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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입암유적立岩遺跡[다테이와 이세키 たていわいせき]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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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문連弧文「일유희日有喜」銘鏡(1号鏡)



저 유적 명칭 입암立岩으로 추론할 적에는 저 일대 어딘가에 선돌이나, 혹은 마을을 상징하는 선바위가 있지 않았나 한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과 같은 입암이 떡하니 막아선다.




저길 왜 다테이와이가 아니라 입암으로 불러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인다.

암튼 저를 이름으로 앞세운 입암유적立岩遺跡, 다테이와 이세키[たていわいせき]는 그것을 대표하는 유적이 하나가 아니라 복수인 듯


34호 옹관 남성 인골



입암유적군立岩遺跡群, 다테이와 이세키 군[(たていわいせきぐん]이라고도 하며

복강현福岡県 반총시飯塚市 입암立岩이라는 데 소재하는 야요이 미생시대弥生時代를 중심으로 하는 인간활동 흔적을 말한다.

개중 입압굴전유적立岩堀田遺跡, 다테이와 홋타 이세키[たていわほったいせき]라는 데서 확인한 옹관묘군甕棺墓群이 중요하거니와, 이에서 적지 않은 유물, 특히 외부 수입산이 포함된 까닭이다.




이 유적은 분포 범위가 커서 삼국지三国志에서 말하는 불미국不弥国 중심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이 유저근 원하천遠賀川 상류이자 가혜분지嘉穂盆地를 내려다 보는 입암立岩 구릉에 야요이시대弥生時代 유적이 다수 분포하며, 이를 총칭해서 입암유적立岩遺跡이라 하거니와

옹관묘군甕棺墓群인 입암 굴전 유적을 중심으로 삼고 다테이와 야케노쇼 이세키[立岩・焼ノ正遺跡, たていわ・やけのしょういせき]라든가

입암 운동장 유적 立岩運動場遺跡[다테이와 운도죠 이세키, たていわうんどうじょういせき] 등이 있으며,


10호 옹관 출토 동모銅矛
34호 옹관 출토 철과鐵戈
35호 옹관 출토 철과鐵戈


1933년, 소화昭和 8년 시영市営 그라운드를 만들 적에 입암운동장유적이 발견됨을 계기로 해서 구주제국대학九州帝国大学 중상평차랑中山平次郎이 학회에 소개했다. 

1963년 소화 38년 이래 1965년 소화 40년에 걸친 입암굴전유적立岩堀田遺跡 발굴조사 결과

옹관묘甕棺墓 43기와 저장공貯蔵穴 26기가 검출되고 옹관에서는 전한前漢시대 동경銅鏡 10면面을 비롯해 철제 검剣·과戈·촉鏃·사釶[야리간나, やりがんな]·동모銅矛가 출토했다.
 

고호우라 조개
조개제품


또한 대량의 유리제품이라든가 남해산南海産 고호우라 조개[ゴホウラ貝]로 만든 장신구류 등도 검출되었다. 

입암굴전유적은 「입암·굴전 옹관 유적 立岩·堀田甕棺遺跡」이라는 이름으로 반총시飯塚市 지정사적으로 지정되고,

그 출토유물은 1977년 소화 52년 6월 11일에 국 중요문화재[国の重要文化財]로 지정됐다.

이곳 출토 동경을 소개한다.


중권重圏 정맥명경清白銘鏡(3号鏡)
중권重圏 정백명경精白銘鏡(2号鏡)
중권重圏 요조명경姚皎銘鏡(6号鏡)
연호문連弧文 청백명경淸白銘鏡(5호경)
연호문連弧文 일유희명경日有喜銘鏡(4호경)
연호문連弧文 일광명경日光銘鏡(9号鏡)

 
경주 사라리 기원전 1세기 무덤을 파제낀 한국문화재단이 느닷없이 현해탄 건너편 후쿠오카 소재 입암유적立岩遺跡, 다테이와 이세키[たていわいせき] 라는 데를 들고 나왔다.

도대체 저 입암유적은 어떤 데인가? 그걸 봐야 할 것 아닌가? 

깨뜨린 구리거울 한 점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유적 전체를 놓고 검토해야 한다.

무엇이 드러나는가?

나는 짙은 남방색을 본다. 南方色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라리 유적은?

같은 물건 동시대 물건을 넣었는데 한쪽은 북방이요 다른 쪽은 남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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