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 세이카와 강항의 교유는 잘 알려져 있는데,
강항은 문과 급제자 출신으로 조선에서도 최고급 문사였다고 할 수 있는 바,
후지와라 세이카는 그가 승려시절 품고 있던 성리철학의 의문을 강항에게 물었다.
그는 강항과 만나기 전 도대체 어디서 성리철학의 개요를 전해 들었을까?
책이다.
무슨 책?
대단한 책도 아니고 사서 주자집주다.
이때쯤이면 이미 사서에는 주자가 주를 단 버전이 쫙 깔려 있어
성리철학을 접하지 않으려 해도 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견해서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만 보이는 그 주자주의 철학적 관념들이
실제는 매우 구체적으로 짜여진 고도의 철학적 완성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주자의 주를 읽고 나름 짐작한 성리철학이 과연 맞기는 맞게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고
바로 그에 대한 문답을 주고 받는 것이,
조선에서는 퇴계와 고봉의 이기 논쟁,
그리고 후지와라 세이카가 강항에 대해 성리철학에 대해 질문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성리철학을 공부할 때 이처럼 반드시 겪게 되는 알듯모를 듯한 단계를 문답으로 돌파하는 방식은
유학자들에 있어 흔한 일로서,
임란 이후 조선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으로 간 선비들도 종종 일본의 유학자들로부터
이러한 질문을 받고 답해주는 바,
질문의 수준으로 볼 때 일본인들의 유학이
당시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증언을 그 통신사로 간 선비가 귀국하여 하는 내용도 읽은 바 있다.
필자 말의 요점은 무언가 하면-.
이승훈이 북경 천주당으로 가서 세례를 받기 전,
조선의 유학자들이 모여 천주학을 천진암에서 모여 공부한 바,
이는 사실 성리철학을 함께 공부하는 것과 다름 없는 작업이라는 뜻이다.
해외 천주교도들이 볼 때야 이는 선교사가 안 갔는데도 교회가 자생한 엄청난 기적으로 보일지라도
조선의 유학자들이 볼 때 이는 늘상 있는 수준의 작업으로,
이승훈이 북경천주당으로 가 그곳 신부들을 찾아간 이유는,
거기서 세례를 받은 것은 결국 그 만남의 결과물로서,
본래의 목적은 후지와라 세이카가 강항을 만나 자신이 책에서 본 내용을 질문하는 것과
하등 다름이 없는 행동이라는 뜻이다.
결국 무슨 말인가?
조선에서 책만 보고 천주학 교리를 익힌 뒤
북경으로 제발로 찾아가 자신이 알고 있는 교리를 문답하여 맞는지 확인하고,
돌아와서는 동학들끼리 교회를 자기들이 만들어 버리는 행위는,
후지와라 세이카가 사서 주자집주를 보고 성리학 대강을 익힌 뒤
강항을 만나 이리저리 논변하여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그때까지 입고 있던 승려복을 벗어버리고 일본 성리학의 개조로 자신의 학파를 개창한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행동이라는 뜻이다.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리학은 어떻게 천주학으로 진화하는가 (0) | 2025.05.12 |
---|---|
성리학을 모태로 탄생한 한국 기독교 (0) | 2025.05.12 |
후지와라 세이카, 그리고 이승훈 (1) (2) | 2025.05.12 |
예학 그리고 교회 만들기 (1) | 2025.05.12 |
어째서 성리학자가 천주교도가 되었는가라는 문제 (0) | 2025.05.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