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aritime archaeology

지중해 심해서 악명 높은 18세기 지중해 바르바리 해적 난파선 발견[2024]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8. 10.
반응형

해적 난파선 선미 나무 선체에 놓인 알제리산 도기와 기타 유물들. 사진 제공: Seascape Artifact Exhibits Inc.

 

(August 5, 2024) 오랫동안 감춰진 비밀이 마침내 지중해 심해에서 드러났다. 이 난파선은 악명 높은 바르바리 해적Barbary corsairs과 관련된 수백 년 된 것으로 추정한다. 

길이 약 13.7미터(45피트) 이 배는 2005년 플로리다에 본사를 둔 오디세이 마린 익스플로레이션Odyssey Marine Exploration (OME)가 모로코와 스페인 사이 공해 수심 약 823미터(2,700피트) 지점에서 발견했다.

이 중요한 발견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은 최근까지 비밀에 부쳐졌다가 2024년 여름호 '렉워치Wreckwatch' 잡지에 소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배는 북아프리카 연안을 거점으로 활동한 바르바리 해적, 무슬림 해적Muslim pirates, 그리고 사략선들privateers이 운항하던 것으로, 중세 이후 유럽 해상 활동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바르바리 해적들은 유럽 선박과 연안 정착촌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종종 포로를 잡아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새로 발견된 난파선은 한때 바르바리 해적 활동 중심지였던 알제리 수도 알제Algiers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해양 유물 전시 회사인 시스케이프 아티팩트 익스히비츠Seascape Artifact Exhibits Inc. 이사이자 오디세이Odyssey 전 회장인 그렉 스템Greg Stemm은 뉴스위크Newsweek와의 인터뷰에서 "알제리 해적의 위협은 서방 세계에 매일같이 닥친 공포였다. 심해에서 발견된 이 난파선은 서부 지중해에서 벌어진 끔찍한 해상 공포maritime horrors의 소중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삽화에는 해적들corsairs에게 붙잡혀 몸값이 청구되어 알제리 항구에 도착한 기독교인 노예들이 묘사된다. 암스테르담 박물관, 1706년. 출처: 퍼블릭 도메인 / 위키미디어 코먼스

 

해적 잡지 렉워치 편집장 숀 킹슬리Sean Kingsley는 알제리가 해적 활동 중심지였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카리브해 해적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알제리는 해적 본거지로서 훨씬 더 일찍부터 해적질에 뛰어들었고 훨씬 더 큰 규모의 사업이었습니다. 1525년부터 1830년까지 6만 명의 '악당과 배신자'가 도시 전체에서 칼로 먹고 살았습니다."

그는 또한 바르바리 해적들이 영국 남부까지 북쪽으로 습격해 포로를 노예로 삼고 몸값을 요구했기 때문에 서양 상인들에게 해적 행위는 매일같이 위협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이 난파선은 1694년에 실종된 영국 기함 HMS 서식스Sussex를 찾던 오디세이Odyssey 사 탐사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250피트 길이의 연구선 오디세이 익스플로러Odyssey Explorer 호가 탑재한 첨단 원격 조종 잠수정 제우스Zeus를 이용해 탐사하던 중, 해적선을 발견한 것이다.

오디세이 마린Odyssey Marine은 지금까지 300척이 넘는 난파선을 발굴했지만, 이번 발견은 알제리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며, 이러한 유형의 발견으로는 최초다.

1681년 로레이스 아 카스트로Laureys a Castro가 그린 유럽 함선과 바르바리 해적선 간 해전 그림, 덜위치 미술관(Dulwich Picture Gallery). 퍼블릭 도메인

 

난파선의 보존 상태는 매우 훌륭하다.

선체 하부 3분의 1은 잠수부나 어선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온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상부는 지중해에서 흔히 발생하는 선박벌레shipworms 피해로 손상된 것으로 추정한다.

머스킷총muskets, 대형 대포cannons 4문, 회전포swivel guns 10문을 포함한 배의 중무장은 해적선임을 확증하는 결정적인 특징이었다.

킹슬리는 "해적선의 두 가지 특징은 중무장과 약탈품으로 채운 다양한 문화적 요소"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도기와 유리 제품 같은 유물들은 배의 기원과 시기에 대한 단서를 제공했다.

도기는 알제리 순교자 광장Martyrs’ Square에서 발굴된 18세기 도기와 매우 유사하며, 유리병은 1740년에서 1760년 사이 것으로 추정되어 배가 1760년경에 침몰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킹슬리는 "발굴된 도자기의 대부분은 알제리 순교자 광장에서 발굴된 18세기 도자기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난파선에서 발견된 오스만 제국 시대 그릇들은 1755년경 터키에서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가장 확실한 연대 측정 근거는 유리병인데, 늦어도 1740년에서 176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이 배는 1760년 이후에 건조된 것이 아닙니다."

이 해적선은 스페인으로 향하던 중, 다른 배들을 약탈하고 노예를 납치하여 몸값을 요구하려던 참에 예상치 못한 폭풍을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

킹슬리는 "작은 배는 거의 확실히 갑자기 닥친 폭풍에 휩쓸렸을 것입니다. 대담하고 용감한 해적선은 거친 바다에서 제 실력을 넘어서는 안 될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알제리는 유럽 국가들의 거듭된 침략으로 해적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잃어갔고, 결국 1830년 프랑스에 정복당했다.

 

'캐리비안의 해적'들이 배의 난파 흔적 최초 발견

https://historylibrary.net/entry/Pirates-of-the-Caribbean

 

'캐리비안의 해적'들이 배의 난파 흔적 최초 발견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한 해적들의 난파선이 바하마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어, 고고학자들에게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무법자 집단의 해양 세계를 엿볼 귀중한 기회를 제공했다.뉴 프로비던

historylibrary.net

 

코스타리카 해저 '해적' 난파선은 1710년 덴마크 노예선

https://historylibrary.net/entry/%E3%85%87-929

 

코스타리카 해저 '해적' 난파선은 1710년 덴마크 노예선

Centuries-old ‘pirate’ shipwrecks in Costa Rica identified as 1710 Danish slave ships 코스타리카 해저 '해적' 난파선은 1710년 덴마크 노예선이전까지 오랫동안 잘못 식별된 두 척 난파선이 마침내 18세기 덴마크

historylibrary.net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