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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답사하는 김란기 형과 요새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가끔 어울린다. 어제 보쟀는데 여러 일정이 겹쳐 내가 밥을 사는 조건으로 남영동으로 오시라 했다. 어금니 두 갤 뽑았대서 이빨이 안 좋대나 어쩐다나 해서 비교적 무른 살코기 주문하니, 주인장이 항정살을 추천한다. 괴기 먹어야 힘이 나니 점심으로 긁었다. 입가심으로 커피 한 잔 땡기고 소화도 할 겸 혼란한 심신도 달래자 해서 남산 밑 후암동 자락이나 한 바퀴 돌자 했다.
형은 마침 이곳에 오래 살아, 이 일대 지리도 이곳 주민 20년째인 나보다 훤 하고 마침 주전공이 근대 도시역사학이라 그의 풍성한 해설을 곁들여 매양 스치기만 하던 이 일대 도시경관 역사 일부를 배운다. 이젠 저 형도 나이 65를 넘겼으니, 언제 갈지 모른다. 걸으며 내가 말했다. "빨리 가지 마쇼" 형이 맞짱구한다. "자네나 조심해"
마누라가 나왔고, 아들놈도 다닌 삼광초등학교 앞이다. 그 정문 앞 요상타 한 이것들이 식민지시대 소위 문화주택이란다. 곳곳에 이런 집이라, 벽면이나 지붕 등등은 대부분 교체되었지만 그 형태만큼은 고스란하다. 급격화 도시화에도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이곳은 용산미군기지와 인접 지점이요, 그 기지는 그 전엔 조선군주차사령부가 있던 자리다. 그래서 이 후암동엔 그와 관련한 상가가 발달하고 그 사택이 즐비했다 한다.
후암생활관은 한국은행 소유며, 지금은 아마 그 직원용 아파트 혹은 기숙사인가 보다. 이곳이 본래는 조선식산은행인가 소유였다 하는데 박승 총재 시절인 2006년 현재와 같이 바꾸었다. 이곳은 수십 번 지나쳤는데 내부는 처음 들어가 봤다.
그 인근 대략 오륙층 높이 연립주택이 있어 엘레베이터는 없으나, 계단을 통해 오르니 다행히 옥상 문이 열린다. 철퍼덕 엉덩이 깔고는 한 모금 같이 빤다. 햇볕은 따가우나 바람은 차가운 가을 날씨 전형이다.
한 눈에 딱 봐도 식민지시대 주택단지다. 아래서 봤을 적엔 좀체 드러나지 않은 풍모가 완연하다. 이리도 잘 남아있을지 미쳐 몰랐다.
잘만 하면 군산 부럽지 않을 근대 도시유적이 후암동이지 싶을 정도로 이런 유산이 곳곳에 포진한다.눈을 들어 사방을 조망한다. 인구 천만 거대도시 서울의 일면모들이다.
공중에서 내려다 보면 송곳 하나 꽂을 데 없는 땅이어니와, 종로와도 다르고 도봉과도 다르며 더더구나 강남과는 판이한 용산구 모습이다.
내려오는 길목마다 식민지 유산이다. 잊고 살았다. 그 유산 찾는다고 군산 목포를 갈 때가 아닌 성 싶다. 후암동 일대 남산 기슭이 온통 식민지 밭이다. 듣자니 일부 저런 건물 내부엔 소화 몇년에 지었다는 동판이 걸려있기도 하단다.
대로변 인접한 한 이상한 콘크리트 건물을 비켜선 오동나무, 아직은 한여름인양 푸르름 뽐내더라.
*** 이 포스팅에 이주화 선생이 다음을 안내해 주었으니, 참고바란다.
*** 요새 폰을 갤놋5에서 갤놋9으로 교체하고 나선, 신세계 돌입이라, 이걸로 찍은 것들로 채우곤 하는 재미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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