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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비형랑과 화랑세기] (2) 형을 도운 낭정郞政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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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는 친했다?

 
"비형랑은 형을 도와 낭도郞徒를 다스렸다" 

이 ‘도화녀 비형랑’ 이야기에 사륜계를 선전·홍보하는 목적이 담긴 이유로 많은 신라사학도가 보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 실질 주인공이라 할 비형랑鼻荊郞을 용춘龍春으로 보기 때문이다.

용춘이 누구인가? 태종무열왕 김춘추 아버지 아닌가? 이런 견해에 의한다면 비형랑은 바로 김춘추의 아버지다. 

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은 이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비형랑과 그가 거느린 귀신 무리의 행태가 화랑이라고 본다. 어째서 그러한가? 다음 신종원의 언급은 그 이유를 집약한다. 

“비형이 무리를 이끌고 다니며, 나라의 큰 공사를 지휘하였다는데 이것은 전쟁시 무장武將으로 나아간 것과 같다. 비형은 ‘郞’이라 불리었으며, 휘하의 유능한 인물을 천거하는 등의 면모에서 비형 자신과 그 무리를 화랑과 낭도로 보는 견해는 타당하다. 주지하다시피 화랑도는 무리를 지어 도의道義를 연마하고, 山水를 유람하며, 인품의 좋고 나쁨을 알아 조정에 인물을 추천하였기 때문이다.”(앞 논문, 동 학회지 17쪽) 

신종원이 말한 “무리를 지어 도의道義를 연마하고, 山水를 유람하며, 인품의 좋고 나쁨을 알아 조정에 인물을 추천”한다는 특징은 바로 《삼국사기》 권제4, 신라본기 4, 진흥왕 37년(576)이 말하는 신라 화랑의 특징이며, 실제 이 대목에서 신종원은 이 대목을 전거典據로 인용한다. 

비형랑이 용춘이요, 그가 화랑이라는 추정은 신라사학계에서는 이른바 통설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될 만큼 이제는 광범위한 지지층을 확보한 주장이다. 미안하나, 이는 《화랑세기》를 표절해 적절히 짜깁기한 데 지나지 않는다. 

말한다. 비형랑과 용춘이 같은 인물이건 아니건 관계없이, 그들이 화랑이라는 언급은 이 지구상에서 오직 하나, 《화랑세기》에 보일 뿐이다.

더구나 이런 주장이 《화랑세기》가 출현한 이후에 비로소, 그것도 우후죽순처럼 나오기 시작해 소위 대세를 점령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카인앤아벨?

 
하지만 어느 누구도 《화랑세기》를 봤다고 고백하지 않는다. 심지어 오직 《화랑세기》에만 보이는 이런 언급을 부러 도외시하면서, 그런 내용이 들어간 《화랑세기》가 김대문의 그것이 아니고 후대의 누군가가, 20세기를 살다간 재야사학자 남당南堂 박창화朴昌和라는 사람이 조작해 낸 위서僞書라는 주장을 버젓이 일삼기도 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은 13세 풍월주風月主를 역임하면서 대표 화랑으로서 낭도들을 이끌었다. 이때 그를 도운 이가 비형랑이었다. 

“(용춘공이) 문노文弩 문하에 들어가 비보랑秘寶郞을 형으로 섬기고, 서제庶弟인 비형랑과 함께 힘써 낭도를 모으니, 이렇게 하자 대중이 따르고 3파가 모두 추대하고자 했으므로, 서현랑舒玄郞이 (풍월주) 위를 물려주었다.” 

13세 용춘공 전에 보이는 한 대목이다. 이에서 보듯이 비형랑은 용춘의 서제로서 화랑 집단에 관여하면서 형을 도왔다. 이를 본다면 용춘도, 비형랑도 모두 화랑에 관여한 전력이 있는 것이다. (2017. 2. 20)

 
*** 
 
화랑세기가 가짜라면서, 그 가짜라는 화랑세기를 다 베껴 쳐먹고 있다. 

화랑세기가 가짜? 엿드세요. 

그 논리대로라면 삼국유사가 더 가짜인가 화랑세기가 더 가짜인가?

삼국유사가 훨씬 더 가짜다 이 썩을 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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