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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1995년 쿠웨이트 바닷물도 짰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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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

 

1995년 여름 나는 쿠웨이트 출장을 갔다.
이듬해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남자핸드볼 아시아선수권대회 취재차 십박십일 일정이었다고 기억한다.

놀란 점 세 가지.

첫째, 아라비아 사막이 진짜 모래다.
둘째, 쿠웨이트 바닷물도 짜다.
셋째, 섭씨 오십도 사막 더위 삼십도 서울 더위 견주면 좆도 아니더라.

(2014. .2. 2)

***

 

쿠웨이트. 진짜로 모래 뿐이더라. 



당시만 해도 출입기자들이 제비뽑기를 해서 이른바 풀 pool 기자로 해외취재를 가던 시절이다. 제반 출장 경비는 해당 협회서 부담했으니 당시 나는 체육부 기자로 핸드볼 담당이었다.

저 아시아선수권대회서 우승을 해야 한국은 이듬해 애틀랜타올림픽 본선에 나갈 수 있었지만 일방적 편파판정에 한국은 홈팀 쿠웨이트에 분패하면서 올림픽 본성 무대를 밟지 못했다.

당시 한국은 윤경신이라는 월드스타를 보유했음에도 분루를 삼켜야 했다.

반면 본선 무대를 밟은 여자핸드볼은 올림픽본선에서 결승까지 올랐다가 석패, 은메달에 만족했으니 당시 주축이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임오경, 그리고 오성옥이었다.

당시 핸드볼협회장은 김종하 씨였다가 신박제 한국판립스회장으로 바뀐 시점이었으니 신회장은 나중에 이를 발판으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인가 한국선수단장을 지내기도 했을 것이다.

또 하나 쿠웨이트 기억에 남는 사건은 거길 입국하는데 27시간인가 소요됐다는 것이다. 두바이서 급유했고 카이로공항에 내려 일곱시간인가를 기다려 쿠웨이트로 들어갔다.

 

1995년 경희대 재학시절 윤경신



핸드볼 선수들은 키가 대체로 크다. 윤경신만 해도 이미터 오센티였다. 이런 친구들이 쿠워이트를 오가는데 이코노미를 이용했딘. 애들이 죽을 맛이었다. 그 직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이은 제2의 우생순 신화를 쓸 뻔 했다.

여담이나 당시엔 우생순 신화라는 말은 없었딘.

이런 환경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순 없다.

당시 남자핸드볼은 협회 분란이 더욱 극심했던 터라 감독과 선수간에도 불협화음이 적지 않았다.

쿠웨이트는 페르시아만이 푹 꺼진 안쪽에 위치하는 코딱지만한 나라지만 석유 부국..온통 모래밭이라 유일한 관광거리가 유전이었다.

사막골프장이 있었는데, 골프에 미친 선수단 협회 구성원들은 우리 성적이야 뭐가 됐건 오로지 사막골프만 치고 다녔다.

쿠웨이트 바닷물이 짠지 나는 직접 그 물을 먹어보고 알았다. 그냥 돌아올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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