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9일 무렵 나는 전남과 광주에 있었다.
분명 출장이었는데 무슨 일로 그쪽을 갔는지는 도통 감이 안잡힌다.
내가 기억하는 단 한 가지는 나는 그날 나주 오량리 어떤 벌판에 서 있었다는 기억뿐이다.
그 현장엔 대옹大甕 파편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열나 두꺼워 살인도구로 사용될 법한 옹관 파편들에 경악했다.
현장은 묘지 조성한다고 포크레인이 껍데기를 홀라당 벗긴 상태였다.
가마터였다.
것도 초대형 옹관을 굽던 가마터였다.
영산강유역에서 주로 4~5세기에 집중 조성되는 독널 옹관묘甕棺墓 만들 때 쓰는 그 옹관.
하지만 그렇게 큰 옹관을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구웠는지는 오리무중이었다.
그럴 수밖에.
그때까지 옹관 가마는 단 한 기도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했다.
이튿날 나는 초대형 옹관 가마터 나주 출현이란 기사를 긴급 송고했다.
이렇게 알려진 오량리 가마터는 이후 추가발굴 결과 한반도 최대 가마터로 드러나게 된다.
초대형 그릇 공장 콤비나트였다.
이 오량리 가마터는 당시 어디 근무했던가 종잡을 수 없는 박철원을 필두로 동신대 이정호, 나주시청 김종순 등이 긴급조사와 보존을 위해 뛰어다닌 기억이 생생하며, 나는 담당 분야 기자로 그에 힘을 조금 보탰다.
후세는 저들 이름을 기억이나 할까? (2017년 10월 10일)
***
그 출현 순간을 내가 현장에서 마주쳤으니, 글쎄 이를 그렇게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억세게 운이 좋았다.
박철원은 아마 저 현장 주변 논인가 밭이 아버지 소유였을 것이며, 그에 나갔다가 저 현장을 발견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건 내가 그 내력을 정리해 놓은 글이 어딘가 있는데 지금 찾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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