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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8

정현鄭玄이 말하는 ‘墓[묘]’ 무덤 후한 말기 각종 경전을 주석함으로써 경학經學 분야 일대 거성으로 자리잡은 정현은 그들 경전류에 보이는 墓라는 글자를 다음과 같이 풀었으니 1. 주례周禮 春官宗伯에 보이는 ‘묘대부墓大夫’라는 대목에서 墓라는 글자를 주석하기를“冢塋之地, 孝子所思慕之處” 라 했으니, 이는 무덤 땅을 믜미한다. 효자가 (조상을) 사모하는 곳이다는 뜻이다. 2. 예기禮記 곡례曲禮 상上에 보이는 구절 “適墓不登壟”이라는 구절에 주注하기를 “墓, 塋域”이라 했으니 墓란 선영의 구역을 말한다는 뜻이다. 3. 같은 예기禮記 단궁檀弓 상上에 보이는 구절 “吾聞之, 古也墓而不墳”이라는 말에서 注하기를 “墓, 謂兆域, 今之封塋也” 이는 묘란 무덤 구역을 말한다. 지금의 봉영封塋, 곧 묘역을 말한다 는 뜻이다4. 석명釋名이라는 사전 석장제釋喪.. 2024. 6. 16.
육조 고도 남경南京에서 전국시대 이래 육조 무덤 쏟아져 유적은 남경南京 주성主城 서남쪽 약 25킬로미터 지점에 있으니 강녕구江宁区 강녕가도江宁街道(이전 강녕진原江宁镇)에 속한다. 태강太康 원년(280), 서진西晋이 오吴를 멸하고서 말릉현秣陵县 서남쪽을 잘라서 임강현临江县을 설치하고 이듬해 개칭하여 강녕현江宁县이라 하니 이것이 “강녕江宁” 이라는 지명 비롯함이다. 《건강실록建康实录》《경정건강지景定建康志》《지정금릉신지至正金陵新志》와 같은 지리서 기록을 근거로 보면 육조시대 강녕은 위치가 강녕진江宁镇이며 강릉하江宁河 북쪽이고 강녕하江宁河를 둘러 강구江口로 들어가는 지점이라 도성都城인 건강建康(지금의 남경南京) 서남쪽 중요 요처이고 보호 방벽이다. 거시 지리 관점으로 보면 육조 강녕현이 위치한 강녕진은 장강 동쪽 해안에 인접해 있으며 전국 진한시대 '강동지구' 북서.. 2024. 4. 17.
집단반발에 한 발 물러난 총독부, 묘지규칙 개정 개설 새로운 당국자가 새로운 시정을 통해 얼마나 민정民情에 적절하게 시세의 정곡을 파 고드는 데 힘썼는가는 앞서 살펴본 관제 관련 외에 민의 창달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래에 두세 가지 사항을 싣기로 한다. 1. ‘묘지규칙’의 개정 예로부터 조선의 존족尊族 분묘 존중 사상은 그 뿌리가 자못 깊다. 전통적으로 내려 온 선조를 숭배하는 관념과 [322] 유학에서 전래된 웃어른을 존경하는 관습과 풍수지리설의 관념 세 가지가 결합해, 분묘의 위치와 형상은 현세에서 인륜의 표준이자 미래의 가문의 번영을 지배한다고 여겨 온 것이다. 이로 인해 분묘지를 선정하는 데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몰래 묻거나暗葬 무덤을 훔치는偸塚 일이 성행해, 국토가 황폐해지고 소송이 끊이지 않았으며 공공의 .. 2024. 3. 6.
영산강 유역의 벌집형 고분과 토지이용률 나는 앞서 여러 번 경제적인 이유, 특히 토지 이용률 문제로 신라 적석목곽분이 퇴출되었다고 말했으니, 그에서 비롯되어 봉분 하나에 여러 사람, 특히 부부를 살처분하는 석실분이 등장했다는 말을 했거니와, 이런 문제에 봉착하기는 영산강 유역도 마찬가지라. 실로 희한하게도 저 머나먼 경주 땅에서 경제성 제로인 적석목곽분이 퇴출되던 6세기 무렵, 영산강 유역에서도 똑같은 문제에 봉착했으니, 이들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타개해나가니 그것이 바로 벌집형 고분(아파트형 고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이다. 이 벌집형 고분은 그 자체가 씨족, 혹은 가족공동체라. 봉분 하나에다가 매장주체시설을 많게는 수십 개를 조성한 공동묘지를 말한다. 동시대 다른 곳 공동묘지가 구역으로 중심으로 발달했다면, 이곳은 봉분 하나.. 2024. 1. 24.
교하교성交河故城 인근에서 찾은 조씨趙氏 묘표墓表 석 장 묘표墓表는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글을 써서 묻어 놓은 것이다. 중국 고고학자 황문필은 서북과학고사단 일원으로 1928년 봄과 1930년 봄 두 차례에 걸쳐 투루판 교하고성交河故城 인근 구서溝西·구북溝北·구남溝南의 무덤을 발굴했다. 구북에서 발견한 몇 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6~7세기 이 지역에 거주한 한인漢人 무덤이었다. 동同 시기 투루판 한인들(또는 중국어 사용자들)은 가문 단위로 무덤을 만들었다. 각기 돌로 낮은 담장을 쌓아 영역을 구분하고 이 안에 하나씩 무덤을 조성했다. 이 일족 공동묘지를 영塋이라 부른다. 황문필이 구서에서 발견한 17개 영瑩 중에서 조씨趙氏 가문 공동묘지인 조영趙塋에는 7개 무덤이 있다. 그중 두 번째 무덤에서는 묘표 석 장이 나왔다. 1. 가장 이른 시기 것은 부인 한씨韓氏 .. 2020. 12. 28.
17th Cemetery Found in Japan Archaeologists have been found the remains of more than 1,500 people at a cemetery site in Osaka, which is located on the south-central coast of the island of Honshu, Japan. https://www.google.com/maps/@34.7023236,135.4941055,15.75z Google Maps Find local businesses, view maps and get driving directions in Google Maps. www.google.com Founded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during the Edo period.. 2020.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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