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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해외 유출 문화재와 그 반환, 2009년의 어떤 생각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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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출 문화재와 그 반환
김태식(연합뉴스 문화부 기자) taeshik@yna.co.kr
(출처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 2009. 10. 13.) 


국정감사장의 풍경

반짝인다고 그 모두가 금金은 아니다. 은박지일 수도 있고, 운모雲母일 수도 있으며, 반딧불일 수도 있다.

국회 국정감사의 계절이 돌아왔다. 문화유산계 기자로 일한 지 11년째. 그러니 올해로 나는 11번째 문화재청 국감 현장을 목도하게 되리라. 나아가 올 국감에서도 어김없이 이런 풍경이 재현되리라. 문화재청장을 불러다 놓은 국회의원님들, “청장, 우리 문화재로서 해외에 반출된 게 7만4천여 점이라는데 이 중에서 얼마나 국내로 반환되었습니까? 반환을 위한 적극적인 정부의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닙니까?”라고 ‘질타’하는 풍경 말이다. 

나는 이런 정서를 ‘문화재 애국주의’로 부르거니와, 실제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의 국내 반환을 역설하는 일만큼이나 자신의 애국정신을 선전할 수 있는 더 좋은 방안이 적어도 문화유산계에서는 찾기 힘들다. 비단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문화재를 애국주의의 징표로 삼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 많다. 우리는 그런 물결을 남대문 방화사건에서 보지 않았던가? 
 

2005년 9월 2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를 한다. 고인이 춘발이 형도 보이고, 김창준 훗날 문화재청 차장도 있다. 이홍렬 옹은 당시 국장이었던가?

 


떼제베와 외규장각 도서

해외 문화재 반환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활발한 반환운동은 실제 몇몇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개중 일본 도쿄대학이 소장한 조선왕조실록이 반환된 일이라든가,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길주 지역의 의병장 정문부의 활약상을 새긴 북관대첩비가 역시 일본에서 돌아온 일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해외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 결정적인 사건이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 군대가 약탈한 이른바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요청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조선시대 규장각을 계승했다는 그 규장각을 대학 부설기관으로 거느린 서울대학교가 1990년대 초반에 제기한 그 반환운동은 시속 300㎞를 낸다는 ‘떼제베’ 기술 도입과 맞물려 그 속도만큼이나 해외 유출 문화재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을 폭발하게끔 했다. 그러면서 등장한 수치가 ‘7만4천’이다.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 수량으로 항용 드는 이 수치는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90년대 국제교류재단이 실시한 관련 조사에서 파악했다는 숫자에 기초를 둘 것이다. 당시로서는 이 숫자가 갖는 의미는 해외 유출된 우리 문화재 현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그 수치가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우리 사회 일반에 광범위하게 통용된다는 사실은 분명 비극이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이 수치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실제 해외에 이런저런 이유나 경로로 나가 있는 우리 문화재 수치는 ‘7만4천’을 훨씬 상회하기 때문이다. 그 실제 수치가 얼마인지는 안타깝게도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 시점에서 확실한 건 실제 수치는 그 보다 몇 곱절, 아니, 어쩌면 몇 십 곱절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2011년 4월 14일, 외규장각 도서가 파리 샤를드골공항에서 특수 컨테이너 2대에 옮겨져 아시아나항공 OZ502편에 실리고 있다.



약탈과 반환

이 ‘7만4천’에서 내가 정작 우려하는 대목은 해외 유출 문화재라고 하면 무조건 그것이 국내에 반환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부지불식간에 우리 사회의 뇌리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이에서 분명히 지적하거니와 해외 유출 문화재라 해서 그 모든 것이 반환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 유출 문화재 중에는 외규장각 고도서처럼 분명히 그 유출 과정이 불법 약탈이라는 사실이 전제된 경우도 있지만, 그 경로를 알 수 없는 사례도 많으며, 더구나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나간 것도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리라. 

최근 이 해외 유출 문화재 반환 운동을 활발히 추진하는 국내 어떤 단체가 우리 문화재를 소장한 미국 내 박물관이나 대학 등지를 돌면서 조사했으며 현재도 조사 중인 것으로 안다. 나는 그런 소식을 접하고는 과연 그것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머나먼 미국 땅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밝혀낼 수 있을까 몹시도 궁금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내 기억으로 그 조사 대상은 대부분 합법적인 통로를 통해 미국으로 반출됐다는 사실이다. 이들 기관은 해당 한국 문화재를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그리고 얼마만한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했는지를 입증하는 영수증까지 지니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이들 한국 문화재의 해외 반출이 불법이었음을 입증함으로써, 이를 근거로 그것의 국내 반환을 추진하고자 생각한 사람들은 당혹했으리라.   
 

2014년 1월 7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美 허미티지박물관 기증 조선불화가 돌아왔음을 당시 박물관 김승희 교육과장이 설명하는 중이다.



일본 신사의 수월관음

올해 6~7월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는 고려불화로는 보기 드문 걸작이 전시됐다. 일본 사가(佐賀縣) 가가미신사(鏡神社)라는 곳에 소장된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로 14년 만에 다시금 국내로의 대여 전시가 이뤄진 것이다. 

비단 1장에 그린 이 고려불화는 화폭 기준 크기가 419.5×252.2cm나 되며, 표구를 포함할 때는 그 규모는 530×300cm에 이르는 거폭(巨幅)이다. 이 정도면 차라리 후불탱화라 할 만하다. 실제 그렇게 사용됐는지도 모르겠다. 

이 수월관음도에는 이 불화가 제작된 내력을 적은 기록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워지고 없다. 다행히 이 기록은 19세기까지는 남아 있어, 그것을 당시 일본 지식인이 베껴 놓은 것이 있어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이 수월관음도는 고려 충선왕의 왕비인 숙비(淑妃)가 궁정화가 8명을 동원해 1310년 5월에 완성했다고 한다. 나아가 이 불화에는 1391년 일본 승려 료켄(良賢)이라는 사림이 지금의 가가미신사에 진상했다는 기록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로 볼 때 이 불화는 왜구가 극성을 부리던 고려말에 일본으로 약탈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심증을 품을 수도 있다. 나는 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이 불화가 일본 어딘가에 공식 선물로 주어졌을 가능성도 완전히 내치지는 못한다. 설혹 이 불화가 고려말에 왜구에 약탈된 것이라 해서, 600년 이상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것을 근거로 우리가 일본 측에 반환을 덮어놓고 요청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아주 이상적인 수순은 일본 측이 ‘자발적’으로 한국 측에 기증하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2009년 통도사 성보박물관 특별전에 납신 고려 수월관음. 일본 사가현佐賀縣 가라쓰시唐津市 가가미신사鏡神社 소장품이다. 화폭 기준 크기가 419.5×252.2cm에 달하는 대작이다.



유출 문화재, 유입 문화재

이런 사례들은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라 해서 그것이 반드시 약탈과 같은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 나간 것은 아니거나, 그 경로를 밝힐 수 없는 사례가 많음을 말해준다. 우리가 우리 문화재를 소장한 해당 국가나 기관, 혹은 개인에게 반환을 요청하고, 더구나 그런 요청이 도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것이 해외로 나간 과정이 ‘불법’이라는 사실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 불법성을 증명하지 않는 반환 요구는 ‘억지’나 ‘협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설혹 불법성이 증명된다 해서, 우리가 그 반환을 요청할 수 있느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더불어 해외 반출 문화재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국내에 들어와 있는 막대한 해외 문화재 문제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매양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중앙아시아 유물이 거론되거니와, 이는 분명 우리가 약탈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일본이 약탈한 것을 우리가 승계했다고 해서, 그 불법성이 감쇄하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이 외에도 우리의 문화재로서 합법적으로 해외에 나가 일이 있듯이, 국내에는 그런 경로를 통해 들어와 있는 다른 나라 문화재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에서 반환된 보물급 문화재들을 살펴보는 이민섭 문제부장관.  1994. 9. 22



반짝이는 금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라 해서 그것을 무조건 돌려받아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광범위한 통념은 우려스런 현상도 낳고 있으니, 그런 압박에 시달리는 우리의 국가 혹은 공공기관이 소더비와 같은 해외 경매시장에 나아가서는 비싼 값에 우리 문화재를 구입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왜 피 같은 국민세금, 혹은 공공기금을 수억 원, 혹은 수십억 원이나 쏟아부어가며 우리 문화재를 그런 방식으로 되돌려 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쉽사리 납득할 수 없다. 우리 문화재는 반드시 한국에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편협한 애국주의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런 생각이 외규장각 고도서처럼 명백히 불법적으로 약탈된 우리 문화재를 돌려받지 말아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나아가 정부나 민간차원에서 추진하고, 그 괄목할 만한 성과가 더러 있는 해외 문화재의 반환 노력 또한 지속되고 지지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라 해서 그 반출 통로 모두가 불법이나 약탈이 아니라는 인식은 한번쯤 새겨야 한다고 본다. 반짝인다고 그 모든 게 금이 아니듯이 말이다. 
 
***
 
13년이 흐른 지금, 저에 대한 내 생각이 물론 바뀐 대목도 없지는 않을 터이며, 또 저에서 인용한 수치가 현재 기준으로는 증감되어야 하는 것도 없지는 않겠지만, 저 시점에서 내 생각은 이랬다는 정도로 보아주었으면 한다.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면 내가 정체한 증거리다. 그 옛날 그 시점에 저리 생각했다 해서 그 생각이 여전히 옳다거나 바림직한 방향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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