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지도·백제관음 선보이며 흥행 대박 행진
[편집자주] 아래는 도서출판 주류성 간행 계간 《한국의 고고학》 2025 Vol. 68에 기고문이라, 저 특별전 탐방기라 해둔다. 첨부 사진은 모두 필자 촬영이다.
명품이라는 명품은 죄다 쏟아낸 나라국립박물관 ‘초국보’ 전
칠지도·백제관음 선보이며 흥행 대박 행진
김태식 국토문화유산연구원 전문위원, 전 연합뉴스 문화부장

나라국립박물관이 개관 130년 기념 특별전으로 마련한 ‘국보를 넘어 - 영원의 아름다움'[超国宝―祈りのかがやき]’(4.19~6.15)은 ‘초국보超国宝’라 표방한 표어 그대로, 국보라는 국보는 죄다 망라한 일본 국보 대전이었고, 같은 박물관에서 매년 가을 개최하는 정창원正倉院 전을 당긴 전시라 할 만하다.
저 초국보라는 표어가 영어로 어찌 옮김했는지 보니, ‘Oh Kokuho’라, 이 영어 명칭을 누가 정했는지 이노우에 요이치(井上洋一) 박물관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물어 보니,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추천했다 한다.
적어도 주제만큼은 아주 단순히 접근한 전시였던 셈이다.

나름 많은 고민을 했겠지만, 이런 명품 전시는 실은 여타 주제 중심 문화재 특별전에 견주어 실은 준비가 단순하기 짝이 없다.
왜? 명품이라 할 만한 것들을 죄다 긁어모으면 되므로. 이런 접근법이 이른바 ‘대박’을 불렀다.
이 전시는 두달에서 조금 모자라는 단기간 전시였음에도 기록적인 소위 ‘대박’ 행진을 거듭했으니, 정확한 통계 수치를 내가 수집하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찾은 5월 26일 현재 21만 명이 찾았다 했고, 어림잡아 30만 어간 관람객을 모으는 초대박 고공 인기행진을 거듭한 것이다.
그랬다. 이 전시는 그만큼 국내 문화재 애호가들한테서도 단연 화제였으니, 너도나도 이 전시를 보러 일본으로 달려갔기에 말이다.
이 특별전을 나라박물관 측에서는 개관 130주년이라는 데 방점을 찍었으나, 130주년? 의미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그렇다 해서 100주년도 아니요, 150주년도 아닌 130주년을 저리 요란스럽게 기린다? 좀 의아함이 앞선다.
그랬다. 저리 말했으나 이 전시는 실은 2025 오사카·간사이 국제박람회(4.13~10.13)에 즈음한 부응이었다.

이 박람회에 즈음해 오사카 간사이 일대 박물관 미술관은 죄다 그 붐업을 위한 저런 특별전을 마련했으니, 저를 찾은 길에 둘러본 저 일대 모든 박물관 미술관이 저와 비슷한 특별전으로 요란스럽기 짝이 없었고, 그런 자리마다 관람객으로 북새통을 이뤘으니, 이 박람회와 박물관 미술관은 실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였다 하겠다.
더 놀라움 점은 나름 다 고민했겠지만, 거의 모든 박물관 미술관이 저와 같은 국보전을 표방한다는 사실이었다.
간 김에 같이 들른 오사카시립미술관에서도 그랬고, 교토국립박물관에서도 조금 주제가 다른 점이 있기는 했지만 실은 다 국보전이었다.
다 같은 국보전인데 흥행은 역시 나라박물관 몫이었다. 워낙에나 물건이 좋았어야지?
우리야 칠지도가 나온다 해서, 혹은 그 이름 때문에 이른바 백제관음百済観音이라 일컫는 목조 불교조각을 본답시며 간 사람이 많겠지만, 그 외에도 한군데서는 몰아볼 수 없는 명품들을 몰아놨으니, 이런 기회가 앞으로 쉽사리 오겠는가?

앞서 나는 이 특별전이 당긴 정창원 전이라 했거니와, 실제 그 특별전시장도 정창원 전과 같은 자리였고(하긴 그 자리를 빼고선 나라박물관에서 특별전을 열 만한 데도 없다.) 그 전시 방식, 그리고 출품작 숫자도 거의 비슷했다.
나아가 이번 특별전은 이노우에 관장한테도 특별했으니, 내년이면 칠순을 맞게 되는 그는 막 임기 4년의 차기 관장 연임이 확정되었거니와, 이제 다시 임기를 시작하는 만큼, 이번 특별전에 얼마나 더 심혈을 쏟았겠는가?
그의 이런 열정에 더 많은 명품을 긁어모았다는 후문도 없지는 않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사람한테는 동기부여는 필요하다.
이번 특별전을 준비하는 나라박물관에서는 “지금까지의 전시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국보전”이라고 하면서 “불교 및 신도(神道) 미술에 특화한 작품을 특별히 선정”했다 하지만, 이는 그럴 듯하게 포장일뿐 실제는 일본 문화재 명품 코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본 문화재 중 불교 성보유산은 특히 덩치가 있고, 가시성 또한 뛰어나 이런 문화재 전시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기 마련이라, 개중에서도 좋은 것들만 모아놨다는데, 그 시장 반응이야 달리 물어서 무엇하겠는가?
적지 않은 유물 중에서도 이번 특별전은 딱 세 작품을 특별 우대 회원으로 대접했으니, 백제관음과 칠지도, 그리고 중궁사中宮寺 보살반가상이 그것이라 이들은 별도 코너를 널찍하니 차지했다.
한데 백제관음과 중궁사 보살상 전시 코너와 그 전시 기법은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딱 그것이었으니, 그 축소판을 방불했다.
일명 백제관음으로 통하는 법륭사 관음보살 입상은 도입부를 차지했다. 현장을 찾은 사람들은 우선 그 도입부에서 이 불상이 주는 압도적인 힘에 매료되어 전시장을 들어선다.
이 불상은 요즘은 환경이 변했는지 자신이 없지만, 법륭사 전시관에서 상설전시가 되는 까닭에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무슨 다른 감흥이 있을까 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백제관음은 너무나도 달랐다.

보통 이런 명품 전시 코너라면 우리 같으면야 무엇보다 온통 조명에 신경을 기울이고 예산을 퍼붓기 마련이지만, 일본은 비단 이번 특별전뿐만 아니라 박물관계 전반으로 보아도 한국 문화재업계를 근자 강타한 실감콘텐츠 이런 데는 그다지 휩쓸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랬다. 이렇다 할 조명 장치는 없었지만, 그냥 전반으로 밝은 조명 아래 들어선 백제관음은 장관이었다.
법륭사 전시관에서 만나는 이 불상이 전면을 중심으로 기껏해야 양쪽 측면만 감상했지만, 이번 특별전 코너는 달라서 사방을 둘러보며 관람케 했으니, 특히 뒤에서 보는 모습은 색다름을 선사했다.

이 불상은 백제관음이라는 별칭 때문에 흔히 백제인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만들었거나, 백제에서 만들어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알기 쉽지만 전시장을 안내한 박물관 전문가 안내도 그렇고, 지금껏 구축한 연구 성과가 그렇듯이 그것은 후대에 생겨난 신화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는 일본에서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다만 일본으로 간 불교가 백제를 통해 간 것은 명백하고, 비단 백제만이 아니라 해도 고대 한반도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으므로, 꼭 백제와 영향 없다 할 수도 없다.
나아가 그것이 신화라 해도 백제라는 이름을 관칭하는 일도 어찌 허심히 보아 넘길 수 있겠는가? 역사가 팩트로만 만들어진다던가?
저 또한 역사의 일부임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변할 수 없다.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이 소장한 칠지도는 국유물인 아닌 사유재산이고, 더구나 그 주인인 신궁 자체에 박물관이 있는 것도 아닌 까닭 등이 겹쳐서라 보거니와, 상설로 전시되는 일은 없고, 내 기억에 꼭 주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 5년 혹은 10년 정도 주기로 한 번씩 저런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나로서는 2002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 공동 개최에 즈음해 같은 나라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에 출품되었을 적에 실견한 적이 있으니, 대략 25년 정도만에 재회한 것이다.
특별전 개최에 즈음해 나라박물관 보존과학 부문에서 이 칠지도를 CT 정밀 촬영을 한 모양이라 그 새로운 성과라 해서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이 칠지도는 익히 알려졌듯이 백제에서 만들어서 왜왕한테 준 것만은 틀림없는 듯하지만, 문제는 ‘百濟’의 ‘濟’자가 그리 분명하지는 않고, 나아가 그것을 만든 시점을 보여주는 연호 부문을 ‘태화泰和’라 하지만 ‘和’자에 해당하는 부분이 분명치 아니해서 논란이 특히 극심한 대목이다.
한데 이번 정밀 촬영 결과 이 부문들이 확실해졌다 했으니, ‘百濟’와 ‘泰和’라 틀림없다는 요지였다.
이리 확정된다면 이번 새로운 판독 시도가 새로운 대목은 그다지 없다. 왜? 저런 기존 판독이 대세였던 까닭이다.

이번 특별전 칠지도 코너에는 그 새로운 판독 사진을 큼지막하니 벽에다가 걸어놨다.
나아가 기존 전시들이 대체로 칼을 세워 전시한 것과는 달리 전시는 뉘였다. 하도 세워 놓은 모습이 눈에 익어서인지 몰라도 뉜 칠지도는 영 낯이 설었다.
대신 뉘여 놓으니 모든 문자 흔적은 고르게 살필 수 있었다.
이건 이전에도 여러 번 다른 자리를 빌려 말했지만, 문자 흔적은 생각보다는 아주 뚜렷하다. 물론 저 일부 글자가 훼손이 심해 판독에 논란이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20여 년 전에도 칠지도를 실견하고선 곧바로 그 본래 소장처인 이소노카미 신궁을 찾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여행 일행은 이른바 문화재 업계, 특히 박물관에서 수십 년 이상을 종사한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신궁을 직접 본 이는 그 시절 같은 (당시 문화일보)기자 신분으로 취재를 빙자해 동행한 최영창 전 국가유산진흥원장 한 명뿐이었으니, 이곳을 안내한 내가 그래서 더 뿌듯했다고 적어둔다.
왜? 이 신궁은 우리네 그 고즈넉한 산사 그것과 대략 흡사했고, 이제 다 나이들이 이런 경관을 좋아하는 시절이 되었기에 다들 잘 왔다고 마음에 쏙 들어했기 때문이다.

중궁사 보살상은 한국 나들이를 한 적 있다.
2016년 아주 잠깐 와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그 비교 대상이라 해서 국보 78호 반가사유상과 함께 나란히 전시된 적이 있거니와, 이 전시는 내 기억에 착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대만큼 큰 반응을 일으키지는 못했다고 기억한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면, 문제의 중궁사 보살상이 온통 옻칠을 한 이른바 흑불黑佛이라,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의 전시 수준 혹은 전시 기법이 그것이 주는 핸디캡을 극복하지 못했으니, 그런 잔영이 여전히 남은 나로서는 이번 전시 또한 그 형태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칠흑 전시가 아닐까 했지만 웬걸?
아주 밝은 조명 아래 내어 놓으니, 그리고 미니어처 사유의 방 같은 공간을 여유 있게 정좌하니 그리 장엄할 수 없었다.
그랬다. 하도 칠흑 속 모습만 남았기에 그때는 미쳐 알지 못한 그 불상의 압도하는 힘을 이번 전시를 통해 여실히 체감했다 해 둔다.
환한 불빛 아래 드러난 흑불, 이 또한 장관이었다.

이들 외에도 이번 전시에는 보살반가상(菩薩半跏像, 8~9세기), 대일여래좌상(大日如来坐像, 1176년), 길상천상(吉祥天像(8세기, 나라 약사사), 신귀산연기 니공권(信貴山縁起尼公巻, 12세기, 나라 조호손자사朝護孫子寺), 벽사회(辟邪絵, 12세기, 나라국립박물관), 자수 석가여래 설법도(刺繡釈迦如来説法図, 나라국립박물관),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経, 8세기, 나라국립박물관), 금귀사리탑(金亀舎利塔(鎌倉時代, 나라 당초제사)도 나았으며, 기타 볼 만한 유물이 죄다 나왔다 생각하면 되겠다.
담담히 봤고 담담히 쓰려 한 나라국박 초국보 전
담담히 봤고 담담히 쓰려 한 나라국박 초국보 전
지난 5월 일본국 나라국립박물관 주최 초국보超國寶 전을 다녀왔거니와 도서출판 주류성 요청으로 그 탐방기를 그네 잡지 계간 한국의 고고학 2025 Vol. 68에 기고했다.거개 이런 글쓰기가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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