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임란 코너엔 어김없이 그 처절한 증언이라면서 당시 재상으로 봉직한 퇴계학파 동인 서애 류성룡 저술 징비록을 실물 전시하며 제목에 이르기를
류성룡, 임진왜란과
자기반성을 기록하다
라 하고 그 서문 두 대목을 인용하기를
《징비록》이란 무엇인가? 임진왜란 후의 일을 기록 한 것이다. 한편, 임진왜란 전의 일도 가끔 기록한 것은 임진왜란이 그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백성들이 떠돌고 정치가 어지러워진 때에 나 같은 못난 사람이 나라의 중책을 맡아 위기를 바로잡지 못하고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떠받치지 못하였으니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중략)… 비록 볼만 한 것은 없지만 이 또한 그때의 일이니 버리지 못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나는 지난 일을 징계하여 후환을 조심한다”라 하였으니 이것이 『징비록』을 지은 이유이다.
라 했으니 이는 징비록이라는 책 성격과 그 책명이 비롯함을 요약한 훌륭한 대목이라 하겠다.
하지만 징비록이 진짜 저와 같은 정신을 구현했는지는 전연 별개라
철저히 철두철미 수미일관 야지리 모지리 본인과 본인 당파에 대한 처절한 두둔과 변명과 위업 자랑으로 일관하면서 본인과 본인 당파에 대한 실책 자인이나 자기 반성은 눈꼽만큼도 없다.
내 친구 순신이가 없었더래면 사직이 망했을 것이라며 그런 순신이를 파격 발탁한 이가 바로 나 류성룡이라 해서 곳곳에서 순신이 업적을 현창하니 징비록은 실상 징비가 아니라 성웅 이순신전이라
뿐만인가? 임란 직전 황윤길과 더불어 일본에 사신단 일행으로 간 학봉 김성일이 일본 침략이 있을 것이라는 황윤길 보고에 반발해 일본 침략은 없을 것이라는 공식보고서를 제출한 학봉이 우국충정에서 거짓 보고를 했다는 직접 면담 기록을 첨부하며 두둔했으니 이유는 딴 게 없어 같은 퇴계학당 동문선배로 같은 동인이었기 때문이다.
저에 화답한 것이 충무공일기라 이 역시 오직 오야붕 류성룡만 상찬하면서 반대당파는 모조리 씹어돌렸다.
류성룡과 이순신 이데올로기로 임란을 읽을 수는 없다.
저들을 당파로 돌리고 저들의 저술 역시 철두철미 당파에 기조해 역사를 왜곡하고 주물하려 했음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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