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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황사에서 미세먼지, 미세먼지에서 초미세먼지로

<그제 서울의 미세먼지>


내가 20여년 전 기상청 출입기자인 시절에는 미세먼지라는 기상 용어는 없었다. 그때는 모두 '황사(黃沙)'라 했으며, 그 진원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중국발 사막모래였다. 고비사막에서 황사가 발생해 편서풍을 타고는 한반도로 날아든다 해서, 그런 고비사막을 초원과 수풀로 만들겠다 해서, 현지로 가서 사방공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던 황사가 어느 순간 '미세먼지'라는 말로 교체되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그것으로도 부족함인지 '초미세먼지'라는 말로 대체되는 장면을 목도한다. 나아가 중국발 황사도 슬그머니 기어들어가더니, 그 원인 중 하나로 전락하고, 다른 발생 원인을 찾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명칭이야 무엇이건 '흙비'라는 검색어로 내가 과거에 송고한 기사 내역을 뽑아봤더니 2건이 걸러거니와, 아래 첨부하는 기사는 그 첫번째다. 2001년이니, 당시는 학술과 문화재 담당이었던 시절이라, 아마 그런 인연으로 잘난 체 해 본다 해서 긁적거리지 않았다 해 본다. 


2001.03.07 10:03:09 

<신라 진평왕 때의 황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서기전 57년 시조 혁거세의 건국 이래 서기 935년 경순왕 김부가 나라를 통째로 들어 왕건에게 바치기까지 천년 왕조를 지탱한  신라 56왕중 제26대 진평왕(眞平王)은 재위 기간이 아주 길다.

    재위 전 이름이 백정(白淨)인 김진평은 서기 579년 작은 아버지인 제27대  진지왕(眞智王)이 재위 4년만에 정치를 어지럽히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폐위되면서  추대받아 무려 54년간 왕으로 있다가 서기 632년 사망한다.

    조선 왕조 27왕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오랜 기간인 52년간 재위한 영조보다도  진평은 더 오래 왕 노릇을 했다. 신라왕들 가운데 그보다 더 긴  재위기간을  기록한 이는 13세에 등극해 61년간 재위한 박혁거세(BC 57-AD 4년)가 유일하다.

    신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군주로 꼽히는 제24대 진흥왕(眞興王)에게는 아들 둘이 있었는데 동륜(銅輪)과 금륜(金輪)이 그들이었다. 이중 동륜은 태자로  책봉됐으나 일찍 죽는 바람에 동생 금륜이 즉위하니 이가 진지왕이다.

    기록에는 동륜이 언제, 어떤 까닭으로 죽게 되었는지가 밝혀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화랑세기」 필사본이 발견됨으로써 동륜은 밤마다 어색(漁色), 즉 여자 낚시질을 하러 다니다 어느날 밤 사나운 개한테 물려 죽은 것으로 비로소 밝혀졌다.

    진평은 바로 동륜태자의 아들이다.


<자동차 유리에 앉은 미세먼지>


    그런데 당나라 초에 완성된 중국 역사서인 「양서」(梁書)라는  책에서  신라에 대한 기록인 '신라전'을 보면 진평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처럼 신라 제26대가 아닌 제30대 왕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는 두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중국 기록이 잘못됐거나 실제 그가 30대  왕이었는데 어떤 사정으로 한국측 기록의 신라 왕위계승표에서 4명의  왕이  탈락했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아마도 후자쪽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한국사학계는 대체로 신라 상대 왕위계승표에 없던 왕이 들어가 붙었고, 그래서 신라 역사 또한 실제보다 엿가락처럼 늘어났다고 보고 있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있던 왕들조차 탈락됐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양서」 '신라전' 기록을 통해 명확히 알 수 있다.

    어떻든 긴 재위기간만큼이나 진평왕 시대 신라에는 실로 많은 일이 있었다.  「삼국사기」 진평왕조 기록을 보면 이 즈음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에 내내  시달렸음이 드러난다. 

    이는 당연했다. 왜냐하면 진평왕은 할아버지 진흥왕이 물려준 강대한 신라를 넘겨받았으며 한강 유역을 상실한 백제와 고구려는 절치부심 신라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평왕 재위 당시 사건 중에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이 바로 황사 현상이다.

    재위 49년째인 서기 627년 음력 3월 대목에 「삼국사기」는 "큰 바람이 불고 흙비가 내렸는데 5일 동안 계속됐다"(春三月 大風雨土 過五日)고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흙비, 즉 우토(雨土)가 지금의 황사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로 보아 황사현상은 적어도 1천400년 전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록에서 주목할 것은 황사가 발생한 때가 봄 3월이라고 하고 있는  점이다. 황사가 대체로 봄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기록의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전체 기록이 워낙 간략하기 때문인 듯 황사 현상이 남아있는 대목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분명 연례행사였을 황사가 유독 진평왕 대목에 특별히 언급돼 있는 것은 기록처럼 무려 5일이나 계속됐기 때문이었으리라.

    7일 현재 닷새째 계속되고 있는 올해 황사현상과 천 수백년 전 신라 진평왕 당시 황사는 분명 닮아 있다. 다만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면 현대인들이 이런 황사를 쏟아내는 중국을 원망하는 반면 신라인들은 하늘의 재앙을 두려워했다는 점이다.

    taeshik@yonhapnews.net 

(끝)


*** 기사 본문에 인용한 "큰 바람이 불고 흙비가 내렸는데 5일 동안 계속됐다"(春三月 大風雨土 過五日)는 "흙비가 닷새를 넘겨 계속됐다"고 교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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