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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장미산성 가는 길] (2) 아래로 남한강은 유유히 흐르고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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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물탱크가 확인된 계곡 옴팡 지점. 저 사찰이 봉학사다.




보통 발굴 현장 공개는 일정한 법칙이 있어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그 현장에서 개최하거니와 그 한 켠에다가 빌굴 유물 잔뜩 꺼내놓고선 보여주기 행정을 하거니와 

조사단을 대표해 보통은 그 기관 대표급 인사가 인사말을 하고 잘 왔다! 우리 이런 큰 일 했다 요란하게 선전하거니와 

그런 현장에는 거의 예외없이 의자를 안치하고선 그 의자에다가는 자문위원이니 하는 이름으로 학계 인사들, 주로 겨수들이라, 그 친구들 불러다가 자문을 얻게 되거니와, 자문? 웃기는 소리하네. 

판 놈이 그 유적 유물 제일 잘 알지, 하루 잠깐 출장비 20만원 30만원 주면 좋아라 해서 쫄래쫄래 와서는 각종 개똥폼 내며, 짐짓 너흰 이런 건 몰랐지 하면서 각종 지적질을 해대는 그런 자문위가 알면 무얼 얼마 알겠는가?


계전오엽이추성이라고 이미 가을은 장미산성 오동에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혹자는 자문위는 자문을 주는 자리가 아니라 자문을 받는 자리라는 냉소도 없지는 않다. 

그런 자문위는 요식행위라서, 할 수 없이 하는 것이니, 진짜 몰라서 조사단이 묻는다 착각하지 마라! 

그러고서 매양 하는 말이 가관이라, 짼 현장에서 여길 더 째봐라! 저긴 트렌치 넣어 바닥까지 파 봐라! 이 토기는 언제 때 어디에서 만든 것이니 이건 알아두라! 이런 개소리로 넘쳐나거니와, 내가 지난 30년을 살핀 결과 이런 헛된 자문이 문화유산 현장을 다 망쳤다. 

어제 현장은 그런 자리가 아니라서 몹시도 내 속이 편했으니, 쥐뿔도 아는 게 없으면서 떠들어대는 그런 꼴을 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속이 후련한지 몰랐다. 


이런 식으로 족보 불명 산성을 만들어놨다.



어제는 대국민 공개현장이라, 자문위와는 분명히 달랐고, 그런 자리는 쏙딱하니 이미 한 듯도 하고, 그것이 아니라 해도 며칠 전에는 기자님들 모셔다가 현장 공개를 이미 한 번 했으니,

종래에는 보통 기자들한테 먼저 공개하고서 나중에 겨수와(나는 교수 나부랭이라 보통은 쓴다) 관계 전문가를 부르니, 이것도 마음에 안 든다고 어찌 기자들한테 현장을 먼저 보여주냐 지랄지랄하는 놈을 봤다. 

이런 샹놈들을 봤다. 기자가 전문가라 해서 먼저 보겠는가? 국민을 대표해서 국민의 대표자격으로 보는 것이라, 그럼 국민한테 보이지 누구한테 먼저 공개한단 말인가? 


장미산성에서 조망하는 한강과 충주 분지



내친 김에 이 말을 또 해 놓아야 헛소리 하는 놈들이 그래도 앞으로는 눈치라고 볼 것이라 해서 췌언 같은 이야기를 새삼 해두니, 앞으로 저런 자리에 자문위원이니 하는 각종 그럴 듯한 이름으로 불려가는 자들을 명심 又 명심했으면 싶다. 

앞에서 말했듯이 현장 공개는 두시 반 시작이라, 나는 이런 자리에는 보통 아주 일찍 가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는 말을 여러 번 했으니, 어제도 그러했다. 

충주 장미산성은 말 그대로 산에다가 쌓은 산성이라, 또 보도자료에 중원문화유산연구소가 계속 강조했듯이 물길 요충이라, 앞으로는 장대한 남한강이 흘러간다.


오른쪽이 충주 시내다. 전면에 박달재가 있다고.



일찍 도착해서 조사단 인부 아저씨들 말고는 없는 그 산성 한쪽 전망 특히 좋은 곳까지 부러 유유히 살피며 성벽 따라 올랐다.

성벽은 이미 개박살이 난 상태라 이걸 차곡차곡 벽돌 쌓듯이 복원 정비라 해 놨는데 솔까 이런 정신 없는 문화재 현장은 기가 차고 똥이 차서 다 뜯어버리고 싶다.

본래 성벽을 보고 싶어 올랐지만, 또 나중에 합류한 김영관 선생 이야기를 들으니 저쪽 뒤편 정상 부근 쪽으론 그런 자리가 있다 하나 그걸 둘러 볼 만한 여유는 없었고 무엇보다 날이 아직도 더웠다.

대신 그 성벽이 돌아가는 모서리 지점에 서니 비로소 그 산 아래 전면으로 유유히 한강이 오른쪽 충주 시내에서 왼쪽으로 흘러내려가는 모습을 관조했거니와

나중에 합류한 김영관 교수 설명을 듣건대 그 한강 건너편 전면 우람한 산맥 한가운데가 그 유명한 박달재라 하고, 또 한 쪽 골짜기를 가리키고선 저기난 "조태섭 고향"이라 한다.


절에서 심쿤 호박. 하마터면 쌔빌 뻔 했다.



연세대 사학과에서 고고학 교수질하는 그 조태섭 말이다. 

캬! 조태섭 형이나 나나 같은 소맥산맥 기슭 촌놈인가 보다 했더랬다. 

이런 물길 요충 사방을 조망하는 자리에 왜 산성을 만드는가? 간단하다. 길목이기 때문이며 이 길목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안전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요 길목을 지키면서 오가는 배들한테서 삥을 뜯기도 한다. 

백제의 경우 예서 뗏목 띄우면 불과 이틀이 걸리는 한강 하류에 풍납토성 도성이 있으니, 중요 물자는 그쪽으로 향했을 것이며, 반대로 강을 역류하는 한강 물길은 하류에서 이쪽까지는 조선시대 기준이기는 하지만 대략 일주일이 걸렸다. 


발굴 현장 장비


참고로 조선시대 자료를 보면 한강 물길은 충주가 막바지였다. 

걸핏하면 나 벼슬 안해 떼쓰면서 걸핏하면 서울에서 안동으로 토끼는 신이한 보여주기 쇼 행각을 벌인 토이기 선생 이황의 경우도 배타고 올라와서 충주에 내려 말타고, 혹은 소타고 소백산맥을 넘었으니, 어디더라? 그짝에서는 주막인지 어디에서 여자 하나 건딜기도 한 모양이라 그 전설이 현지에 남기도 한다. 

저 물길 이야기 나온 김에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나는 시절에는 물길이 더 상류로 확장했을 것이다. 


발굴은 삽질이다.



그나저나 이러다 언제 장미산성은 본격 탐구하냐? 

암튼 이제 질러 장미산성을 오르기로 한다. 이름을 장미산성이라 했으니 이 산성이 자리한 산이 장미산일 것이지만, 이 이름이 본래하는지 아니면 근자에서 얻은 이름인지는 내가 자료를 훑어봐야겠다. 

그리 높은 산이 아니어서 눈대중 짐작으로 대략 해발 300고지 정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실제 측량자료는 다를 것으로 본다.

해발과 우리가 느끼는 높이는 실상 다르다. 


뒤집기!



중국 화북고원의 경우 평지라해서 바다에 가까운 저점이라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그 고원 자체가 해발 천오백미터에 달한다! 

장미산성은 아마 성곽고고학도들이 말하는 포곡식이라 해서 계곡을 감싸안은 형태일 것이어니와, 이는 내가 현장에 미리 도착해 사방을 둘러보고 내린 인상이니 다를 수도 있다. 

현장은 역시나 계곡을 막고, 그 계곡에서 물을 얻었으니, 산성은 물이 나지 않으면 들어설 수가 없다. 

한반도 산성은 참말로 묘해서 물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산 어딘가에는 반드시 수맥이 있기 마련이고, 그 수맥이 흘러나오는 구녕이 바로 샘이다. 

듣자니 이 장미산성 이번 목곽 물 탱크가 발견된 지점만 해도 아무리 가물어도 이 계곡은 물이 마르지 않는다 하거니와, 이런 사정이 삼국시대도 마찬가지였던 듯, 그 계곡에서는 천지사방 물이 질펀질펀하니 솟아 올랐다. 


대국민 설명회



그러니 이런 음지 습지야말로 수원을 확보하는 절체절명하는 지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이 계곡 물탱크 바로 위 기슭에는 봉학사는 개인 불교 사찰(암자에 가까웠다)이 있고, 이 사찰 덕택에 차 한 대 겨우 지나는 비록 아주 좁은 도로이기는 하지만, 절에 오르기까지 시멘트길 포장이 있다. 

조사단도 그런 까닭에 아마 국내 산성 발굴 현장 중 현장 접근 사정이 가장 좋은 몇 안 되는 곳이라 자랑한다.

편하다 이거지! 개고생 좀 해야 하는데 ㅋㅋㅋ 차로 편하게 오르내리니 말이다. 

한반도 산성 물탱크는 법칙이 있다 모름지기 물이 모이는 계곡 아래 지점에 만들고 그 바로 아래에는 가운데로 폭 들어간 모양으로 성벽을 쌓는다.


누르면 물을 한창 먹어 푹푹 들어간다. 스폰지 상태다.



이 지점은 배수가 관건이라 배수로를 반드시 성벽을 뚫어낸다.

장미산성의 경우 이 물탱크 바로 아래 지점 성벽은 조사하지 않은 듯 하다.

혹 조사하고 덮었을 수도 있다.

미조사라면 반드시 배수구가 출현할 것이다.

배수구가 없으면 성벽이 버텨내질 못한다.

 

[충주 장미산성으로 가는 길] (1) 눈덩이 불듯 늘어난 일정

https://historylibrary.net/entry/1-75

 

[충주 장미산성으로 가는 길] (1) 눈덩이 불듯 늘어난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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