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 유목 민족은 애초에 성씨가 없었던 듯하다.
중국과 접촉하면서 성씨를 자꾸 물으니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우리는 성씨가 필요하다 간주하나, 없는 사회에서는 그 필요성을 전연 느끼지 못한다.
하긴 일본 천황가 성씨 아는 사람 있음 나와 보라 그래?
결국 성씨를 사용하는 외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물으니, 그네가 사용하는 성씨 사용 내력과 그 패턴을 익힌 다음 스스로 규정한 것이 성씨라
현재 추적 가능한 흔적으로 가장 뚜렷하게는 지금의 내몽골 북쪽 혹은 흑룡강 쪽에서 흥기한 유목민 선비鮮卑 또한 그러해서
훗날 이들이 추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도 있었을 텐데
야금야금 남쪽으로 치고 내려오다 급기야 중원 대륙 북쪽을 완전히 먹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는데
그렇다고 이런 권력이 오래가겠는가?
저네가 건국한 북위北魏는 그런 대로 오래가며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니,
그런 북위 또한 기어이 갈갈이 찢어져 훗날 그 일파 중 하나가 수나라와 당나라 건국 주축이 된다.
암튼 오호십육국시대 난장판이 벌어진 중원 대륙에서 저 일파 중 주축이라 할 만한 선비는
탁발씨拓跋氏를 칭하게 되니, 이들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북위 황실이다.
이 탁발씨는 효문제 시대에 이른바 한화漢化 정책에 따라 중국식 성을 칭하게 되니, 원씨元氏로 일괄로 바꾸게 된다.
이 원씨를 고대 일본에서는 겐지라 읽는데, 그 유명한 겐지모노가타리가 있다.
이 일본 겐지씨는 직접 연원이 저 북위 탁발씨에 있다.
믿기지 않는다고?
공부를 안 하니 모를 뿐이다.
선비는 여러 갈래가 있는데, 가뜩이나 이런 판국에 훗날 북위 황실까지 찢어지니,
그에서 떨어져나간 일파가 각기 다른 성씨를 지칭하게 되니
개중 하나가 모용씨慕容氏다.
이들은 훗날 전연前燕·서연西燕·후연後燕·남연南燕이라는 왕조를 건립하는 주축이 되거니와,
티벳 고원의 절대 패자 토욕혼吐谷渾 또한 모용씨 일파가 건국 주축이다.
같은 선비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탁발씨는 그 발음이 엄청 쎄다.
아마 중국어 발음도 그럴 텐데 그래서 탁발씨는 선비 중에서도, 아니 북방 유목민족 전체를 통털어 가장 센 듯한 느낌을 준다.
흉노? 이들도 뭔가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탁빨! 이 얼마나 입에 착착 감기는 공포감인가?
그에 견주어 모용씨는 모용 모용해서 어째 가는 여성 느낌이 물씬하다.
그래서 성씨는 잘 지어야 한다.
내가 속한 한국 김씨를 영문으로는 Kim이라 하는데, 김씨에 견주어 킴씨가 더 세게 들린다.
기왕 있어 보이려면 파열음 혹은
경음 혹은 격음 계통을 쓰야 한다.
탁발은 탁! 에서 우선 그 파열음이 주는 이미지가 강렬하고 그 뒤따르는 말 또한 경음이 되니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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