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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7

[발굴조사보고서] 인각사 - 군위 인각사지 6, 7차 발굴조사 보고서- 제목 - 인각사 - - 軍威 麟角寺址 6·7차 발굴조사 보고서 발간 - 불교문화재연구소, 2020년 이 보고서는 2018년 3월 5일부터 동년 5월 9일(6차), 2018년 10월 23일부터 동년 10월 25일(7차)까지 실시한 군위 인각사지 유적 시·발굴조사결과를 정리한 보고서이다. 인각사는 고려시대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던 일연스님의 하안소로 지정되고, 일연스님 재세시에 九山禪門會를 개최하면서 叢林으로 성세를 누렸으나, 정유재란 과정에서 소실되었다. 이후 1721년 본격적인 중수를 거쳐 현재 국가 사적 제3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사구역은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삼국유사로 250(고로면 화북리 612)일원이며, 국사전지와 명부전지 해체 부지와 국사전지 이전부지에 해당한다. 이번 6차 발굴조사 지역의 면.. 2020. 5. 21.
[발굴조사보고서] 화천 계성사지I 《화천 계성사지I - 화천 하남면 추정 계성리 사지(계성리석등 주변) 내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 화천군·강원고고문화연구원, 2019년 발행 유적위치 :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계성리 595번지 조사면적 : 1,500㎡ 조사내용 : 일제강점기인 1943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55항 화천군 12 사지불상탑 조에 의하면 계성사에 대해 "계성서지는 계성리 마을 내에 있다. 와편이 산재하고 탑은 3기가 있는데 1기는 사리탑으로 도괴되었고, 1기는 기부 직경이 7척 5촌으로 6층의 방형인데 역시 도괴되었다. 형상을 알 수 없는 나머지 1기는 높이 약 9척 직경 3척이다. 6각의 등롱[계성리 석등]은 완전한다. 불상은 높이가 약 9척 5촌의 좌상으로 조각이 정교하나 머리가 없다."라는 기록이 전한다. 발굴조사 결.. 2019. 12. 30.
[발굴조사보고서] 영덕 유금사 유적 《영덕 유금사 삼층석탑 보수사업부지 내 영덕 유금사 유적》 삼한문화재연구원, 2019 영덕 유금사는 경상북도 영덕읍 병곡면 금곡리 838번지 일원에 소재한다. 영덕군에서 시행한 유금사 삼층석탑 보수사업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 금당, 원 석탑지(방형기단유구), 조선시대 석탑지가 조사되었다. 석탑지 주변에서 통일신라시대 불상이 출토되었으며, 제작시기는 8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盈德有金寺三層石塔補修事業敷地內盈德有金寺遺跡』 三韓文化財硏究員、2019 盈德有金寺は慶尙北道盈德邑柄谷面金谷里838番地一圓に 所在である。 盈德郡で施行した有金寺三層石塔補修事業敷地に對し發掘調査結果、統一新羅時代金堂、元石塔址(方形基壇遺構)、朝鮮時​​代石塔址が調査された。 石塔址周邊で統一新羅時代佛像が出土され、製作時期は8世紀頃と推定さ.. 2019. 10. 8.
[발굴조사보고서] 완주 경복사지 시·발굴조사 보고서 《한국의 사지 시·발굴조사 보고서 - 완주 경복사지完州慶福寺址》 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2019 유적은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1번지에 위치한 폐사지로 문화재청의 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유적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108호로 지정되어 있다. 발굴조사결과 사역은 고덕산 남쪽 능선 사면을 따라 조영되었는데 등고선 방향을 따라 석축을 축조하여 대지를 조성한 후 건물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조선시대까지 변화과정이 보이지만 훼손이 심해 분명하지 않다. 경복사는 전성시기가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동원東院명 기와가 중심사역 안에서 확인된 점으로 볼 때, 다원구조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조사결과 중심사역 공간이 확인되었고, 통일신라~조선시대의 유구 및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 중 경복사慶福寺.. 2019. 8. 28.
[발굴조사보고서]여주 신륵사I 驪州神勒寺I 《여주 신륵사I 驪州神勒寺I》 -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 조사당祖師堂 정비사업부지내整備事業敷地內 1, 2차次 시·발굴조사보고서試發掘調査報告書 여주시驪州市·한성문화재연구원漢城文化財硏究院, 2019 여주 신륵사는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로 73에 위치한다. 신륵사 조사당에 대한 발굴조사결과 고려말~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에 6차례 건물이 변화하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1차 건물지 조성 당시 조사당 마당 지형은 현 지표면보다 약 1m 낮았던 것으로 확인되며, 하층대지에서 상층대지를 거쳐 조사당 하부 건물지까지 단을 두고 높아지는 지형으로 추정된다. 1·2차 건물지는 조사당 조성 이전 시기 건물지로 고려말~조선 전기의 모습이다. 3·4·6차 건물지는 조사당 기단부의 변화를 통해서 조선 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변화 모.. 2019. 8. 19.
[발굴조사보고서] 영월 무릉리 유적 《영월 무릉리 유적寧越武陵里遺跡》- 영월 무릉도원면 무릉리(산139번지) 요선정 청석탑 복원정비사업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 강원고고문화연구원江原考古文化硏究院, 2019 유적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리 산 139번지에 위치한다. 주변에는 요선정(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1호)과 무릉리 마애여래좌상(강원도 시도유형문화재 제74호)이 있으며, 요선정 앞에는 비지정문화재인 이 위치한다. 무릉리 청석탑은 4개 옥개석과 5개 탑신석이 잔존하며 시멘트로 보강되어 복원되었다. 발굴조사결과 이곳에 라는 사찰이 존재했음이 확인되며, 통일신라시대 인화문토기와 연화문수막새, 고려시대 범자문수막새 등이 출토되었다. 2019. 8. 14.
동물의 대량 유입과 고려시대 고려가 좀 독특한 면이 있어 지들은 요遼나 금金에서 책봉을 받았지만, 그 내부에서는 또 하나의 조공책봉 체계를 유지했으니, 탐라 울릉도, 그리고 금 건국 이전 여진에 대해서는 시종일관해서 종주국을 자처했다. 종주국이 일방적인 공물의 받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저쪽에서 하나를 가져오면 두 개를 줘야 하는 것이 조공 책봉 체계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요 금에 대해 조공하니, 중국 대륙 남쪽 송宋과의 관계가 참말로 오묘하다. 이게 조공 책봉 관계도 아니면서 긴 것 같은 묘한 관계. 양국 국교는 나중에야 성립하는데, 송이건 고려건 북쪽 요를 의식하지 않을 수없었다. 송 역시 요에 신속臣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송과 고려 교유는 비외교의 관계가 훨씬 더 활발한 이상한 시스템이 정착한다. 줄기차게 송나.. 2018.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