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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환재桓齋 박규수朴珪壽(1807~1877)의 간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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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신미양요 150주년, 내후년은 한미수교 140주년이다. 이를 되새기는 움직임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신미양요의 한 원인이 되었던 제너럴 셔먼 호 사건(1866) 당시의 평안감사 환재 박규수(1807~1877)의 간찰을 살펴본다.

환재는 제너럴 셔먼 호 사건 이후에도 한동안 평안감사 직을 수행했는데, 이 간찰은 셔먼 호 사건 1년 뒤인 정묘년(1867) 6월 썼다.

수신인은 하급자인 의주부윤. 내용은 그리 특별할 게 없는 안부편지인데, 글씨가 보통이 아니다. 추사 스타일이 아닌 자기 필체다.

이 당시 의주부윤이 누구였나 궁금해 고종실록을 찾아보니 윤자승(1815-?)이란 인물로 나온다. 상당히 낯선 이름인데, 판서, 대사헌, 승지 등을 역임했고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전권대신 신헌(1810-1884)을 수행한 전권부사였다.

 

서성호, 박진우 두 분이 탈초와 번역을 도와주셨습니다. 머리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간찰 탈초와 번역을 조금 더 다듬어 올려봅니다.


灣府台執事 
比熱伏惟台體萬旺 三載塞垣 家國戀切 今蒙恩遞 仰想感豁解官日 快幸倍於做官日 僊僊身輕欲飛 當何如耶 獻賀不已 且以坐而得對敍有期 自以爲春耳 餘都留不備
丁卯六月十二日 弟珪壽拜


의주부 집사(2인칭)께.
근래 뜨거운 날씨에 대감의 몸이 평안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변방에 3년 계시면서 집안과 나라(서울)이 몹시 그리우셨을 터인데 마침 성은을 입어 교체되셨으니, 관복 벗는 날의 감회가 벼슬에 있을 때에 비해 갑절은 더 기쁘고 다행스러웠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표표히 몸을 가볍게 하여 날아가고 싶으나 마땅히 어찌하겠습니까? 축하드려 마지 않을 뿐입니다. 또 봄이 되거든 마주하고 이야기할 기약이 있으리라 여겨봅니다. 나머지는 모두 갖추지 못합니다. 

정묘년 유월 십이일, 제弟 규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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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국립중앙박물관 강민경 선생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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