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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털려서 유명해진 모나리자! 피카소도 용의선상 올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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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으로 사라졌다 셀렙으로 화려하게 귀환


 
루브르 박물관은 압도하는 전 세계 1등 박물관이다.

규모로 보나 관람객 숫자로 보나 1등이다.

브리티시뮤지엄? 근처에도 못간다. 

연간 900만이 찾는다는데, 우리네 국립중앙박물관 연간 관람객 500만 넘었다 설레발치지만, 여기에는 허수가 대단히 많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혹 기회 닿으면 하기로 하고.

그 루브르박물관이 저리 된 일등 공신은 그 소장품 하나하나가 명품이기도 하지만 역시 단 한 점이다. 모나리자 없는 루브르? 상상도 못한다. 

루르브 가는 모든 사람이 모나리자를 보러 간다.

물론 못 본다. 봐봐야 먼 발치에서 코딱지 만한 그림 잠깐 보고선 나도 봤다 할 뿐이다. 가서 그걸 구경하는 사람 구경할 뿐이다. 

물론 나도 봤노라 해서 기념사진 한 장 덜커덩 찍어서 페이스북이니 인스타니 하는데 올리며 자랑한다. 

오늘날 루브르를 있게 한 모나리자지만, 이 모나리자 실은 보면 볼품없기 짝이 없어 왜 이걸? 한다.

그래도 그렇게 유명하대니 나도 죽기 전에 봐야 할 것 아닌가?

그렇다면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그리면서 곧바로 그렇게 유명해졌는가?

 

털렸다가 돌아오는 모나리자. 떠날 땐 무명이었으나 셀렙이 되어 돌아왔다.



천만에. 이 모나리자는 1911년까지만 해도 볼품 없었다.

있는둥마는둥 했다. 그저그런 그림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털리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모나리자는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당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른바 노이즈마케팅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모나리자 탄생 밑거름이었다.

이 사건은 언론의 엄청난 관심과 대중의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도난 전에도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호평을 받기는 했지만 지금과 같은 영광?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광범위한 뉴스 보도와 그에 따른 전 세계적인 수색 작전으로 누구나 아는 이름이 되었다.

2년 후, 그림이 회수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으로 몰려들면서 그 명성은 더욱 확고해졌다.

1911년 8월 21일, 루브르 박물관 직원 빈첸초 페루자Vincenzo Peruggia가 이 그림을 훔쳤다.

이후 2년간 언론의 열광적인 반응과 대중의 비난, 수사, 심지어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용의자들 체포까지 이어지면서 이 그림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더 웃긴 건 털린 그 본래 루브르 박물관 전시공간.

도난 사건 이후, 사람들은 그림이 걸려 있던 빈 공간을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으로 몰려들었고, 이로 인해 그림은 명성이 더욱 더욱 커졌다.

그런 그림이 1913년 피렌체에서 회수되자 반환을 둘러싼 축하와 홍보는 그 명성을 더욱 증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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