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쪽 문화재 업계서 한동수라는 이름을 모를 수는 없다.
나 역시 하도 자주 들었으니 다만 이 양반 특징이 있어 고건축 전공자라 하면 모름지기 이곳저곳 문화재 현장에 각종 타이틀로 나타나 감내놔라 배내놔라 훈수질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그런 현장에서 나는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다.
문화재위원도 하기는 한 듯하고 혹 그 현직이 아닌가 하지만 무슨 이렇다할 타이틀 거머쥔 적이 없다.
각종 고건축 현안마다 이쪽 전공자들이 언론에 이름 내지 못해 환장할 때도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
다만 막연히는 그런 데 모습 드러내는 일을 경멸하고 문화재청 연구용역도 경멸한다는 그런 말들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자주 듣기는 했다.
실상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정도 일리는 있으리라 본다.
왜?
명색이 이쪽에서 삼십년 밥 먹고 살았다는 내가 그를 그런 자리서 대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실제 나는 그의 얼굴을 모르기 때문이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아니한가? 이름은 많이 들었으나 연예인급도 아니어서 얼굴이 알려지지도 않지만 어쩐지 유명한 사람 말이다. 나한테는 한동수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올해 퇴임했으깐 66세? 나보다 나이가 많기는 하나 얼마 차이는 안 난다.
저 연배에서는 비교적 드문 중국 유학파로 알거니와 그런 점에서 외려 중국 고건축학도로 분류되지 않을까도 싶다. [실은 내가 한동수라는 이름을 가장 자주 들은 통로가 같은 중국 유학파 고건축학도로 한국전통문화대학을 퇴임한 장헌덕을 통해서였다. 같은 짱꼴라 계통이라 그런지 자주 이 이름을 꺼냈다.]
그제 장미산성 공개 현장에 드러낸 인물 중에 언뜻 포스는 있는 듯한데 도무지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말수가 그리 많지도 않은 듯했고, 그렇다고 일반인 같지는 않아 세심하게 현장을 살피는 폼이 천상 이 분야 교수였다.
내가 모르는 이 분야 교수?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조금 지켜보니 김영관 교수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목격된다.
김 교수한테 다가가 귀속말로 물었다.
"저기 조금 험하게 생긴 사람이 누굽니까?"
"아 한동수 선생이세요."
"그래요? 현장에선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인데 퇴직하니 모습을 보이네요."
따로 인사는 하지 않았다. 그런갑다 하고 저 사람이 한동수구나 하고 말았다.
이젠 이 나이가 되면 누구랑 명함 주고받는 일도 귀찮고 뭐 얼굴 알아둔다 해서 이렇다 할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는 것도 아니니 그리 된다.
발굴조사단인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가 모인 사람들한테 이번 발굴성과를 비교적 상세히 소개했다.
인근에 군사 비행장이 있는지 가끔 그 비행기 소리에 마이크 음성이 잦아들기도 했거니와 주최측에서 말미에 굳이 한동수를 지목해 블라블라 한 말씀 주시라 하며 마이크를 넘기려 한다.
그 순간 나는 한동수가 거부했음 싶었다.
아뇨 할 말 없습니다. 잘 봤고 많이 배웠습니다
하고선 손사래를 쳤음 싶었다.
하지만 내 이런 막연한 기대와는 달리 내키지 않는 듯한 마이크를 잡고선 한동수는 몇 마디를 했다. 들어보니 의례적인 상찬이었고, 실물로 남은 한국고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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