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자 생활 26년 중 20년은 문화재와 관련 있다. 그런 문화재 관련 기자 생활 중에서 고고학 발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문화재라는 범주가 매우 광범위해서, 고고학 혹은 발굴이 차지하는 지위는 생각보다는 얼마되지 아니한다. 그럼에도 이 업계 기자들한테 유독 발굴이 비중이 큰 까닭은 모든 발굴은 news를 생산하며, 언론 혹은 기자는 이 news를 자양분으로 삼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김태식 개인으로 보아도 문화재 관련 기자 생활은 고고학으로 먹고 살았다 해도 과언은 아니며 그런 점에서 나는 언제나 고고학이 감사하다. 그렇기는 하나 그 발굴에 종사하는 작금 한국 고고학에 나는 보다시피 언제나 비판적이다. 개중 하나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로 주제다.
내가 이 분야에 뛰어든 직후부터 줄기차게 한 말이 있다. 유적을 파괴하는 주범은 다름 아닌 고고학도들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이에 경기를 일으킨 이유는 모든 발굴 현장마다 소위 자문위원이니 검토위원이니, 지도위원이니, 혹은 문화재위원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자들이 걸핏하면 토층(土層)이 궁금하다며, 저 아래 쪽엔, 그리고 저 뒤엔 무엇이 있냐를 밝혀야 한다는 그럴 듯한 이유를 달아 모조리 파제끼게 하니, 그리하여 결국 발굴이 끝난 다음 현장엔 빈껍데기만 남고 그 존재 이유를 가능케 한 소위 유구(遺構)며, 유물(遺物)은 깡그리 걷어내는 까닭이다. 그 빈껍데기 위로는 이내 광활한 잔디밭이 들어서고, 그 한쪽 귀퉁이에는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유적인지를 윽박하고 강요하는 문화재 안내판 하나 덜렁 들어설 뿐이다.
발굴은 그 동기와 목적에 따라 크게 구제발굴과 학술발굴로 나뉜다. 공사에 따른 전 단계 조치로써, 근간에서는 파괴를 전제로 삼을 수밖에 없는 구제발굴이야 그 대부분이 기록만 남기고는 사라지고 말지만, 연구와 보존 정비를 내세운 학술발굴 현장에서도 모두가 파괴하지 못해 환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자들이 이 땅의 고고학도와 고건축학도들이다. 최근에는 이를 향한 비판도 적지는 않아서인지 어째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장에 따라 유구 보존을 위한 새로운 결단 방식이 더러 도입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에도 '파괴 일로주의'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자 과연 몇 명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앞서 말한 저 토층과 혹은 구조가 궁금하다는 등의 이유로 모조리 파제끼라고 부추기는 자들이 또 매양 하는 말 중의 하나로 유구는 해체하지 않고, 유물은 수거하지 않고서는 보고서를 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리하여 다시 모조리 파제끼고, 모조리 해체하고, 모조리 거둬 버린다. 물론 아니라 강변하는 자도 있을 터이고,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또 듣자니 더러 현재의 매장법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이런 반론은 일부에서는 정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정당할 수는 없다. 매장법? 보고서? 내가 보는 한 핑계다. 그에서도 얼마든 빠져나갈 구멍은 있으며, 귀찮아서 하지 않을 뿐이다.
장담하거니와, 그렇게 해서 망가져 나간 히스토릭 사이트가 대체 얼마인지 헤아릴 수조차 없다. 그만큼 무수하며, 내 눈 앞에서 사라져간 사이트도 천지다. 내가 두 눈 부릅뜨고 있는 데도, 꼴난 저와 같은 완장 하나 차고는 현장에 나타나서 하는 말이, 구조를 밝혀야 하니깐, 제작 방법을 구명해야 하니깐, 어떻게 쌓았는지 토층 양상을 파악해야 하니깐, 더 파야 한다고, 다 뜯어제껴야 한다고 해서 각종 이유를 달아 부추긴 자들이 너희다.
그리하여 정작 발굴이 끝난 현장은 볼 것이라곤 하나도 남지 않아, 토기 쪼가리 하나까지 박박 긁어가서는 개중 모양이 좀 좋은 것을 골라 박물관 같은 데다 전시하고, 나머지 99%는 수장고에 쳐박아 두는 악순환이 지금도 계속 중이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무엇 때문에 발굴했는가 하는 반문이 절로 나온다. 보존정비라 하지 않았는가? 무엇을 보존했느냐 너희 한국고고학도 고건축학도들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도 너희가 유적 보존을 운위할 자격이 있느냐 말이다. 잔디밭 보자고 발굴했는가? 덩그레한 안내판 하나 읽으려 발굴했던가? 박물관 유리창 너무 안치한 유물 몇 점 보려고 발굴한 게 아니지 않는가?
저와 같은 다양한 이유로써, 저 풍납토성 미래마을지구 기와더미는 기어이 다 파제끼고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한다며 다 들어냈다. 보고서 쓰야 한다고, 나아가 그렇지 않고서는 그 밑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들어낸 기와가 오백 박스다. 같은 풍납토성 경당지구 우물도 토기 그득한 그 상태로 남겨두었어야 함에도 보고서 쓰야 한다는 이유로 그 안을 가득 채운 꼬다리 뜯은 토기 243점을 몽땅 들어내고 빈껍데기를 만들었다. 대전 월평산성 백제 목곽은 그렇게 해서 뜯어제꼈다.
뭐 뜯어제낄 땐 참 논리도 정연하고, 참 자신감 넘치기도 한다. 요즘 보존처리 기술도 못할 일이 없다고 한다. 돈만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 한다. 뭐 그래? 내가 보니 이는 완전한 사기이거나 그에 가깝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전연 그것을 완벽히 보존할 수도 없고, 제아무리 보존처리 잘한다 한들, 뒤틀리기 마련이라, 이내 썩어문드러지고 만다. 월평동 목곽고가 그렇게 해서 다 망가져서, 다 뒤틀린 목재 쪼가리 몇 개 국립공주박물관 유리창 안에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저들은 아랑곳없어, 브레이크 없는 전차와 같아, 언제나 뜯어제껴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문경 고모산성 목곽 자문위원회 현장을 가서 보니, 그 우람한 5세기 신라시대 저습지 목곽을 해체한다 한다는 주장이 난무하더라. 더 근자엔 천안 위례산성 꼭대기를 갔더니, 그에서도 백제시대 저습 목곽고가 드러나, 물으니, 어떤 자문위원이라는 자가 뜯어라 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 놈이 어떤 놈이냐, 그 놈더러 해체해서 그 놈더러 저 목재 지고 내려가게 하라고 한 일도 있다.
도대체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가? 다시 얘기하듯이 그 궁금증이란 것도, 너희가 그토록이나 구명하고자 하는 한국고대문화 구명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토층? 똥개나 줘버려라. 구조? 시궁창에나 던져버려라.
내가 지난날을 곱씹고, 그리고 오늘을 보고 또 봐도, 문화재를 죽이는 주범은 도굴이나 개발이 아니다. 고고학적 호기심이 문화재를 죽이는 제1 원흉이다. 이는 주로 고건축학도가 주무하는 보수 현장에도 같은 현상이 벌어져, 거의 모든 보수현장이 진행 양상이 같아, 애초엔 지붕만, 천장만 손본다 했다가 기어이 다 뜯어제끼니, 뭐 말은 그럴 듯해서, 막상 뜯어보니 건물 전체 안정성에 문제가 있고, 부재가 다 썩어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결국 몽땅 해체하고 만다. 하지만 그네들이 내세우는 안정성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거개가 다 호기심 해결용이다. 구조가 궁금하다고, 그걸 처음 만든 시대가 궁금하다며, 그 증거 채집을 위한 파괴에 다름 아니다.
이런 호기심은 내가 보니 관음증에 다름 아니다. 그 궁금증을 향한 욕구는 단언커니와 그네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한 꼼수지 문화재 자체를 위한 충정과는 눈꼽만큼도 관계없다. 이런 놈들이 매양 하는 짓이라곤 몽땅 걷어내고 파제낀 다음 복토다. 유적 보호를 구실로 흙으로 덮어버리곤 그것이 문화재 보호라 한다. 물론 이 복토가 상징하는 정비는 고고학이나 건축학 영역을 벗어나 별도 영역이라 고고학 혹은 건축학이 간여할 수 없는 일이라 하나, 애초 그런 비극이 초래할 줄 알면서도 파제끼고 뜯어제끼는 일을 나는 계속 용납치 않으려 한다.
***
추기한다.
Curiosity kills historic sites!!!
지난 20여년에 걸친 내 고고학 투신에서 내린 결론이 이것이다.
하나를 더 추가하면 문화재보존과학도 혁혁한 파괴 전통을 세운다는 사실이다.
한 놈은 연구를 빌미로 문화재를 파괴하고
한 놈은 보존을 빌미로 문화재를 옥죄더라
이는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니
입으로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달지만
오로지 권력 탈취와 유지가 목적인 정치와 진배없다. (2021.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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