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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19세기의 창씨개명

by 신동훈 識 2025.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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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19세기 초반부터 우리나라 호적을 보면 

노비가 눈에 띄게 줄어 들어 한 눈에도 노비 사역이 생산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는 것과 함께

가구의 크기가 줄어들고 

집집마다 죄다 성을 가지게 되고 

이들이 "유학"을 칭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소위 19세기 들어 양반 숫자가 급증한다는 설의 근거가 이것이다. 

"유학"을 칭한다고 죄다 양반이냐 하는 반론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

그 전 시대에 "유학"은 아무나 칭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의미있는 변화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말이다. 

19세기에는 이렇게 독립가구의 숫자가 늘면서 

"창씨개명"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확연히 느낀다. 

유학을 칭하자니 그럴 듯한 성이 있어야 하고 

양반 성인데 개똥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양반 이름으로 개명도 시작한다. 

19세기의 창씨개명 열풍이라고 해도 좋을 텐데

필자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족보의 기원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어렵겠지만 

족보가 대중화해서 대량 출판, 
소위 베스트 셀러로 진입하는 시기가 이 시기 아니었나 한다. 

족보의 기원이야 양반 집따라 더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대동보를 찍어 뿌릴 만한 수요가 창출된 시기가 언제이겠는가? 

창씨개명 열풍이 분 19세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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