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로마와 유대 문헌이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질문 중 하나인 "나사렛 예수는 실존 인물이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며 다시금 주목받는다.
대부분의 역사가한테 답은 명확하다.
더 어려운 질문은 예수가 실존했는지 여부가 아니라, 신약성경을 제외한 자료에서 그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다.
바로 이 때문에 고대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 와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두 사람이 이 논쟁 중심에 선다.
두 사람 모두 기독교인이 아니었고, 복음서를 옹호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예수가 1세기 유대 시대에 살았으며 그의 죽음이 로마 권력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기록을 남겼다.
기독교인에게 적대적이었던 로마 역사가
로마에서 가장 존경받는 역사가 중 한 명인 타키투스는 서기 116년 경에 『연대기Annals』를 저술했다.
그는 서기 64년 로마 대화재에 대한 네로 황제의 대응을 다룬 부분에서 네로가 기독교인들Christians을 비난했다고 기록한다.
타키투스는 그들의 이름이 "그리스도Christus"라는 인물에서 유래했다고 밝혔는데, 그는 이 인물이 티베리우스 황제 재위 시절 유대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e한테 처형되었다고 말했다.
이 구절의 중요성은 부분적으로 그 어조에 있다.
타키투스는 기독교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 운동을 경멸했고 위험한 미신으로 묘사했다.
이러한 적대감 때문에 이 언급은 역사가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된다.
타키투스는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기 위해 그들의 말을 되풀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싫어하는 집단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간략한 언급은 신약성경에서 알려진 몇 가지 사실과 일치한다.
예수는 기독교 운동의 시작과 관련이 있었고, 로마의 권위 아래 처형되었으며, 그의 죽음은 서기 26년부터 36년까지 유대를 통치한 폰티우스 필라투스 재위 기간에 일어났다.
요세푸스와 예수의 형제
두 번째 주요 사료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간주되는 시기보다 불과 몇 년 후에 태어난 유대인 제사장이자 귀족, 역사가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다.
요세푸스는 로마에 대한 제1차 유대 반란First Jewish Revolt against Rome을 겪었고, 이후 플라비우스 황실 후원을 받아 저술 활동을 했다.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에서 초기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였던 야고보James의 처형을 언급한다.
요세푸스는 자신이 지칭하는 야고보가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 그를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brother of Jesus who is called Christ"라고 불렀다.
이 문장은 짧고 거의 부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학자들은 이 문장을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여긴다.
이 구절 주제는 예수가 아니다. 요세푸스가 야고보를 더 명확하게 지칭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언급한 것뿐이다.
1세기 유대에서 "야고보"와 "예수"는 모두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라 불리는 자"라는 표현은 이 예수를 다른 예수들과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많은 역사가한테 요세푸스와 그의 독자들이 예수를 근현대 유대 역사에 등장한 실존 인물로 이해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가벼운 언급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논란이 되는 더 긴 구절
요세푸스는 예수에 대한 더 긴 구절, 흔히 「플라비아누스 증언(Testimonium Flavianum)」이라고 불리는 구절도 남겼다.
현존하는 그리스어 원문에서 예수는 현자이자 스승이었으며, 유대 지도자들 비난을 받았고, 빌라도Pilate한테 십자가형에 처해진 인물로 묘사한다.
문제는 이 구절 일부, 특히 예수를 메시아로 직접 묘사하거나 그의 부활을 신앙고백적인 언어로 언급하는 부분이 요세푸스 자신이 썼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노골적으로 기독교적인 어조를 띤다는 점이다.
요세푸스는 로마 독자를 위해 글을 쓴 유대인 역사가였기 때문에, 학자 대부분은 현재의 구절 전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 일반적인 견해는 더욱 신중하다.
요세푸스가 예수에 대한 원본 기록을 남겼고, 후대 기독교 필사자들이 일부 구절을 수정하거나 확장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덧붙인 곳으로 의심되는 부분들을 제거하더라도, 많은 학자는 핵심 내용은 여전히 교사로 알려졌고, 추종자들을 모았으며, 빌라도 치하에서 처형된 역사적 예수를 가리킨다고 믿는다.
이러한 사료들이 증명할 수 있는 것과 증명할 수 없는 것
타키투스와 요세푸스는 예수에 대한 신학적 주장을 증명하지 못한다. 기적, 부활, 또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논쟁을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고대 문헌 자료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아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것은 다소 제한적이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예수가 기독교 문헌 밖에서도 알려져 있었고, 그의 이름이 새로운 종교 운동 발흥과 연결되었으며, 로마 당국에 의한 그의 처형이 그의 사후 약 1세기 이내에 비기독교 작가들한테 기억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모사타의 루키아누스Lucian of Samosata, 소小 플리니우스Pliny the Younger, 그리고 아마도 수에토니우스Suetonius를 포함한 다른 고대 작가들도 초기 기독교인이나 그리스도를 적대적이거나 경멸적인 어조로 언급한다.
이러한 언급들은 타키투스와 요세푸스처럼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2세기경 유대에서 로마를 거쳐 그 너머까지 퍼져나간 운동의 모습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은 이것이리라.
고대 기독교 비판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예수를 공격했다. 어떤 이들은 그를 속임수, 마술, 또는 거짓 가르침을 행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현존하는 고대 기록을 보면, 반대자들이 예수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근거로 삼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바로 그 침묵이 중요하다.
종교적 주장이 종종 격렬하게 반박되던 시대에 예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논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 로마인, 그리고 이교도 비평가들은 그의 추종자들이 그에 대해 믿는 바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실존 인물로 여겼다.
역사학자들에게 타키투스와 요세푸스 기록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신앙을 고고학으로 바꾸는 것도 아니고, 신약성경을 사료로서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기록들은 나사렛 예수를 로마 유대의 기록 세계, 즉 기억, 정치, 그리고 신앙이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운동 중 하나를 형성하기 시작한 바로 그 시대 속에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한다.
출처: 이 글은 데일리 메일 보도와 성서학자 로렌스 미키티우크Lawrence Mykytiuk가 작성한 예수에 대한 비성서적 증거에 관한 성서고고학회Biblical Archaeology Society 검토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역사문화 이모저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담덕談德이라는 이름, 편년체를 고수한 비문 (0) | 2026.06.21 |
|---|---|
| 일본발 동굴사자 폭풍, 이젠 호랑이와 헤어질 결심을 할 때 (0) | 2026.06.21 |
| 아예 문장 자체가 성립하지 아니하는 호태왕비문, 백제 보복전의 경우 (0) | 2026.06.20 |
| 고구려 건국을 올림포스 산상으로 보내 버린 호태왕비 (0) | 2026.06.20 |
| 나폴레옹을 영원히 추방한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 (0) | 2026.06.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