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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논문은 한국어를 버리고 외국에 보내야 한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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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신이 강림하시었는지 나는 국내 이른바 학술계 풍토 그 문제 중 한두 가지를 골라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거니와,

그렇다 해서 저에 조금이라도 감발해 그래 좀 고쳐 보자 하고 나설 사람 적어도 그 학술계는 한 명도 없을 것임은 잘 안다.

그럼에도 내가 나서는 이유는 이런 사람도 있었음을 후세에 남기기 위함이라고 해 둔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그리 사명감이 투철하겠는가마는, 이런 미친 놈이 한 놈이라도 있었다는 흔적 정도는 남겨놔야 할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각설하고 국내 학술계 풍토에서는 계속 지적하듯이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서는 공정한 논문 심사를 기대하기는 난망하니, 그렇다면 이를 개선할 여지는 없는가? 

그러기 위한 한 방편으로 나는 한국어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한국어를 버리는가? 

어느 학문 분야건 그 인력 풀은 국내로는 너무 좁아서 다 이해관계 당사자에 해당한다.

관련 연구자라 해 봐야 한 줌도 되지 않는 판국에 누가 쓴 논문이며 하는 것을 다 알 수 있는 이 좁은 마당에서 무슨 객관성 있는 심사를 담보한단 말인가?

이런저런 연망으로 얽혔으니 이 모양 이 꼴 아니겠는가?

백날 국내서 떠들어봐야 소용도 없고, 한국어로 떠들어봐야 수준도 올라가지 않고, 맨 그 소리에 그 소리만 앵무새마냥 되뇌일 뿐이라, 이에서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그런 심사 공정성을 나름대로 기하고, 나아가 논문 수준 또한 전반으로 향상하려면 한국어를 버릴 수밖에 없다.

내가 모국어가 싫어서 이런 말을 하겠는가?

논문 게재 심사는 이해관계가 있기 힘든 외부에다 맡겨야 한다.

어디로?

외국으로 보내야 한다. 

누가 썼는지 알 수도 없고, 오로지 논문 그 자체로서만 평가 받을 수 있는 외국으로 보내야 한다.

그네들한테 보내서 이 논문이 말이 되는지, 논리적 정합성은 있는지, 그것이 세계 문화사 맥락에서 진짜로 논문이 되는지 등등을 점검받아야 한다.

물론 그렇다 해서 객관성이 백퍼 담보된다 보기는 힘들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더 객관성을 높이게 되는 일인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점에서 시도해야 한다고 본다. 

자연과학 쪽에서는 이미 이 시스템을 도입한 데가 더러 있다고 들었다. 

외국에 논문 심사를 맡기려면 한국어를 버릴 수밖에 없다.

외국 사람한테 심사를 맡기면서 한국어 논문을 보내야겠는가?

왜 한국어를 버려야 하는가?

한국어로 작성된 논문은 한국어 독자를 상정할 수밖에 없다.

지극히 그 시야가 한정될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으며, 그에 따라 언제나 그런 논문은 우물안 개구리가 될 뿐이다.

시야를 넓혀야지 않겠는가?

세계적 안목?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이거 한 번 시도해 봐라.

한국어 독자가 아니라 세계시민을 향해 발신한다고 생각해 봐라.

논문 질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내가 독자는 고사하고 위선은 그 심사자를 설득키 위해서는 지금까지 쓰던 논문 방식은 버려야 할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지 않겠는가? 

흔히 하는 말이 국어학 국사학 논문을 어찌 외국한테 맡기느냐고? 

왜 못 맡겨?

그네들이 등신이 아닐진댄 얼마든 그들한테도 설득력 있는 글을 쓰야 할 것 아닌가? 

언제까지 이 좁아터진 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몇 사람 되지도 않는 독자를 상정하고서 그들만이 전유하는 논문을 쓰야하겠는가? 

내가 간여하는 학문 중에 가장 시급한 데가 실은 고고학이다.

이 고고학, 세계 시장에 나가서 심판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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