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서명에서 밝힌 바 ‘고금주’란 공자 이후 모든 주석서를 총망라한 것으로서, 이를 통해 저자가 이 책에 쏟은 정열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2집 제7∼16권에 수록되어 있다.
한나라 때의 훈고학적訓詁學的 주해인 고주와 송나라 때의 성리학적 주해인 신주를 모두 소화해 자신의 새로운 견해를 밝혀놓고 있는데, 저자는 고금주 외에도 175장의 새로운 지견知見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논어』 521장 가운데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엄청난 분량으로 이것을 함께 묶어 원의총괄原義總括이라 하여 이 책의 첫머리에 싣고 있다.
한민족대백과사전아 표제항목 논어고금주를 설정하고선 그에 부친 거창한 총설이다.
비단 이 사전만 아니라, 내가 역사를 배울 적에도 그런 줄로 알았다.
진짜로 다산 경학 집성 중 하나라는 이 책이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한데 그것을 집어들자마자 인내력을 시험하는 나와 씨름해야 했다.
첫째, 저와 같은 해설이 모조리 거짓말이라는 발견에서 오는 고통이 따랐으며
둘째, 도대체 다산 경학의 새로운 면모는 어디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지 인내력이 필요했다.
내친 김에 저 사전 항목 나머지 기술도 보자.
그 내용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仁을 인륜적 실존으로 간주하고 나아가 인류의 성덕成德으로 보아 실천윤리의 성과로 파악하였다.
이는 주희朱熹의 심성론적 인설仁說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둘째, 주희의 충서忠恕·이덕설二德說을 반대하고 중심행서中心行恕의 일덕설을 주장하였다.
또한 서를 인의 실천방법으로 보아 실천윤리로서의 인서론적仁恕論的인 측면을 밝히고 있다.
셋째, 주희의 심덕설心德說을 반대하고 행동의 성과에 의해 나타나는 결과론적 덕론德論을 제시하였다.
결국 저자는 인·서·덕 삼자로서 실천윤리적 유교의 본질을 천명하였다.
부록으로 「논어대책論語對策」과 「춘추성언수春秋聖言蒐」가 수록되어 있는데, 전자는 1791년(정조 15)의 저술로서 정조의 내각월과內閣月課 때 바친 것이고,
후자는 『춘추』와 『국어國語』 등 『논어』 이외의 다른 책에서 신빙할 만한 공자의 말들을 채록한 것이다.
이 두 편의 저술도 저자의 『논어』 연구를 위한 중요한 문헌이라 할 수 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3044
간평한다.
저런 해설을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또 내 대가리가 티미해서 그렇겠지만
나는 저 논어고금주에서 주희와 다른 대목을 단 한 군데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논어고금주는 철저히 주희를 찬술撰述 조술祖述했을 뿐이다.
단 한 군데서도 새로운 면모는 없으며, 무엇보다 주희를 백퍼 충실히 계승했을 뿐이다.
주희 만세 만만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조선 경학은 다산 단계에서 와서 이미 망조에 접어들었다.
왜?
중국 일본만 해도 동시대 그에 반발하고 그것을 공격하면서 신설이 나오는 판국에, 오직 조선만 그것을 붙잡고 늘어진 반동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주희를 반박할 줄 몰랐다.
가끔 혁신이라 할 만한 사람이 없지는 않았으나 찻잔 속 태풍에 지나지 않았다.
대들다 말았다.
복싱으로 치면 잽 한 번 날리고 말았다.
조선이 왜 망했는가?
남들은 혁신을 외치며 혁신을 향해 달려가는데, 오직 과거로만 달려간 까닭이다.
주희한테서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그 무엇이 있겠는가?
이미 죽은지 오백년은 넘은 그 뼈다귀에서 무슨 새로움이 있겠는가?
내가 이내 논어고금주를 덮어버린 이유이기도 하다.
단언커니와 논어고금주 단 한 군데서도 주희와 다른 점이 없으며, 단 한 군데서도 그를 부정한 대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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