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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방선주 박사를 각인한 두 가지 사건, 안두희와 독도!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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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방선주 박사. 이 사진 내가 찍은 것 아닌가 한다.

 
오늘 타계했다는 소식을 미국에서 전한 방선주 박사와 관련한 일화 두어 가지 정리한다.

연결고리 중 하나는 정병준이고, 다른 하나는 한림대다. 

한국역사학계에 정병준이라는 이름으로 꽤 정평한 이로는 두 동명이인이 있다. 

한 명은 동국대 사학과에 재직하다 은퇴한 중국 고대사학도 정병준이며, 다른 한 명은 이제 퇴물 신세가 되어가는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으로 지금은 이화여대에 재직 중인 한국현대사학도 정병준이다. 

당연히 방선주라는 이름과 연결하는 이는 후자 정병준이다.

근자 김규식인가 인물 연구 묵직한 단행본 세 권짜리를 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내가 현장을 떠나고선 연락이 없다. 

나랑 교유할 적에는 이화여대 재직 중이었으니, 또 그때 지금보다 더 날릴 때라, 교유가 무척이나 많았다. 

이 정병준은 한국현대사, 특히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관련 연구로는 독보하는 업적을 냈다.

그가 주로 이용한 자료가 미국 쪽, 특히 NARA 소장 자료였다. 

아마 이 정병준이 국편에도 근무하지 않았나 하는데 암튼, 그가 미국과 연결된 주된 통로가 방선주 박사였다. 방 박사는 무척이나 정병준을 아꼈다. 

당연히 처음 NARA에 갔을 때야 경험이 없으니, 이런 그를 그 방대한 NARA 세계로 인도한 이가 방 박사였다. 

이것도 경험이 쌓이니, 때론 방박사도 손대지 못한 자료들을 발굴하곤 했으니, 두 사람은 일종의 사제 관계였다 할 수 있으니, 이 과정에서 한국현대사를 흔든 중대 자료를 같이 발굴해 공개하기도 했다. 

이런 자리에 방 박사가 워낙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 주로 정병준 몫이었으니, 그 대표로 내가 기억하는 것이 두 가지 정도라,

하나는 백범 김구 암살과 관련한 안두희 관련 자료 발굴이었고, 다른 하나는 독도 영유권과 관련한 연합군 자료, 특히 영국쪽 자료였다. 

백범 자료를 내 기억에 정병준은 국편을 통해 공개했으니, 그렇게 두 사람이 찾은 자료는 국편이 정식 기자회견을 갖고 발표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영국 쪽 관련 자료는 내가 독점으로 제공받았으니, 간단히 말해 영국이 독도를 한국영토로 삼는다는 내용이었고, 그 자료 역시 출처는 NARA였다. 

이 귀중한 자료를 발굴하고선, 그것을 공개하기 직전 정병준한테서 연락이 와서 만났고, 그것을 연합뉴스가 독점 공개했으니, 아마 그 시리즈가 연합뉴스 DB에는 남았을 것이다. 

이것이 정병준을 고리로 삼은 방선주 박사였고, 다른 하나는 한림대였다. 

방선주 박사가 발굴한 자료는 주로 국사편찬위원회를 통해 공간되었으니, 이는 아마 정확한 직책이 무엇인지 내가 자신이 없지만, 방 박사는 국편 해외사료 조사위원? 뭐 이런 종류로 정식 국편에 고용되어 자료 발굴 작업을 했다. 

그와 더불어 방 박사는 춘천 한림대와도 연이 깊어, 그쪽을 통해 무수한 발굴자료를 공간하곤 했다.

그렇게 해서 한림대 무슨 연구소가 엮어낸 해방공간 및 한국전쟁 관련 자료는 산더미였다. 

그 산더미 관련 자료 중에 한국전쟁기 삐라가 무더기로 나왔다. 

당시 나는 사회부 근무시절이었으니, 이 사회부 시절까지는 앞서 잠깐 말했듯이 나는 고대사나 고고학도랑은 거리가 아주 먼 근현대사 덕후였다. 

하루를 휴가를 냈는지, 아니면 정식 출장이었는지 기억엔 없지만, 날 잡아 저 한림대로 차를 몰고 내려가 그쪽 연구소 담장 실장(성함을 잊어버렸지만 이 양반도 꽤 이름이 있었다)을 면담하고선 방 박사 수집 자료집을 트렁크에 가득 싣고 온 기억이 있다. 

그 자료집들이 지금도 어디 서재에는 박혀 있을 것이다. 

기타 직접은 아니었다 해도, 적지 않이 나 역시 방 박사를 사숙했다. 

선생이 한국근현대사에 남긴 족적은 그야말로 거인이었고, 그의 음덕을 입지 아니한 대한민국 국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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