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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구전으로만 초인으로만 남은 방선주, 아무도 열전을 쓰지 않았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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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때 한국근현대사에 투신하고자 할 적에 곳곳에서 저 방선주라는 그림자를 봤다. 그랬다. 위안부 관련 공부에서도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등장했고, 한국전쟁 관련 사료는 그의 독무대였다. 

내가 교유한 저쪽 투신자들한테서는 더 유명세가 더했다. 이르기를 이구동성으로 사료 발굴의 일인자라 했고, 또 이르기를 동대문운동장 16배인가? 라는 미국 NARA에는 하도 들락거려 그쪽 종사자들도 자료를 찾을 적에는 방선주한테 묻는다 했고, 아예 그쪽 한 구석에 눌러앉아 프린트기를 따로 설치해 두고선 자료를 복사한다 했다. 

실제로 그의 이름으로 발굴자료라 해서 공간된 사료집이 한 트럭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를 비롯한 각 기관에서 발간한 한국근현대사 관련 사료집, 주로 영인본이었고, 그래서 더욱 가치가 빛날 수밖에 없는 자료들이 산더미였다. 

이 분야에서 그는 전설이었고, 초인이었다. 한 사람이 그런 고된 일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한데 더 놀라운 점이 있었다. 그의 행적과 관련해서는 제대로 정리된 것이 없다는 사실이었고, 아무도 정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흔한 잡록雜錄 어디에서도 그의 행적이 제대로 정리된 것이 없었다. 

그는 1933년 7월 생이라, 이 시대를 동시에 소비한 이른바 한국역사학 거목과는 활동연대가 겹쳤다. 

국민대를 기반으로 활동한 조동걸이 1932년 생이요, 고려대 기반 강만길이 방선주와 같은 1933년 생이며, 농업사 불멸의 업적을 낸 연세대 기반 김용섭이 1930년생이며, 숙명여대 기반 이만열이 저들보다는 약간 떨어진 1938년생이라, 이들이 한국근현대사 기반을 닦게 된다. 

한데 조금 놀라운 점은 저들과 같은 세대를 호흡했지만, 그렇다고 저들과 뚜렷하게, 그리고 아주 밀접하게 교유한다고는 보기 힘들었다. 물론 같은 세대라 저 세대끼리 통하는 그 무엇은 있었던 듯하다. 

생전 강만길 선생한테 방선주 선생을 물었고, 방선주 선생한테서도 강만길 선생을 이야기하는 모습도 내가 목도했으니, 서로 존경하는 듯하나, 그렇다고 아주 밀접한 관계라는 그런 느낌은 나는 별로 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들은 같은 한국근현대사를 호흡했지만 자세히 들어가면 활동 분야가 달랐다.

저들이 이른바 논문으로 승부를 건 사람들인데 견주어, 방선주 박사는 오로지 사료 발굴에 투신했다. 

방선주 박사는 내가 짧게 만나 인터뷰한 두어 번 기억에 의하면, 그 깡마른 체구에 청력이 아주 좋지 아니해서 보청기를 이미 끼고 살았고, 그렇기에 그가 말하는 맥락을 여간해서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이럴 때 통역이 필요한데, 그의 진정한 통역자는 내가 보건대 앞서에서도 언급한 이화여대 정병준 정도다. 

내가 알기로 정병준이 방선주를 알게 되고, 이를 통해 불굴하는 한국현대사 연구자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보거니와, 이는그의 국편 재직 시절 잦은 접촉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방선주가 남긴 유산 중에 사람으로는 나는 정병준을 첫손에 꼽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내가 방 박사를 인터뷰해서 그간 전설로만 떠돌던 그의 행적을 제대로 문서화하고 싶었고, 부족하나마나 다행히 기회가 닿아 그렇게 했다고 자부하니, 물론 그런 짧은 인터뷰가 뭔가 새로운 것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해도 그 인터뷰를 통해 비로소 방선주는 문서화가 이뤄졌다고 본다. 

저런 사람은 본인이 본인 기록을 남기지 않기에 누군가는 남겨주어야 한다. 

일전에 말했듯이 저 인터뷰가 나아가기 전까지, 그의 행적을 문서화한 그 어떤 기록도 나는 보지 못했다.

참고할 만한 문서라고는 오로지 구전으로만 떠도는 이야기 뿐이었다.

곧 한국 근현대사 사료 발굴의 제일인자 혹은 전설 혹은 초인이라는 구전 그것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의 열전이 묵직한 단행본으로 나와야 한다고 본다.

그 열전을 쓸 사람은 내가 보건대 정병준밖에 없다.

김규식 열전을 냈으나 김규식은 이미 관뚜껑 들어간지 오래인 고대사다.

혹 이 글을 보거덜랑 정병준은 방선주 열전을 준비하라 하고 싶다.

역사가라면 당대를 기록해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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