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문제와 관련해 줄기차게 탐구하는 신동훈 선생께서 역사학의 영역이 아니라 수학의 영역이라 하셨거니와, 그 본질하는 핵심에 내가 달 이견은 없거니와
이 시점에서 생각할 것은 수학이라 했지만, 그 수학이 과연 고차원하는 그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야 하니,
흔히 저 학문을 일반 통념에서는 산수와 수학으로 분리하거니와, 전자가 덧샘 뺄샘 수준이라 하면, 후자는 적어도 방정식 정도는 되겠다 그런 통념에 기반해 내가 말하고자 한다.
왜 조선시대는 시간이 갈수록 서얼과 노비가 무한급수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가?
무엇보다 법제가 그리 강제했기 때문이어니와, 이는 아주 간단한 산수 문제라
부모가 둘 다 양반이거나 평민, 혹은 노비일 때는 하나도 문제가 될 것도 없으니, 이는 본전치기인 까닭이다.
문제는 이것이 뒤집어져서 어느 하나가 다른 신분에 끼어들 때다.
예컨대 양반 남자가 평민 혹은 노비 여자를 취해서 낳은 자식은 적어도 현 상태를 유지하려면 그에서 나는 절반하는 자식은 평민이거나 노비여야 한다.
조선시대 관습과 법은 낮은 쪽을 따라간다는 방식을 채택했으니, 어느 한 쪽(주로 여자다, 반대는 법적으로 관습으로 있을 수 없는 불법이기에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신분이 낮을 때 그 한 쪽으로 따라 자동빵으로 분류됐다.
이에 의해 예컨대 양반 남자와 노비 여자 사이에서 난 자식은 모조리 노비로 분류됐으니, 왜 현상 유지가 되지 않는가?
적어도 현 상태를 유지하려면 그에서 나는 자식 절반은 양반이어야지 않겠는가?
하지만 법과 관습은 그것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으니, 모조리 서자 혹은 노비로 자동빵으로 분류한 것이다.
뿐인가?
다시 그런 서얼, 그런 노비한테서 나는 자식도 모조리 서얼 혹은 노비로 금고禁錮해 버리니, 본래 출발은 양반 1, 노비 1로 출발한 갈래가 후손이 완전히 단절되었다면 모를까 그 후손들은 모조리 서얼 혹은 노비가 되게끔 강제한 법률이 조선의 그것이었다.
이처럼 혹독한 법과 관습이 지구상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이런 법과 관습은 미국 땅으로 끌려간 흑인의 그것보다 더 비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법과 관습이 언제 어떻게 붕괴하는가?
앞서 나는 실로 간단히 '등신론'으로 치환했거니와, 그렇게 무한급수로 늘어난 서자와 노비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절반에 육박하거나 그것을 넘어설 때 저절로 무너진다 했다.
너도 서자, 나도 서자, 너도 노비, 나도 노비인 세상이야말로 저 혹독한 신분 체체를 붕괴하는 힘이다.
실제 조선 사회는 18세기로 넘어가 19세기 무렵이 되면, 노비는 문서상으로만 존재하거나 아예 사라진다.
양반가 문서를 보면 18세기까지만 해도 중인 계층 웬간한 집안에서도 수십 명씩 등장하던 노비가 19세기가 되면 느닷없이 사라진다.
왜 이럴까?
저 변화하는 시대 일기 같은 자료를 보면 더욱 분명해지는데, 이때가 되면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는 시대가 왔으니,
내 땅이 전국에 산재하지만 문서상으로만 존재할 뿐이요, 노비 역시 내 문서에만 존재하는 존재일 뿐, 그런 문서상 내 땅, 문서상 내 노비를 내 땅이라고, 내 노비라고 도저히 주장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다.
실은 그 빌미는 그 훨씬 이전에 드러난다.
임란 이전 묵재일기나 임란 중 쇄미록을 보면 이미 문서상 주인이 문서상 노비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이 뚜렷하고
심지어 묵재일기를 보면 중인 상인 계층한테 양반이 쩔쩔 맨다.
퇴계 서한을 봐도 명확해서 이미 비갈을 만드는 사람한테 퇴계도 쩔쩔 맨다.
추노?
웃기는 소리.
내 노비 찾으러 함부로 나섰다간 내가 쥐도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하는 시대가 도래한다.
이때를 같이해서 반가 문중에서도 벌떼처럼 반란이 일어난다.
노상추 일기 봐라! 서자 혹은 그 후손들이 요즘으로 치면 종가 혹은 문중 회의에 나타나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집단 시위를 벌이면서 "우리도 족보에 넣으라"고 압력하는 시대다.
그렇게 조선이라는 사회는 부패의 끝을 달리다 종국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망했을 뿐이다.
등신이 절반을 넘으면 그 사회는 등신이 정상인 사회다.
이 집단하는 등신들의 힘, 이것이 어찌 듣보잡 민중의 힘이겠는가?
그런 거지 같은 집합추상명사로는 그 어떤 것도 해명할 수 없다.
그 집합추상명사를 해체해 구상화해야 하는 책무가 역사가한테는 있어야 한다.
노상추 집안을 향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우리도 족보에 넣으라 시위하고 압력하는 그 구체하는 서자들을 당당히 역사의 주체로 내세워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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