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역사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교류도 하고 치고 받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재미있는 것은 양국 격차가 아무리 벌어졌더라도 100년이면 따라간다는 것이다.
서기 7세기 후반-.
한반도의 삼국통일로 일본이 한국으로 부터 문화적 보급이 어려워졌을 때
이들은 잘 알다시피 대양을 건너 당나라로 바로 유학하는 길을 택했는데,
그 결과 평균적으로 견당선 두 척 중 한 척은 난파하였다는 것이지만,
반면에 서기 8세기 이후 나라-헤이안시대에는 빠른 속도로 한반도와의 격차를 좁혀-.
잘 알다시피 나라박물관에 가보면 8세기만 해도 일본은 한반도와 별 차이가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시대를 바꾸어 일본이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에도시대가 시작되자
조선의 문예 수준을 쫒아가는데 딱 100년이면 됐다.
18세기가 되면 이미 조선의 유학을 아래로 보기 시작했고
이 시기가 되면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문난問難도 사라지는데,
대략 100년 정도면 일본이 한국의 수준을 쫒아오는데 충분한 시간이었던 셈이다.
이것은 20-21세기도 마찬가지로,
절대로 차이를 좁히지 못할 것 같았던 현대국가의 발전에서도
한국은 해방이후 일본을 70년만에 격차를 좁혔다.
지금 이 추세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이 경우에도 딱 3세대면 추격이 되는 셈이다.
한국이건 일본이건 항상 통하는 진리는
잘나갈 때 자만 말고 상대가 자기보다 못해 보이더라도 항상 존중해 주라는 것이다.
아무리 큰 격차처럼 보여도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의 3대만 고생하면
그 격차는 좁힐 수 있다.
이건 꼭 한국과 일본만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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