235~320㎝, 너비 100~149㎝, 잔존 깊이 18~70㎝로 규모상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방향성도 거의 동일하게 조성되어 있음. 조성 빈도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음.

- 1호 목관묘는 비교적 잔존상태가 양호하며 충전토 상부에 조합우각형파수부호 1점이 놓여져 있었으며 양단벽부에 주머니호를 각 1점씩 부장하였음.

중앙에서 남쪽으로 약간 치우져 청색과 녹색 유리제 소옥이 200여점 이상 확인되었는데, 천마총 등에서 확인되는 앞가리개보다는 어깨를 두르는 숄형태의 의복에 장식된 것으로 추정됨.

이는 안라국시기 의복 연구에 좋은 학술자료를 제공해 줄 것으로 판단됨.

또한 장신구의 방향으로 보아 두향은 남동향이었을 것으로 판단됨.

- 4호 목관묘는 묘광의 규모가 가장 큰 목관묘임. 충전토 내에 호류가 부장되어 있으며 발치로 추정되는 서단벽 가장자리에 철모 3점이, 중앙부에 철촉과 철검, 철부가 출토되었음. 중앙부에서 수정제 다면목 2점이 출토되었음.
 



- 9호 목곽묘의 묘광 규모는 길이 304㎝, 너비 183㎝, 잔존깊이 33㎝로 목관묘와 비교했을 때 길이는 비슷하나 너비가 50㎝이상 크며 토층 양상으로 보아 관과 곽이 설치되었을 것으로 판단됨.

유물은 와질 노형기대와 양이부호, 철모와 철부, 철촉(무경식, 사두형)이 출토되었음. 기조사된 35호분(가야소 조사)과 목곽묘의 규모나 출토유물상이 유사함.
 




<원삼국시대 목관묘 제원표>

  묘광 목관 비고
길이(cm) 너비(cm) 깊이(cm) 길이(cm) 너비(cm)
1호 320 144 20 230 70  
2호 310 149 40 250 71  
3호 265 127 18 210 60  
4호 248 100 71 196 44  
5호 246 102 70 - - 석실묘와 중복
6호 260 140 48 190 70 조사중
7호 (100) 124 - - - 6호 목곽묘와 중복
8호 235 118 18 180 60 조사중

 
 
② 삼국시대 목곽묘
- 삼국시대 목곽묘는 조사지역 전 지역에 고루 분포하고 있는 양상으로 총 10기가 확인되었으며 소형~대형의 다양한 규모가 확인됨.
 



- 1호와 7호 목곽묘는 길이 7m급의 대형 목곽묘로 바닥에 천석을 한 벌 깔고 중앙에 구유형 목관을 고정하기 위한 고정석이 놓았음. 1호 목곽묘는 목개가 덮히는 높이에 황갈색 점질토가 확인되며 바닥에서도 일정범위에 황갈색 점질토가 확인되고 있어 목개 상부에 점질토를 발랐을 것으로 추정됨.

- 양단벽부에 유물이 부장되었을 것으로 파악되나 대부분 유물은 도굴구덩이 내에서 출토되었음. 남서단벽부에 일정규모의 이단굴광이 확인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아직 보완조사를 요하나 보강토 내 수장의 흔적일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됨.
 



- 7호 목곽묘는 조사지역 내 가장 대형의 목곽묘로 도굴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음. 북서단벽부에는 바닥석이 깔리지 않았고 토기류 위주의 부장공간이 마련되어 있음.

남동단벽부에는 한쪽으로 치우쳐 고배 2점만이 주장되어 있으며 바닥은 부정형으로 깔아 놓은 양상이 석곽묘에서 확인되는 순장공간의 양상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순장공간일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파악됨. 
 



- 중앙부에는 바닥석을 깔고 중앙에 관고정석이 확인되고 있어 피장자 안치공간으로 파악됨. 피장자 안치공간 내에는 환두대도, 유자이기, 철모 등 철기류가 다량 부장되어 있음.

보강토는 긁은 풍화암반편을 위주로 채우고 있어 위석식 목곽과 같은 효과를 보여주고 있음.

 
<목곽묘 제원표>

  묘광 목곽 비고
길이(cm) 너비(cm) 깊이(cm) 길이(cm) 너비(cm)
1호 690 223 58 540 158  
2호 386 164 20 308 125 청동기시대 수혈과 중복
3호 (70) 114 12 - -  
4호 360 (115) 32 280 78  
5호 400 169 58 330 82  
6호 460 188 40 388 76 7호 목관묘와 중복
7호 708 281 59 555 202  
8호 382 126 34 263 70  
9호 304 183 33 236 112 조선 수혈과 중복
10호 200 102 16 125 38 목관흔

 
 
③ 삼국시대 석곽묘
- 삼국시대 석곽묘는 2기가 확인되었음.
 

- 1호 석곽묘는 현재 자연배수로 및 탐방로로 인해 남단벽부와 그 주변부가 완전히 훼손되었으며 서쪽부분은 소방도로 개설로 인해 묘광과 봉분이 완전히 파괴된 것으로 파악됨.

마을 주민의 전언에 의하면 하루밤사이에 도굴이 이루어졌으며 예전에는 사람들이 드나들었다고 함.

- 1호 석곽묘는 주구가 조성되어 있고 봉토의 일부도 잔존함. 

주구 중앙에는 대호 2개체가 깨어진 채로 출토되었으며, 일부 고려시대 석곽묘로 인해 훼손되었음.

주구의 남쪽부분에는 소형기대, 고배 등의 소형기물이 완형에 가까운 형태로 출토됨.

개석은 현재 3매가 잔존하며 개석과 벽석사이에는 황갈색 점질토를 발라 밀봉이 이루어짐.

벽석과 벽석 사이에도 동일한 점질토를 발라 밀착력을 높이고 작은 할석과 천석을 이용해 쐐기하여 견고함을 높였음.

석곽묘의 규모는 길이 547㎝, 너비 150㎝, 높이 132㎝로 말이산 고분군 내에서는 작은 규모임.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고 바닥에 토기편과 철기편 일부만 잔존함.

- 2호 석곽묘는 소형 석곽묘로 법면부에 1/2 이상 파괴된 상태로 확인됨. 바닥에는 판상할석을 깔았으며 유물은 확인되지 않음.
 
④ 삼국시대 석실묘
- 삼국시대 석실묘는 1기가 확인되었음.
 



- 1호 석실묘는 밭경작 등으로 인해 상부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정도는 잔존함. 양수식 연도를 가진 세장방형 석실묘로 주변에는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한 4, 5, 8, 47호분(1호분도 석실묘로 추정됨)이 분포함.

바닥은 일정한 크기의 천석을 깔고 중앙부에 판상할석 2매를 놓아 관대로 사용함. 기 조사된 석실묘에서는 이러한 관대시설이 확인되지 않음.

- 후벽부에 토기류 위주의 부장이 이루어졌으며 전벽부에 안교, 재갈 등의 마구류를 부장하고 있음.
 



중앙 관대 주변에서 백제 사비기 대금구가 출토되었음. 이 대금구는 가야 중심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되는 것이며, 538년 사비 천도를 기점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양식으로 541년과 544년 사비회의와 관련된 것으로 판단됨. 

석실묘의 규모는 길이 404㎝, 너비 156㎝임.

 

생생한 현장 소식은 

 

이영식 옹이 전하는 함안 말이산 고분군 도항리 425번지 발굴현장

 

 

이영식 옹이 전하는 함안 말이산 고분군 도항리 425번지 발굴현장

 

historylibrary.net

 

 

발굴성과 정리는 

 

세계유산 등재 코앞 함안 말이산 무덤에서 6세기 백제 유물 튀어올라

 

세계유산 등재 코앞 함안 말이산 무덤에서 6세기 백제 유물 튀어올라

삼한시대 널무덤 8기, 삼국시대 덧널무덤 10기 확인 순장 추정 흔적 확인하고, 삼한시대 무덤에서는 유리장식 경남 함안군이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재)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 의뢰한

historylibrary.net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