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SSAYS & MISCELLANIES

반대하는 논지를 편 사람한테 논문 심사를 맡겨서는 안 된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 20.
반응형

 

모든 선생이라는 작자들(이 경우는 작자들이라는 표현을 쓴다. 뒤에 맥락이 드러날 것이다)이 제자들한테 하는 항용 하는 말이 

"나를 밟고 지나가라."

호기롭게 말한다. 

왜? 선생이란 자고로 그러해야 한다는 말을 어디에서 듣기는 했고, 그게 멋있는 선생이라 생각하며 그 모습이 개똥폼 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선 선생 깠다간 학계에서 매장당한다. 

저 말 곧대로 믿지 마라. 

물론 저걸 실천한 선생(이때는 선생이다)이 아주 가끔, 가뭄에 콩나듯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도 세심한 절차가 필요한데, 보통 이럴 때, 그 논문을 쓰기 전에 선생을 찾아뵙고

실은 제가 이런저런 논지로 선생님 주장과 반대하는 글을 쓸까 합니다...

제자가 그런 논문을 쓴다는데 속은 쓰리나 그래 잘했다 하지 어카겠는가?

선생을 깠다는 논문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지 진짜로 저 선생 밟아야겠다고 써서 살아남는 제자가 없다. 

이 심리는 저 위대한 사회역사학자 막스 베버가 이미 갈파했다. 

각설하고 저건 선생과 제자 이야기지만 동학일 경우?

이건 쌈박질 나고, 자주 그런 일이 있는데 아예 인간관계까지 척 지는 일이 적지 않다. 

이 빤한 세상, 이 좁디좁은 학계라는 세상에서 논문 평가를 할 적에 앞서 말했듯이

보통은 그 분야 전문가라는 사람을 해당 논문 심사자로 위촉하게 되는데,

예컨대 신라고고학 논문이라면 신라고고학 전공자라는 사람을 뽑아서 맡기는 일이 항례라
어쩌겠는가? 

그런 불가피성은 그런 대로 인정은 하겠다만 문제는 그 심자자와 피심자자 사이 견해 차이다.

어느 정도 차이라면 넘어가겠지만 정면으로 반할 때 거의가 날아드는 심사평가서는 게재불가다. 

나를 정면으로 깐 논문을 내가 게재가를 준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물론 이것도 운명이 얄굳어서 그 관계가 곧이어 뒤바뀌기도 하니,

그래 이 좁은 인력풀에서 어쩌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학회는 심사자 선정에서 극한 학설 대립을 이루는 사람은 심사자 위촉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아, 물론 그 등재지 평가 항목에 게재율이라는 게 있어 떨구는 빌미를 그럴 듯하게 마련하고자 할 때는 이걸 역이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니 또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끼리끼리 이른바 학파끼리 농가먹는 현상이 생긴다. 

그놈이 그놈이라, 니는 내편, 니는 넘의 편이라는 식으로 해서 학계가 좍좍 갈라졌으며,

이것이 앞서 신동훈 교수께서 말한 그 학회 난립으로 이어진다. 

학회?

왜 난립하는가? 

결국 밀려난 놈들이 만들기 마련이다. 

이 문제를 어찌해야 하는지 솔까 나는 모르겠다.

나야 방관자이기도 했지만, 한때는 특정한 연구자 그룹이라는 소문까지 돌았으니 말이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인데 내가 누구 그룹에 속할 사람으로 보이는가? 

난 적어도 학술 연구에 관한 한 애미 애비도 몰라본다. 

 

*** previous article *** 

 

"이 논문은 반드시 인용하라"는 논문 심사서, 알고 보니?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