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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해발 618미터 장수 산꼭대기에서 돌발한 물탱크

by taeshik.kim 2021.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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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을 우리 한류기획단에서는 아래로 소개했으니, 혹 영어가 부담스런 분들은 내가 전하는 이 소식과 이 소식 말미에 장수군 관련 보도자료를 첨부하니 그것을 참조하면 되겠다.

1,500 year old Three Kingdoms-era Wooden Water Storage Facility Discovered

1,500 year old Three Kingdoms-era Wooden Water Storage Facility Discovered

JANGSU, July 2 (Yonhap) -- A wooden water storage facility built in the 6th century has been excavated from a beacon site in Chimgok-ri, Gyenam-myeon, Jangsu-gun, Jeollabuk-do. According to Jangsu-gun ...

k-odyssey.com


우선 이번 조사를 담당한 기관은 조선문화유산연구원이라는 데다. 썩 귀에 익은 기관은 아니다.

아마도 장수군에서 발주한 발굴조사를 담당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네들이 정리한 이번 조사 성과는 아래와 같다.

이번 발굴조사는 장수군 계남면 침곡리 산20번지에 위치한 장수 침곡리 봉수 정비와 기초자료 확보를 위한 조사로 조사면적은 190㎡이다.

이 위치를 보면 봉수 혹은 와치타워 자리다. 


조사지역은 계남면의 서쪽에 발달한 봉화산 능선의 북쪽 끝자락으로 해발 618m의 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남쪽으로 방아재를 지나 1.2㎞ 떨어진 곳에 침령산성(전라북도 기념물 제141호)이 위치한다.

조사지역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계북면, 서쪽은 천천면, 동쪽은 계남면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에 입지하고 있다.


이번조사는 시굴조사에 확인된 추정 집수시설(목곽고)과 그 주변 지역에 대한 조사 로 발굴조사결과 목곽고 1기, 소성유구 1기, 조사지역 북서쪽 경계에서 석축이 확인되었다.

산꼭대기 평탄대지를 파서 물탱크를 만들었다. 물탱크일까?


1. 조사지역인 봉우리 정상부는 북쪽의 계북면과 서쪽의 천천면 일대의 관망이 유리한 곳으로, 이중 목곽고는 해발 618m 정상부 평탄면에 축조되었다. 규모는 굴광을 기준으로 5.5m×4.8m의 크기이며 평탄면 중심에 위치하는데, 주변에 다른 유구가 자 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협소한 위치에 축조되었다.

2. 목곽고는 평면 장방형이며, 점토벽 안쪽은 3.4m 내외의 방형으로 축조되었다. 암반 안쪽으로 바닥은 50~60㎝, 벽은 60~100㎝ 내외로 점토를 두껍게 충전하였으며, 이 시설을 집수시설로 추정할 때 물의 소실을 방지하고 저장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점토를 충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곽


3. 점토벽 안에는 점토 충전을 위한 목곽 결구흔이 확인되었다. 결구흔은 두께 20 ㎝ 내외의 각재를 이용하여 ‘井’자 형태로 결구하였다. 각재의 교차점과 중간에 원형의 촉구멍을 뚫어 목주를 세웠고, 목주 안쪽으로 판재를 덧대어 점토를 충전한 축조 방법이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침곡리 봉수에서 확인된 목곽고는 목재가 남아있지 않지만 목재 부식흔과 목곽 결구방식이 뚜렷하게 남아있어 장수지역 동시기 목곽고의 축조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물탱크 나무 구조물은 없어졌으나 흔적은 남았다. 
목곽고 단면이 이렇다고 


4. 조사 과정 중에 목곽고와 인접한 곳에서 소성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소성유구는 목곽고 북쪽에 위치하는데, 토층 조사결과, 소성유구를 파괴하고 목곽고가 축조되었다. 유구의 형태가 온전하지 않지만 목곽고 이전에 이 평탄면에 다른 유구가 존재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지역 백제 전통 목곽고 
목곽고 이전 소성유구라는데 이게 영 수상쩍다. 
이 석축은 어느 지점인지 모르겠다. 


5. 유물은 목곽고 내에서 적갈색연질의 발형토기와 고배편, 동체부편이 소량 출토되 었다. 목곽기초부가 위치한 점토바닥에서 확인되어 목곽고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유물로 판단된다.

6. 목곽고는 정상부의 협소한 평탄면에 입지하며, 장방형으로 암반을 굴광하고 벽과 바닥에 목곽구조물을 설치한 후 점토를 충전한 유구이다. 이와 유사한 유구로는 금산 백령산성 목곽시설, 공주 공산성 목곽고, 순천 검단산성 점토집수정, 고령 주산성 목 곽고 등이 존재하며, 대부분 저장시설인 목곽고와 집수시설로 보고되었다. 이들 유적에서 조사된 유구는 목곽구조물과 점토벽이 공통으로 확인되었는데, 침곡리 봉수에서 확인된 목곽고와 함께, 이 시기 산성 내 저장시설의 구조와 기능, 성격등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 친구들이 목곽고 바닥에서 출토한 삼국시대 토기들이란다.


이상이 조사성과 요약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해발 600미터 산 꼭대기 평탄대지에 물을 모아 사용하기 위한 나무상자 모양 시설이 확인됐다는 것이며, 이 물 저장시설이 들어서기 이전 이곳에는 불을 먹은 흙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혹 이 불 먹은 흔적을 봉수와 연결하려 하는지는 모르겠다.

예서 관건은 저 목곽고를 둘러싼 유적 성격을 무엇으로 봐야할지다. 내가 현장을 둘러본 것이 아님은 전제하고 내 의견을 제시하면 첫째 그 위치로 보아 이곳이 산성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 친구들은 석축에서 튀어나오셨다고


산성이라면 주변에 성벽 같은 시설이 남아있어야 할 터이지만 그런 보고가 아직 없다. 덧붙여 저 정도 해발이 되는 곳에 산성을 쌓지는 않는다. 너무 높은 곳에 위치한 산성이 방어에는 절대 유리할지 모르지만, 그건 그네들한테도 절대 불리한 조건이기도 하다.

저처럼 높은 지점 위치한 군사시설은 공격하는 측에서도 공격할 이유도 없다. 뭐하러 올라간단 말인가?

산성이 대개 해발 기준으로 기껏해야 200~300미터 지점에 위치하는 까닭이 이에서 말미암는다.

주변을 조망하기 위한 산꼭대기라는 점을 고려할 적에 결국 두 가지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첫째 봉수 둘째 와치타워 말이다. 예서 와치타워라면 일종의 보루 같은 감시시설일 것이다.

소성유구 반복


물을 저장하기 위한 시설을 따로 두었다는 것으로 보아 최소 인력이 일정 시점 상주를 한 것으로 보이며, 그럼에도 또 하나 궁금한 점은 저 산 꼭대기에 물이 나오냐는 것이다. 그 규모로 보아 결국 자연 빗물을 사용하기 위함으로 보는데, 저 높은 산으로 바리바리 물동이를 지고 올라 물을 채웠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산기슭 어딘가에 우물이 있을 것이로대, 저만한 물창고를 채울 물은 빗물 말고는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게 채운 물은 쉬 썩지 않을까? 이 점이 또 궁금하다. 아무리 끓여서 사용한다 해도 말이다.

아무튼 이곳은 봉수 유적이라 해서 조사가 시작되었다. 혹 그런 성격 규정 혹은 추정이 조사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으나, 어떤 성격의 시설이 있었는지는 이런저런 검토가 잇따를 테니, 그것을 기다리고자 한다. 현장을 확인하기에는 해발 고도가 너무 높다!!!!

아래는 장수군이 소식을 정리한 보도자료다.

침곡리 봉화터 “목제 집수시설” 확인
- 장수지역 가야봉화터 발굴조사에서 확인-

장수군은 침곡리 봉화터에서 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목제 집수시설 1기소성유구 1기가 확인됐다고 2일 밝혔다.

장수군에 따르면 장수군은 호․영남 화합과 상생의 장을 마련하고 장수가야 역사 재정립을 위해 문화재청(청장 김현모) 허가를 받아 ‘전북지역 가야문화유산 연구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조선문화유산연구원(원장 이택구)이 발굴 조사하고 있는 ‘장수 침곡리 봉화’의 발굴조사에서 침곡리 봉화터에서 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목제 집수시설 1기와 소성유구 1기가 확인됐다.
* 발굴현장: 전라북도 장수군 계남면 침곡리 산20
* 목제 집수시설: 나무틀을 짜아서 결구시키고 물을 모으던 시설
* 소성유구 : 불을 먹어 단단해진 흙이 확인되는 유적 (불 사용흔적)

이번 확인된 목제 집수시설은 나무틀을 만들고 벽에 점토를 채워 축조되었는데 물이 암반으로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고 내부에 물을 저장하기 위한 저장시설로 드러났다.

집수시설은 평면 장방형으로, 규모는 가로 3.4m, 세로 3.1m, 깊이 2.2m이다.

집수시설의 축조방법을 보면 산정상부 평탄면에 암반을 2.8m 깊이로 굴착한 후, 바닥에 50~60㎝ 두께로 점토를 채웠다.
이 후 벽면에 점토를 채워 넣기 위해 목재를 ‘井’자형으로 결구한 후 판재를 덧대어 벽을 만들고 벽 안쪽으로 100㎝ 두께의 점토를 채운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축조 방법은 백제 웅진기 수도였던 공산성, 금산 백련산성, 이천 설성산성 등 백제권역의 산성에서 확인된 바 있으며, 공산성에서 확인된 시설은 규모와 형태에서 침곡리 봉화터에서 발견된 집수시설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이번 조사를 통해 집수시설 안에서 발형토기, 고배편 등 삼국시대 토기 출토 등의 성과를 거뒀다.

침곡리 봉화터에서 발견된 목제 집수시설은 전국적으로도 희소성이 있으며 삼국시대 목조건축의 특징과 축조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관련 전문가에 따르면 “침곡리 봉화터에서 발견된 집수시설은 공주 공산성의 목곽고와 매우 유사하고 6C 전반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며 “봉화 사용을 위한 주둔군의 식수와 생활용수 확보를 위한 집수시설로 추정된다”고 평가했다.

장영수 군수는 “장수 침곡리 봉화터의 역사성과 가치를 규명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며 “이번 성과에 대해서는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는 등 보존·활용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성과를 계기로 주민 모두가 장수가야 역사 재정립에 하나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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