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분榮墳, 출세는 조상 음덕
요새 사가정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이 양반 조선전기 문한文翰의 대명사와 같아 무지막지한 글을 남겼고, 또 조선전기 그 화려한 문물정비에 관여하지 않은 데가 없다. 그 자신은 시에 미친 사람으로 표현하곤 했으니, 그 문집 역시 방대하기 짝이 없다. 이 사가정은 세종이 다음 세대를 대비하고 키운 이른바 집현전 학사 출신이지만, 이 집현전 그룹이 계유정난을 고비로 생사가 갈라졌으니, 사가정은 그가 남긴 글도 그렇고, 실제 행적도 그러해서 물타기 전형이라, 그 자신 성삼문이나 박팽년만큼 비분강개형도 아니고, 그렇다 해서 그 반대편에 서서 정난을 주도할 만한 배짱도 없는 천상 서생 그것이라 막상 계유정난이 났을 때는 대세에 편승해 훈작도 받고 해서 무난한 삶을 살았고, 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상대적으로 정치..
2023. 1. 2.
조선 초기와 후기의 간극, 변계량과 권근의 경우
정우량이 아뢰기를, “선정(先正) 이이(李珥)가 《대학연의(大學衍義)》는 좋기는 하지만 기사체(記事體)에 가깝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승지가 영락(永樂) 원년(1403, 태종3)의 서(序)를 읽으라.” 하니, 신치운이 읽었다. ...... 상이 이르기를, “이 책 발문(跋文)에 들어 있는 사람은 자손이 있는가?” 하니, 윤광익이 아뢰기를, “길창군(吉昌君, 권근(權近))의 자손이 많은데 벼슬하는 자가 있습니다.” 하고, 신치운이 아뢰기를, “세조조의 공신 권람(權擥)과 권제(權踶)가 대제학이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변계량(卞季良)도 자손이 있는가?” 하자, 윤광익이 아뢰기를, “변은 기이한 성이라 지금은 사대부가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정우량이 아뢰..
2022.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