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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집단반발에 한 발 물러난 총독부, 묘지규칙 개정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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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새로운 당국자가 새로운 시정을 통해 얼마나 민정民情에 적절하게 시세의 정곡을 파 고드는 데 힘썼는가는 앞서 살펴본 관제 관련 외에 민의 창달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래에 두세 가지 사항을 싣기로 한다. 

1. ‘묘지규칙’의 개정
예로부터 조선의 존족尊族 분묘 존중 사상은 그 뿌리가 자못 깊다. 전통적으로 내려 온 선조를 숭배하는 관념과 [322] 유학에서 전래된 웃어른을 존경하는 관습과 풍수지리설의 관념 세 가지가 결합해, 분묘의 위치와 형상은 현세에서 인륜의 표준이자 미래의 가문의 번영을 지배한다고 여겨 온 것이다.

이로 인해 분묘지를 선정하는 데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몰래 묻거나暗葬 무덤을 훔치는偸塚 일이 성행해, 국토가 황폐해지고 소송이 끊이지 않았으며 공공의 안녕을 저해하는 상태였다.

이에 병합 당초 ‘묘지규칙’ 을 제정해 그 폐해를 구제하고자 했으나 단속이 급격하게 이루어져 도리어 민심에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었다.

이에 제3기에 들어 1919년(大正 8) 9월 이를 개정했다. 해당 규칙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공공단체에 한해 그 설치와 운영을 허가하고 매장은 공동묘지에만 행하도록 했으나, 이를 개정해 이후부터는 개인이라도 3,000평 이내에 한해 기존의 선조 혹은 배우자의 분묘 옆에 사유 묘지를 세울 수 있게 허가했다.

 
출처 : 국역 조선총독부 30년사(상), 박찬승·김민석·최은진·양지혜 역주 | 민속원 | 2018년 10월 23일, 312쪽 
 

***
 
흔히 총칼로 조선을 억압하고 통치했다는 조선총독부. 생각보다 겁이 엄청 많았다. 들고 일어나면 총칼? 그딴 거 아무 소용없다.

묘지규칙은 앞서 말했듯이 단군조선이래 혁명이었기에 왜 반발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 방향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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