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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20년 만에 다시 헤집었다는 완주 원상운 고분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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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원상운 고분군 내일 현장 설명회…1차 발굴조사 성과 공개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12일 전북 완주군 상운리 원상운 고분군 발굴 현장에서 1차 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한다고 11일 밝혔다. 상운리 일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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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원상운 고분군 내일 현장 설명회…1차 발굴조사 성과 공개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마한 문화 핵심 상운리 유적 종합자료 확보"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12일 전북 완주군 상운리 원상운 고분군 발굴 현장에서 1차 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한다고 11일 밝혔다. 

상운리 일대에서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발굴 조사가 진행돼 원삼국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분구묘(墳丘墓) 30기와 매장시설 163기가 확인된 바 있다. 분구묘는 흙이나 돌로 봉분과 같은 분구(墳丘)를 조성하고 그 안에 매장시설을 만든 무덤을 뜻한다. 

 

이번 발굴조사 핵심이 이 그림 한 장이다. 조사단이 나름 고심을 했을 터인데, 본래 출토상황을 최대한 살린다 그리했겠지만, 여러 모로 아쉬움을 남긴다. 네 모서기를 둥글게 마감한 평면 사각형 이른바 분구墳丘는 그런 대로 표시가 나지만, 그 주변 U자형으로 두른 이른바 주구周溝는 나처럼 이미 노안이 심각한 사람은 알아보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이를 보면 이른바 저 분구라는 데 복판을 아래위로 가로지른 이른바 매장주체시설이 보이거니와 이를 조사단에서는 1호 라는 표시를 했다. 1호가 있으면 2호가 있을 터. 한데 2호 라는 표식이 두 군데라, 색깔이 다르거니와, 이는 같은 종류 같은 성격 흔적을 같은 색으로 표시한 데서 비롯한 혼란으로, 색깔이 다르다. 1호랑 같은 색깔 2호를 보면 그 놓인 방향이 1호랑 정반대임을 본다. 1호가 매장주체부이니 2호 또한 시체를 묻은 것이렸다? 한데 다른 색깔로 표시된 2호를 보면 다 둥그런 구덩이형태라, 보도자료랑 관련 보도로 미뤄 보면 이른바 옹관묘라 해서 독으로 관으로 쓴 무덤들이다. 옹관은 저 표식들로 보면 4개인데, 하나가 옹관이 아닌 모양이다. 그 배치 양상을 보면 분구 왼편 옆구리들을 따라 발견한다. 3호 옹관이 분구 쪽으로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저들 옹관이 모조리 이른바 분구묘를 의식했을 엿보인다. 1호가 특정한 가문 시조나 중시조 같은 인물이라면 이들 옹관에 묻힌 사람들도 그 가문과 관련 있지 않았나 상상해 본다. 노비라면 순장일 테고, 그게 아니라면 비중이 적은 이 가문 인물들이 묻혔을 것이다. 옹관이나 2호 목관은 모조리 주구에서 발견되었는데, 분구묘 후대에 조성됐을 것으로 보이는 바, 그 관계가 궁금하다. 분구묘 주인공 혹은 그 가문과 옹관들과 2호 목관이 관계가 없다면, 뭣하러 저기에 무덤을 썼겠는가? 분구 정상부가 자리도 좋을 텐데 거길 되파고 만들지 않았겠는가? 이런 양태들이 조사단 보고서에서는 훗날 어찌 지적될지 모르겠다.

 

 

연합뉴스 문화재 담당 기자가 근자 교체가 되었으니, 박상현 기자가 일본 연수 잠깐 댕기오더니만 그만 나까무라가 되어 도쿄 특파를 지원해서 턱하니 되고선 그 부임을 위해 다른 부서로 씌웅 날아가고는 그 후임에 김예나 기자로 낙찰됐으니, 기자가 바뀌면 문체도 바뀌며, 양식도 바뀐다. 

여타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문화재 분야는 공부를 좀 해야 해서, 정착이랄까 하는 데까지 이르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라, 김예나식 문화재 기사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마각을 드러내리라 본다. 

내 경험으로 보아 스스로 터득할 때까지 놔 둬야 한다. 당한 후배들한테서 다른 증언이 나올까 두렵기는 하지만, 나는 죽이 되건 밥이 되건 후배 기자가 하는 대로 놔 뒀다. 처음에는 다 버벅거리며, 무엇보다 처음에는 취사선택이 쉽지 아니해서 나는 버린 것들을 주서다가 쓰기도 하더라만, 그래도 나는 놔 뒀다.

우당탕탕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다 나보다 뛰어난 기자가 되어 있더라.  

연합뉴스 문화재 담당 기자가 바뀌었음을 공지한다 해서 객설 한 번 늘어놓아 봤다. 

저 소식 토대가 된 문화재청 보도자료 원문은 저 아래 말미에 첨부하니 관심 있는 이는 그걸 참고했으면 한다. 

 

3호 분구묘 중앙부 이른바 매장주체시설인데 이걸 조사단에서는 목관을 썼다 해서 목관묘라고 분류했다. 이거 말이 안 된다. 같은 지칭을 전체는 3호 분구묘라 하고 그 매장주체시설은 1호 목관묘라 했으니 말이 되는가? 나중에 다른 자리에서 말하겠지만, 이는 분구묘라는 국적 불명 고고학 용어에서 유래한다. 국적 불명 뒤죽박죽은 그 뿌리를 추적하면 열 개 중 아홉 개가 왜국倭國이다.왼쪽 상단에 방향표시등이 있어 이를 미뤄 보면 이 목관묘는 남북 장축이다. 출토 유물을 보아서는 머리 방향을 어디로 뒀는지 감이 안 잡힌다. 이런 점들이 조사단에서는 포착이 되었을 법한데 그런 지적질이 빠졌다.

 

완주문화재연구소가 전북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 산 10-3 일대에 소재하는 완주 상운리 원상운 고분군 올해 발굴성과를 공개한 모양인데, 연구소가 막상 발굴은 해 놓고 그 성과를 정리 집적하는데 갈피를 잡지 못한 느낌이 짙다.

언론계 용어로 이른바 야마를 잡지 못하니 결국 우리가 이런 걸 조사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하고 만다. 그런 때 작성하는 보도자료 그 전형이 바로 이번 경우라 이건 내긴 싫은데 할 수 없이 내 보낸 보도자료 그런 느낌이 좀 있다.  

그런 까닭은 내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분구묘라 해서 지금의 호남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서쪽 일대에서 특정한 시기에 걸쳐 집중으로 출현하는 소위 분구묘로 드러나기는 했지만, 

첫째, 기존 그런 발굴들과 이번 발굴이 갈라지는 지점을 찾아내기가 어려웠고, 둘째, 그렇다 해서 중뿔나게 특출한 유물이 있는 것도 아닌 까닭이다. 

적어도 성과로만 보면 또 하나의 분구묘 조사 사례 하나를 보강한 그런 것밖에 없다. 이럴 때 조사단에서 실은 힘이 빠진다. 기왕 판 거 제대로 홍보했음 싶은데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니 말이다. 

 

방패처럼 깠다. 가죽을 홀라당 벗긴 돼지껍데기다. 이걸 보면 이 무덤이 위치하는 양상이 비교적 또렷하게 드러난다. 둔덕 사방을 조망하는 비교적 좋은 자리 아닌가 싶다. 그러니 이런 데 오야붕이 자리잡지 않았겠는가?

 

암튼 팠더니만 저랬댄다. 

 

전경인데 둔덕이 좀 많기는 하지만 주변 일대가 온통 평지다. 저 뒤짝은 무슨 산인지 모르겠다.

 


완주 상운리 원상운 고분군 1차 발굴조사 성과 공개 
-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12일 오전 10시 30분 현장 설명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소장 유재은)는 오는 12일 오전 10시 30분 발굴현장에서 완주 상운리 원상운 고분군의 1차 발굴조사 성과를  국민에게 공개한다.
* 발굴현장 : 전북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 산 10-3 

원상운 고분군은 총 8기의 고분이 모여 있는데, 연구소에서는 가장 중심에 위치한 3호 고분을 선정하여 지난해 시굴조사를 마치고 올해 3월부터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이번 발굴조사는 전북 마한문화의 핵심지역으로 평가받는 완주 상운리 일대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발굴조사가 20여 년 만에 다시 시작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 완주 상운리유적 : 2003년∼2006년 발굴조사(전북대학교)/ 30기의 분구묘(墳丘墓)와 163기의 매장시설 등이 발견된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 대규모 유적/ 철기와 단야구(鍛冶具) 등 다량 출토

3호 고분은 낮은 분구를 갖춘 외형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고분의 평면은 모서리가 둥근 방형이며, 분구 길이는 15m, 주구 너비는 2~4m이고, 분구 성토층의 최대 높이는 80㎝ 정도이다. 고분의 바닥면을 고르게 정리하고 점토를 교차로 쌓아 올려 매장시설이 안치할 부지를 마련한 후, 매장시설(목관묘)이 들어갈 자리를 되파서 만드는 전형적인 분구묘의 특징이 관찰된다.
* 주구(周溝) : 고분 주위에 두른 도랑 형태의 시설
* 목관묘(木棺墓) : 나무로 만든 관(棺)을 사용한 무덤
* 분구묘(墳丘墓) : 봉분을 먼저 만들고 매장시설을 나중에 만드는 무덤으로, 가장자리에 주구(周溝)를 두른 특징이 있음

3호 고분의 중심부에는 목관묘 1기가 자리하는데, 목관의 크기는 길이 354㎝, 너비 70㎝ 정도로, 그동안 상운리유적에서 조사된 목관 중 가장 좁고 긴 형태이다. 목관 내부에는 양이부호(兩耳附壺)와 그 뚜껑(蓋), 단경호(短頸壺)가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고분 외곽의 주구에는 목관묘 1기, 옹관묘 3기가 추가 매장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 양이부호(兩耳附壺) : 양쪽에 둥근 고리 모양의 귀가 달려 있는 항아리
* 단경호(短頸壺) : 둥근 몸통에 짧은 목이 달린 토기
* 옹관묘(甕棺墓) : 항아리 모양의 질그릇을 관(棺)으로 사용한 무덤

원상운 고분군 1차 발굴조사에서는 그동안 상운리유적에서 조사된 원삼국 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조성된 고분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인 원삼국 시대 고분의 군집을 확인하면서 상운리유적 일대를 종합적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향후 이어질 학술조사를 통해 유적의 성격을 보다 명확하게 밝혀 사적지정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연구소는 이번 현장설명회를 통해 최신 발굴조사 성과를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널리 공유하여 알리고자 한다. 지역 문화유산에 관심 있는 누구나 별도 신청 없이 현장설명회에 참여할 수 있다. 추후 발굴조사 성과는 영상물로 제작하여 국립문화재연구원 유튜브 채널에 공개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전라북도에 산재한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조사연구와 보존정비를 적극 추진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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