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정 키 180센티미터 남성을 필두로 5~6세기 신라시대 인골 12기에 달하는 기록적인 발굴성과를 알린 경주 탑동 28-1번지 일원 근린생활시설 신축예정지 유적은 그 조사면적이 755㎡밖에 되지 않아, 국비지원을 통한 한국문화재재단의 발굴조사가 이뤄진 곳이다.
지난 1월 4일 시작한 발굴조사는 7월 15일 현재, 현장조사일수 90일 중 87일을 채웠으니, 거의 모든 현장 조사 순서를 따라 시굴조사가 먼저 있고 이어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작년 10월 28∼30일 시굴조사 결과 모든 시굴 트렌치 표토 아래 50~70㎝ 정도 지점에서 부석유구, 건물지 조성층, 수혈 등 통일신라~조선시대 건물 관련 흔적이 확인되고 개중에서도 삼국시대 무덤으로 생각되는 흔적 한 곳이 드러나고 거기에서 고배·호 등의 유물이 수습됨으로써 아! 이 지역은 그냥 공사하면 안 되겠다. 발굴조사를 먼저 해야겠다 해서 조사가 돌입되었다.
조사 결과는 이렇다.
탑동 천원마을 내 “탑동 제2공용 주차장”과 탑리 1길을 사이에 두고 그 남쪽에 위치하는 이 지역은 서남쪽에 정좌한 도당산(해발 101m)에서 서쪽으로 뻗은 사면부, 해발 41.9~42.2m 정도를 차지한다. 북쪽으로 300m 정도 떨어져 남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신라왕경에포함되며 동쪽으로 120m 정도 떨어져 천관사지가 있고, 서쪽으로 약 210m 정도 떨어져 오릉이 위치한다. 또한, 최근까지 도로개설 및 펜션, 단독주택 신축 등 마을 내 이루어진 각종 개발행위에 앞서 실시된 발굴조사에서는 초기삼국시대~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활동 흔적이 중복 및 중첩되어 확인됐다.
특히 조사지역 북쪽 ‘탑동 주차장부지 유적’과 ‘탑동 50-2번지 유적’, ‘탑동 56-8번지 유적’, ‘탑동 20-1번지 유적’ 등지에서는 초기삼국~삼국시대에 걸치는 목관묘, 목곽묘, 적석목곽묘 각종 양식의 1~6세기 무덤과 삼국시대 수혈유구 및 통일신라~조선시대 건물지 등이 다양한 유구가 중층 또는 중복되어 확인되고 있는 지역이다.
해발 41.0~41.7m 지점에서 목곽묘 5기·적석목곽묘 15기·석곽묘 2기·옹관묘 1기 등 삼국시대 무덤 24기와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1동·수혈유구 43기·폐와무지 2기·석군·석렬·적심 8기·지진구, 우물, 조선시대 구상유구 1기· 암거배수로 1기·굴립주 건물지 1동 ·우물 1기, 주혈까지 총 140여 기 유구가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흔적을 볼짝시면, 앞서 본 것들 말고도 토광묘 1기, 매납유구 2기까지 총 26기가 확인되었다.
목곽묘 1호와 적석목곽묘 2호는 중복 양상이며, 적석목곽묘 3호와 14호, 6호와 7호, 8호~10호, 11호와 12호, 3호와 14호는 연접조성되어 출현했다. 봉분이나 호석, 주구 등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의례 유구로 판단되는 매납유구 2기가 적석목곽묘 2호 및 9호 북편에 인접하여 확인되었다.
목곽묘 5기 양상은 다음과 같다.
2호 묘를 제외하고, 모두 반파되거나 파괴되어 일부만 남은 상태다. 등색 또는 회(황)색 점질토층을 굴착하여 조성하고, 묘광과 곽 사이는 천석 및 할석을 흙과 함께 충전했다.
2호묘는 부지 서쪽 경계부에 인접해 확인되었다. 조사 전, 후대 구상유구, 교란구덩이 등에 의해 상당 부분 파괴되거나 삭평되어 확인되었다. 삭평된 유구 상부에는 일변 10~25㎝ 정도 크기의 할석 2~3매 정도가 함몰되어 있었으며, 인골의 대퇴골이 지표에 노출되어 있었다.
단곽식 목곽묘이며, 묘광 평면형태는 말각장방형이며, 장축방향은 동-서 향에 가깝다. 회색 점질토를 수직에 가깝게 굴착하여 조성하였으며, 묘광 규모는 장축 380㎝, 단축 180㎝ 정도다. 내부에는 황갈색 점질토, 회황갈색 점질토가 수평퇴적된 양상으로 확인되었다.
묘광과 곽 사이는 할석과 점질토로 충전하였는데, 동단벽 부장공간 두 벽은 판상형 할석을 수적하여 점질토로 뒤채움하였다.
충전범위로 볼 때, 곽 규모는 60㎝ 정도 폭으로 매우 좁은 형태를 띤다.
유물은 양단부장. 부장공간은 피장자 공간보다 5~20㎝ 정도 폭을 넓혀 조성하고, 바닥을 주피장자를 안치한 상면보다 10~20㎝ 정도 깊게 조성했다. 특히, 피장자 발치쪽 부장공간은 피장자 안치공간 폭보다 20㎝ 정도 넓고, 깊게 조성되어 있어, 별도 부장궤를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주곽 바닥에는 회색 점질토가 약 2~4㎝ 정도 두께로 확인되었다. 인골은 1구가 양호한 상태로 노출되었다. 두향은 동향이며, 인골 허리부근에서 녹각으로 손잡이를 만든 도자 1점이 출토되었다. 또한 대퇴골 상부에서 개뼈로 추정되는 수골이 함께 노출되었다.
유물은 양단 부장하였다. 동단벽 쪽으로는 유개식 대부장경호 및 개배, 유개연질발, 유개고배 등 소형 토기류를 2단 정도로 쌓아 부장하였으며, 서단벽쪽에서는 단경호를 여러 점 부장하였다. 철기는 동단벽 부장공간에서 철부, 철겸, 철모, 삽인이 토기 상부에서 확인되었다.
적석목곽묘
모두 15기가 확인되었다. 묘형은 동혈 ‘ㅏ’ 자형 주부곽식(11호·14호), ‘日’ 자형 동혈 주부곽식(4호) 3기를 제외하고 모두 단곽식이다. 이 중, 3호와 14호, 6호와 7호, 8호~10호, 11호와 12호는 연접조성되었다. 조성순서는 3호→14호, 6호→7호, 9호→ 8호 및 10호, 12호→11호 순으로 확인되었으며, 먼저 축조된 묘의 장벽을 일부 파괴여 조성하거나, 접한 장벽의 충전석 상면에 걸쳐 부분 중복시키는 방식으로 연접축조하였다.
기반층을 굴착하여 조성한 지하식 적석목곽묘다. 묘광 평면형태는 말각장방형이며, 일부는 단벽이 둥근 형태를 띤다. 장축방향은 동-서 향으로 대부분 등고선과 평행하거나 약간 틀어진 방향으로 조성되었다. 규모는 묘광 길이를 기준으로 4m 이상 5기(1호·2호·4호·9호·13호), 3.5m 이상 4기(3호·5호·11호·14호)이다. 또한 목곽 규모로 볼 때, 길이 3.0~4.5m 정도 중형에 해당되는 묘는 8기 정도이고, 나머지는 길이 3.0m 미만의 소형에 해당된다.
상부 적석은 잔존상태가 좋지 않은 일부 묘를 제외하고, 대부분에서 확인되었다. 상부 적석은 10~45㎝ 정도 다양한 크기 할석 및 천석을 사용하였으며, 상부에 1~2겹 정도만 얇게 깔 듯이 적석한 9호를 제외하고, 다량 석재가 바닥면까지 함몰되어 전면에서 확인되었다. 한편, 6호 묘에서는 상부 적석한 석재 아래 목개로 보이는 종방향 얇은 목판이 적석 하부에서 확인되었다.
묘광과 곽 사이는 다양한 크기 할석 및 천석으로 충전하였다. 상부 적석한 석재보다는 비교적 큰 석재를 채워 넣은 묘와 같은 크기의 석재를 채워넣어 거의 구분되지 않는 묘, 석곽을 쌓듯 위석한 후 후면을 충전한 묘 등 다양한 충전형태가 확인되었다.
9호와 11호 묘에서는 곽으로 사용한 것으로 판단되는 두께 10~15㎝ 정도 다듬은 판재 혹은 각목재가 충전석과 경계를 이루는 4면에서 확인되었다. 특히, 9호 묘에서는 원형에 가까운 양호한 상태로 확인되었는데, 두꺼운 4매 판재를 각 벽에 세워 곽을 설치하고 내부에 관을 안치하였으며, 관과 발치쪽 부장공간 사이에는 얇은 목판 세워 격벽시설을 조성하였다.
확인된 양상으로 볼 때, 곽내 규모는 길이 300㎝, 너비 70㎝, 높이 30㎝ 정도이며, 관 규모는 길이 190㎝, 너비 50㎝, 높이 20㎝ 정도다. 관과 곽사이는 회색 점질토로 충전하였으며, 목곽 바닥재 상면에서는 할석의 관대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피장자 두부측으로 추정되는 북동편 모서리에 호 1점이 확인되었으며, 나머지 유물은 발치쪽 부장공간에서 다량 확인되었다.
이 외 3호, 14호에서는 5~8㎝ 정도 폭으로 목곽흔으로 추정되는 회갈색 점질토 흔이 확인되었으며, 1호, 4호, 12호에서는 시상 가장자리를 따라서 시상과 구분되는 납작한 돌을 깔았는데, 상면에 곽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바닥 상면시설은 주피장자 공간에만 목판을 깐 것(1호, 2호), 굴착면을 정지하여 그대로 사용한 묘(3호, 5호, 6호)를 제외하면 모두 역석 및 할석 시상을 설치하였다. 이 중, 2호와 11호에서는 발치 쪽 부장공간으로는 바닥시설이 이어지지 않아서 별도의 부장궤를 둔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5호묘를 제외하고 모두 양단 부장하였다. 5호묘는 피장자 두부측에 편단부장하였다. 부장공간은 피장자 공간의 바닥보다 25~30㎝ 낮게 바닥면을 조성하여 겹겹이 유물을 쌓아 부장하였다. 유물은 유개고배, 개배, 유개연질발, 대부장경호 등 다량의 토기류를 2~3단 정도로 쌓았으며, 철부 및 철촉, 철모도 함께 출토되었다. 이외 철기는 피장자 허리춤에 도자 1점, 발치 쪽에 판상철기 1점, 두부쪽 측면부에서 철착 1점이 출토되었다.
양단 부장한 묘 두부 측에는 고배, 파배 등 소형토기류, 발치쪽은 호 등의 저장용기류를 주로 부장하였으며, 피장자 두부 쪽에 대부장경호 1~2점 등 소량 토기를 부장하고, 발치 쪽에 다량 토기를 부장한 묘(2호, 11호)가 확인되었다.
철기류는 2호 묘 부장공간에서 출토된 재갈 1점을 제외하고, 철겸, 철촉, 도자, 철부, 철모 등으로 대부분 빈약한 편이다.
피장자 발치나 주변으로 깔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판상의 이형철기 및 유자이기류가 확인되는 점이 특징적이다. 장신구는 금제 및 금동제 세환 및 태환이식 등이 일부 묘(2호, 4호, 8호, 13호)에서 출토되었다.
조사성과를 요약한다.
삼국시대 고분은 대부분 단곽식으로 조성되었으며, 동혈 주부곽식 묘형이 3기 정도가 확인되었다. 묘는 대부분 동-서 향에 가깝게 조성되어 있고, 등고선과 평행하거나 약간 틀어진 방향으로 조성되었다. 분포양상으로 볼 때, 길이 4m 이상의 비교적 규모가 큰 적석목곽묘는 부지 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중소형 적석목곽묘를 중심으로 2기~3기씩 의도적으로 중복 및 연접조성하여 군집양상을 보인다.
11기 정도의 적석목곽묘 및 목곽묘에서는 인골흔 및 인골이 양호한 상태로 다수 확인되었다. 두향은 동향이다.
유물은 대부분 양단부장하였는데, 토기류의 부장수량이 비교적 많은 반면, 장신구 및 철기류의 부장량은 상당히 빈약한 편이다.
환두대도는 목곽묘 4호와 적석목곽묘 4호에서, 마구류는 적석목곽묘 2호와 4호에서 재갈 1점, 등자가 출토되었다.
이식은 세환 및 태환이식이 적석목곽묘 4기에서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로 볼 때,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전반 정도에 해당하는 고분으로 판단되며, 목곽묘, 적석목곽묘, 석곽묘 등 일정기간 다양한 묘제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수혈유구 등은 중판타날의 선문 기와편과 인화문 토기편 등이 출토되어 기형 및 인화기법 등으로 볼 때, 8세기~9세기 정도의 시기로 판단된다.
조선시대 암거배수로 및 구상유구는 관련된 유구가 주변에서 확인되지 않아서 정확한 성격은 알 수 없지만, 잔존양상으로 볼 때, 모두 배수와 관련된 시설로 판단된다. 시기는 분청사기 및 백자편 등이 소량 확인되는데 굽 형태 등으로 볼 때, 후기 백자는 확인되지 않아서, 주로 15~17세기 정도로 판단된다.
이를 토대로 재단이 문화재청을 통해 배포한 보도자료는 아래와 같다.
경주 탑동일원에서 삼국 시대 최장신 피장자 확인
- 180cm에 척추 변형된 남성 등 12기의 인골 나와 7.15. 오전 11시 현장설명회 -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이 복권위원회 복권기금으로 추진하는 국비지원 발굴 ‘탑동유적’ 현장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삼국 시대 인골 중 최장신에 해당하는 180cm의 남성 인골이 확인되었다. 해당 유적은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이 조사 중인 경주 탑동 28-1번지(이하 ‘탑동 유적’)으로, 최근 이곳에서 5~6세기 삼국 시대 대표적인 무덤 24기와 그 내부에 있던 총 12기의 인골을 확인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15일 오전 11시 경주 탑동일원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현장설명회를 진행한다.
* 탑동유적: 경주 남천과 인접한 도당산 아래쪽에 위치. 기원후 1세기 전후 목관묘를 비롯, 6세기까지 무덤이 조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신라의 중요한 무덤군. 한국문화재재단에서 2010~2021년까지의 조사를 통해 돌무지덧널무덤 130기를 비롯한 약 180여기의 무덤 확인
이번 조사결과 주목되는 것은 2호 덧널무덤에서 확인된 180cm에 가까운 신장의 남성 인골이다. 이는 지금까지 삼국시대 무덤에서 조사된 남성 인골의 평균 신장 165cm를 훨씬 넘는 것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삼국시대 피장자 중 최장신이다. 보존상태 역시 거의 완벽하다.
뿐만 아니라 조사 현장에서 긴급히 이루어진 형질인류학적 조사를 통해, 해당 피장자가 척추 변형(비정상적인 척추 만곡)을 가지고 있었음이 확인되어 눈길을 끈다. 앞으로 정밀한 고고학적 조사와 병리학적 연구를 통해 피장자가 당시 어떠한 육체적 일을 하였는지와 직업군을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탑동 유적 인골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가 수습하여,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다양한 학제간 융복합 연구를 추진하기로 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탑동 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부터 전문 연구자를 통한 정밀한 인골 노출과 기록, 수습․분석을 지원하고 있으며, 앞으로 인골을 통한 형질인류학적·병리학적 연구를 계획 중이다. 신라인의 생활·환경과 장례풍습을 규명하고, 나아가 안면 복원을 통한 신라 남성의 얼굴을 찾아 신라인의 모습도 보다 구체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로, 고인골은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의 유전학적․생물학적 특징 뿐 아니라 당시의 생활․환경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21대 국회에서는 고인골과 같은 출토자료에 관한 제도적 정비를 마련하는 입법이 추진 중이며, 이러한 제도가 과거를 보다 입체적으로 복원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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