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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내가 논문을 구상하는 방식, 월경月經의 경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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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신동훈 교수께서 연구자 글쓰기에 관한 글을 탈초하셨기에

내 방식을 소개하는 것도 썩 무의미하지는 않을 듯해서 그걸 한 번 정리하고자 한다.

지금은 논문 업계에서 내가 실상 은퇴한 상태지만, 한때는 참 많이도 싸질렀으니,

그것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나왔는지를 한 번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한다. 

다만, 나는 내 방식이 옳다 주장할 생각은 없다.

나는 이랬다는 정도로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그 사례로 여성들이 일정 시점에 겪는 일, 곧 월경月經 달거리와 관련한 일화로 들고자 한다. 

내가 이 분야 관련 논문 혹은 그 엇비슷한 것으로 너댓 편을 썼다고 기억하는데, 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나름 인식하게 된 일이 있다.

이 월경과 관련한 일화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고대사 일화가 두 가지 정도가 있으니 하나가 삼국사기 백제 도미 열전이요, 다른 하나가 삼국유사 원효 이야기다. 

전자야 백제 개로왕(개루왕인가?) 시대에 도미라는 사람이 있고 그 부인이 열라 이뻐 백제왕이 그를 겁탈하려 했지만,

그 부인이 저는 오늘이 마침 달거리 날이라 몸이 더럽사오니, 담번에 오겠다 해서 위기를 벗어나 눈알이 뽑힌 남편과 더불어 고구려로 도망쳤다는 이야기요

후자는 친구 의상이가 강릉인가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말을 듣고선 내가 가만 있을 수 없다 해서 나도 가야지 하면서 강릉으로 가다가

목이 말라 마침 월경 속곳을 빠는 흰온 입은 여성이 있어 물 한 바가지 주소 했는데

그 월경 핏물 바가지 물을 주기에 더럽다 해서 버렸다 하는 이야기거니와

알고 보니 그가 바로 관음보살이었다 하는 이야기가 되겠다. 

나는 실상 저들을 통해 월경을 만난 것이 아니라 삼국사절요를 통해 심각하게 만났다.

어느날 어느때 세종대왕 기념사업회에서 완간한 두 권짜리 삼국사절요를 읽어내려가는데, 이 판본은 번역본과 원본 영인을 같은 페이지인가에 해 놓았다고 기억하는데,

백제 도미열전을 마주했거니와 

그에서 보니 삼국사기 도미열전이 녹아들었으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月經을 月事라 표현하고 있었다.

결국 같은 말인데, 이 점이 무엇보다 수상했다.

왜 여기선 이 말을 썼을까?

체크했다. 

다음으로 월경에 대한 관념이었다.

월경이라 혼신오예渾身汚穢라 했다. 월경이라 내 몸이 지금 더럽다! 라고 했다.

아 이를 보고선 월경이 저리 인식됐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다시 체크.

그러고선 내 블로그에다가 월경이라는 키워드를 적출하고선, 월사, 그리고 달거리라는 유사 키워드를 같이 넣어 갈무리했으니,

그 메모에는 저와 관련해 이후 만나는 사료들을 모조리 적출하고서 배열했다. 

이 메모는 결국 고구마 줄기가 되었으니, 이후 관련 자료들을 읽다가 월경과 관련한 글들을 만나면 모조리 저 항목에다가 쑤셔 박았다.

저 삼국유사 원효 이야기도 당연히 들어갔다.

도미 열전과 원효 이야기를 이어주는 키워드는 혼신오예였다.

월경은 결국 더러운 일로 치부되었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다른 사례들을 보태면 짧은 논문 하나는 너끈했지만, 그에서 만족할 수는 없어 일단 묵혔다.

그러다가 일본서기를 읽는데, 저 도미열전과 아주 똑같은 대목을 만나고서는 무릎을 쳤다.

거기도 혼신오예 관념이 투영되고 있었고, 저 도미 부인이 한 일과 똑같은 방식이 관철되고 있었다.

한데 이 일본서기 월경 이야기에는 다른 일화가 오버랩하고 있었다.

김유신 누이 동생들, 곧 보희 문희 이야기가 섞여있었다.

다시 체크.

보희 문희 이야기를 보탤 또 다른 근거 하나를 보충한 셈이다.

이래서 실은 글쓰기 소재는 두 갈래로 뻗어가기 시작했다.

하나는 월경 그 자체, 다른 하나는 보희 문희. 

그러다가 어느날 한서 열전인가를 읽는데, 저 월경 이야기가 또 만났다.

어느 황제가 밤중에 어느 여인을 찾았는데, 그 여자가 마침 월경이라, 대타를 구해 다른 여자를 들였으니, 그렇게 해서 하룻밤 장난으로 아들이 태어났으니 그가 어느 제후왕이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오잉? 다시 체크. 이 한서 이야기는 두 갈래 모두를 만족케 하는 사례였다.

혼신오예랑 보희 문희 말이다.

이미 논문 두 편은 너끈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마왕퇴 한묘漢墓 관련 보고서류 단행본을 읽는데, 젠장!

거기에서 다름 아닌 월경 핏물을 약물로 쓰는 것 아닌가?

그게 화상 치료에 좋다 해서 약물로 쓰는 게 아닌가?

그 백서에는 의서가 다수 포함됐거니와, 볼짝없다.

마왕퇴 백서에서 그리 말했으면 이후 의서에도 다 그리 나올 것이라 해서 이때부터는 검색에 들어갔다.

뒤지나 아니나 다를까 손사막을 필두로 동의보감에 이르기까지 월경 핏물을 모조리 약물로 응용하고 있었다.

다시 체크. 

이를 통해 나는 월경이 더러움의 대명사로 인식되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그에서 바로 약물로 전환하는 길을 열었으며,

바로 이 약물이 바로 저 원효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음을 알았다.

왜 관음보살은 월경 핏물을 원효한테 마시라 했을까?

더러운 네 육신을 정화하고 오라는 뜻이었다. 

마침내 나로서는 저 원효 이야기 비밀을 풀 단서를 의서를 통해 푼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나는 매양 논문 읽지 마라고 주문한다.

왜 내가 남의 논문이나 읽고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나는 철저히 원전으로 승부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철저히 메모하라고 한다.

그 메모는 언제건 내가 어디서건 적출 가능한 키워드를 장착해서 갈무리해두라고 한다.

저 기간 내가 월경만 찾고 있었겠는가?

다른 항목들도 저런 식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이리 하다 보면 이른바 원전류 책, 혹은 발굴보고서 같은 것들을 하나 소화할 때마다 논문 거리 수십 편이 쏟아진다.

나는 논문 쓸 거리가 없다는 말 안 믿는다. 

웃기는 소리 작작들 하세요.

원전 하나 소화할 때마다 내가 쓰고 싶은 소재 수십 개, 수백 개를 발굴한다. 

남의 논문 읽지 마라.

원전과 대면하라.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관찰하고 생각하고 계속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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