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4일인지 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39차 회의에서 일본 메이지시대 산업혁명 유산군(Sites of Japan's Meiji Industrial Revolution)이 질긴 줄다리기 끝에 세계유산에 등재되자마자, 이 회의를 지켜본 중국대표단이 회의장 각국 대표단에 뿌린 유인물이다. 서명도 없고, 대표자 명단도 없으며, 날짜도 없으니, 공문서로서의 그 어떤 효력도 지니지 못한다.
2015년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본국 외교부에서 훈령도 받지 못했으므로, 이런 식으로 중국 대표단이 분풀이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막강한 중국도 당시 세계유산위 21개 위원국이 아닌 까닭에 그 어떤 발언권도 없어 분통만 터뜨리면서 일부 대표단원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 유인물은 당시 내가 폰카로 촬영한 자료만 남고 실물은 멸실했겠거니 했는데, 서재를 청소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세계유산위 관련 서류 뭉치에서 뭉치에서 찾아냈다.
전문을 번역한다. 거친 번역임을 감안해줬으면 한다. 더불어 원문을 정서해 첨부한다.
제39차 세계유산위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군'에 대한 중국 대표단 성명
중국은 세계유산위 위원국들에게 강제노역과 관련되지만 그런 사실과 그에 대한 책임을 무시하면서 저들 유산을 등재하고자 하는 일본을 반대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저들 유산에는) 도합 2천316명에 이르는 중국인이 수년간 모진 환경에서 강제로 노역해야 했으며 그들 중 323명이 일본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강제노역은 인류에 대한 중대한 범죄이자 인권 위반이다. 오늘날 일본에서 이런 사실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
나는 일본 대표단이 그들의 성명에서 많은 한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1940년대에 그들의 의지에 반하여 저들 유산 중 몇 곳으로 강제동원되어 모진 조건에서 강제 노역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런 사실이 일본의 등재신청서에서는 무시된 사실을 주시했다. 하지만 강제노역을 둘러싼 총체적 사실에 대한 일본 측의 충분한 설명은 여전히 부족하다. 나는 일본에 대해 역사를 직면하고, 나아가 이코모스와 세계유산위가 요구한 것처럼 각각의 유산에 대한 전체 역사를 이해하게끔 하는 구체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며, 또한 모든 개별 강제노역 피해자의 고통이 기억되고, 더불어 그들의 존엄성이 지켜질 수 있도록 확실히 해줄 것을 촉구한다.
Statement by the Chinese Delegation at the 39th Session of the World Heritage Committee on the "Sites of Japan's Meiji Industrial Revolution"
China has conveyed to the Committee members its opposition to Japan nominating those sites involved in the use of forced labor while ignoring the fact and its responsibility. 2316 Chinese altogether were were forced to work under harsh conditions for years and 323 of them lost their lives in Japan. Forced labor is a grave crime against humanity and a violation of human rights. It's outragcous that nowadays there are still voices in Japan attempting to deny this fact.
I noticed that, the Japanese delegate acknowledged in her statement that there were a large number of Koreans and others who were brought against their will and forced to work under harsh conditions in the 1940s at some of the sites, which was ignored in Japan's nomination documents. However, there still lacks an adequate account from Japan of the whole facts surrounding the use of fored labor. I urge Japan to face up to the history, and to take concrete measures to allow an understanding of the full history of each site, as recommended by ICOMOS and the Committee, and to make sure that the sufferings of each and every one of the forced labor are remembered, and their dignity upheld.
아래는 이와 관련한 March 23, 2016 또 다른 내 글이다.
라인강변에 흘린 중국 대표단의 눈물을 새겨야 한다
작년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이 신청한 메이지시대 산업유산군이 갖은 진통 끝에 등재 확정이 되었을 때 중국 대표단이 눈물을 흘리면서 성명서를 각국 대표단에 돌린 일을 내가 본 현지에서 전한 적이 있다.
그들이 왜 울어야 했는가?
작금 미국의 유일한 대항마라는 중국 역시 이번 사태에 다른 정치적 이유로, 혹은 현재의 세계유산위 역학 구도상 하고 싶은 말 그렁그렁 가래처럼 솓아 올랐지만 그럴 수 없었으니, 그런 분통을 눈물과 성명서 한 장으로 대체했다.
저들 메이시대 산업혁명 유산군 중 7군데가 강제징용 현장이라 조선인 수만명이 동원되어 강제노동에 혹사당했다. 하지만 저들 현장에서 중국 노동자가 겪은 일은 조선인 노동자에 견주어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참혹했다.
우선 징발 동기를 보면 조선인은 엄연히 모집 형태였지만, 중국인은 그야말로 느닷없이 군용 트럭 이끌고 나타난 일본 군대에 쌍끌이 저인망 물고기 잡히듯 해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른 채 탄광이며 조선소로 개끌리듯 끌려갔다.
그네들 인권 상황은 더욱 처절해 조선인은 그래도 비록 내지인에 견주어 2등이긴 해도 엄연히 대일본제국 2등 '신민'이라 그런대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중국인 노동자는 전연 그러하지를 못해 폭력에 무자비하게 노출되었다.
이유는 그들은 대일본제국 신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예였다.
이 점을 결코 망각할 수는 없다. 제국주의, 제국, 그리고 국민....
근대 국민국가의 억압성과 차별, 그리고 그 무자비한 폭력의 현장이 저들 메이지시대 산업혁명 유산군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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