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첩한테서 난 자식도 본처한테서 난 자식과 같은 대접을 해야 한다고 할 때 누가 벌떼처럼 일어나 반대할 것 같은가?
이 차별 철폐를 흔히 서얼허통庶孼許通이라 하거니와, 저 강고한 신분제를 혈통으로 분류한 조선왕조 내내 생각보다 저리 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식인은 적지 아니해서 혹자는 조선 후기 이른바 실학의 전매특허처럼 선전되기도 하지만 천만에!
조금 제정신 든 지식인이라면 틈만 나면 서얼허통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애통하게도 찻잔 속 태풍에 지나고 말았으니,
그렇다면 저런 주장이 끊이지 아니했음에도 왜 그 움직임은 법제화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던가를 이제는 따져야지 않겠는가?
혹자는 저런 서얼허통을 양반 기득권층, 지배계층에서 대체로 반대했다고 알겠지만, 천만에!
저 서얼허통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사람들이 실은 고관대작들 본처들이었다!
본처는 씨앗을 용서하지 못하는 법이며 씨앗이 씨앗을 용납할 수는 없다. 본처와 첩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어야 하며,
이런 싸움은 첩들끼리 대전으로 발전하기도 하니, 씨앗도 등급이 있었으니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왕의 첩들이다.
조선시대고 나발이고 한국역사는 오직 일부일처제였으니, 한 남자한테 특정한 시기에 정식 부인은 오직 한 명이었으니, 이 오직 한 명이 처음 부인일 때 우리는 그를 조강지처라 부른다.
하지만 조강지처는 쉬 역사에서 사라지는데 무엇보다 산후열이 그리 많아서 애 낳다가 죽어간 조강지처가 지천에 깔렸다.
그런 조강지처가 죽고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는 후처를 들이는데, 이때 후처도 조강지처랑 마찬가지로 정식 부인이라,
이 조강지처랑 그를 이은 후속 부인을 적처嫡妻라 하고, 그에서 난 자식들이 적자嫡子 적녀嫡女가 된다.
왕 역시 오직 한 시기에 한 명의 정식 부인만을 둘 수 있으니 이를 비妃라 하며, 나머지 우수마발은 다 첩이라,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물론 이걸 첩들이 용납하겠는가? 내도 적처 되어 보겠다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일부는 성공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장렬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독극물 원샷하고는 한 방에 훅 갔다.
왕은 옛날 법률에 따라 몇 명의 첩을 둘 수 있는가가 달랐지만, 세종은 서른 명 가까이 두었거니와 대개 조선 임금들이 다 이랬다.
문제는 첩들 사이에서도 등급을 매겼으니, 왕비는 등급이 없는 초월한 절대의 존재였으나, 첩들은 달라서 다 직급이 있어 정1품부터 좍좍 아래로 서열을 매겼다.
서얼허통을 주장할 때 왕비가 용서하겠는가? 네버에버다!
내가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을지언정 저 첩년들 자식이 내 자식들이랑 똑같은 대접을 받는 꼴을 못 보겠다고 나서지 않겠는가?
왕이라고 왕비가 겁나지 않겠는가? 동서고금 막론하고 남자한테 진짜로 두려운 존재는 마누라다! 것도 정식 마누라다!
서얼허통을 한다고 나설 때 맨 먼저 나서서 방맹이들고 그런 주장 일삼은 남편 죽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주장을 일삼은 남자의 마누라들이다.
맞아 뒤진다.
내 말이 거짓말 같은가?
한국역사에서 이런 장면이 아주 드물게 남았으니 아래를 참고하라!
여자의 적은 여자다!
여자들이 반대해 무산된 일부다처제
https://buly.kr/5UJvhij
여자들이 반대해 무산된 일부다처제
한국처럼 강고하면서 억압적인 신분제 나는 유사 이래 본 적이 없다. 능력이 아니라 피로써 그 사람 생평을 절단낸 가족제도로 한국사만큼 엄혹한 데가 없다. 능력에 따른 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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