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시교위 매장문화재센터가 한창 발굴 중인 4세기 후반 무렵 고분시대 부웅환산고분富雄丸山古墳이라는 무덤 통나무 목관 내부 노출 상황이다.
통나무를 길쭉이 모양으로 반토막 낸 다음 수박 속을 걷어내듯이 대롱 모양으로 만든 다음, 각각 아랫동과 윗동으로 썼으니, 내부는 삼단으로 격벽판을 고정해 분리했다.
중앙 부분이 주실主室이라 해서 시신을 묻은 곳이다.
선혈이 낭자한 듯한 저 바닥이 시신 머리가 있었던 곳이요, 저쪽 반대편 구리거울 석점이 나온 데가 발치에서 가까운 지점이다.
저 수은은 바닥에 고루 깔린 모양새지만, 얼굴 쪽에 집중해서 퍼부었다.
저것이 한반도로 건너오면 수은보다는 운모를 쓴다. 운모를 얼굴을 중심으로 바케스로 갖다 부었다.
운모? 수은?
왜 운모이고 수은이겠는가?
한반도는 수은을 잘 쓰지 않았다. 나는 재료 때문이라고 본다.
일본열도는 수은을 상대로 채취하기 쉬운 환경이었는지 모르지만, 수은을 얼굴에다 쏟아부은 반면 동시대 한반도에서는 운모를 쏟아 붓는다. 이는 재료 차이일 뿐 그 근간하는 정신은 똑같다.
영생불사永生不死이며 사상적 근간은 도교다.
한반도에서는 수은을 구하지 어려워 꼭 그것을 쓰야 할 곳에서는 대체로 산화철을 대용으로 썼다.
이는 그만큼 한반도에서는 수은을 다량으로 확보하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수은과 운모는 한 통속이라는 뜻이다.
결국 일본 쪽 저 무수한 수은 자료는 곧 한반도 역사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삼각연신수경은 내가 늘 말하듯이 한국사 제1급 사료다.
단순히 중국에서 제작했네 비미호경이네 마네 하는 이 딴 거지 같은 저급한 논급 집어치워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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