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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74년 전 보낸 아사카와 상의 새해 인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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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하고도 둘째 날이 되었다. 때마침 딱 이런 때 맞는 자료를 만나서 올려본다.

아사카와 노리다카淺川伯敎(1884~1964)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1913년 조선에 소학교 교사로 부임하면서부터 1946년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33년간 경성에 살았다.




그러면서 그는 도예가이자 조각가, 하이쿠 시인으로 명성을 떨쳤고, '조선 도자기의 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한국의 도자기와 민예품에 천착했다.

교통이 불편하던 일제강점기에 전국 가마터를 무려 700여 곳이나 찾아내 답사할 정도였다니 그 열정을 알 만 하다.

사실 노리다카보다도 그 동생 다쿠미巧(1891~1931)가 이런 면에서는 더 유명한데, 그는 아예 한복을 입고 다니며 한국인과 가깝게 지냈고 죽어서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런 아사카와 노리다카가 일본에 돌아가 도쿄 근처 치바시千葉市에 살고 있던 1950년 1월, 같은 치바시 노다마치野田町에 살던 이치야마 모리오市山盛雄(1897~1988)라는 이에게 1월 원단元旦을 하정賀正하는 연하엽서를 한 장 보냈다.

이 이치야마 모리오라는 사람도 꽤 주목할 만한 이인데 『조선민요의 연구朝鮮民謠の硏究』(1927), 『조선풍토가집朝鮮風土歌集』(1935) 같은 저술을 펴낸 사실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경성에서부터 이 둘의 교분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여담으로 아까 이치야마 모리오가 '노다마치'에 산다고 했는데, 그의 저술 중에 『치바현노다향토사千葉県野田郷土史』(1958), 『노다의 간장 역사野田の醤油史』(1980) 이런 책도 있다.

엽서가 좀 특이한데 아마 무슨 즉석복권마냥 경품 추첨 같은 걸 할 수 있게 만든 모양이다.

아사카와 노리다카는 그림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상을 탈 만큼 그림 잘 그리기로도 유명한지라 기왕에 쓰시는 거 조그만 항아리 그림이라도 하나 그려주셨으면 어땠을까 싶다가도, 글씨만으로도 멋스러움이 가득해서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니 그리 아쉽지만은 않다.

과연 예술가의 글씨다.

어쨌건, 74년 전 새해를 축하하던 아사카와 상의 엽서가 돌고 돌아 74년 만에 여기에 왔다.

이 글을 보시는 모두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는 일 다 잘 풀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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