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서 그렇고 조선시대 불교 관련 논급에서 당주堂主라는 말이 흔히 보이는데, 글자 그대로는 건물채 주인이라는 이 말은 요새 불교미술사학계에서 주로 쓰는 용어로는 주불主佛 정도에 해당하며 해당 사찰에서 제일로 치는 신앙 대상이다.
대웅전이 정전인 데서는 석가모니 부처, 비로전인 곳은 비로자나불, 아미타전인 데서는 아미타불을 주불, 다시 말해 堂主로 삼는다.
고려말 조선초 문한文翰에서 명성을 날린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 시문을 모은 전집 격인 《양촌선생문집陽村先生文集》 권 제33 잡저류 애책哀冊이 수록한
석왕사釋王寺 당주堂主 비로자나毗盧遮那와 좌우보처左右補處 문수文殊·보현普賢에 복장腹藏하는 발원문(왕명을 받들어 짓는다) [釋王寺堂主毗盧遮那左右補處文殊普賢腹藏發願文(奉敎撰)]
은 앞서 다룬 민지閔漬(1248~1326)의 국청사 금당주불 석가여래 사리영이기 [國淸寺金堂主佛釋迦如來舍利靈異記] 와 마찬가지로 고려 혹은 조선전기 불상 제작과 그에 즈음한 각종 의식, 특히 불상을 만들고 나서는 그 안에다가 각종 성보聖寶를 안치하는 복장腹藏과 관련한 귀중한 증언을 담았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요한다.
제번除煩하고 전문을 임의대로 문단을 나눠 살핀다.
제불諸佛과 중생은 본래 같은 마음이나 다만 그 미오迷悟가 다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제불은 능히 그 마음으로 중생의 마음을 삼을 수 있으며, 중생 역시 그 마음으로 제불의 마음을 삼을 수 있습니다. 억신億身의 교화가 중생에 접하여 구제되지 않음이 없으니 제불의 마음이 중생에게 따르는 것이 아니겠으며, 일념一念의 선善이라도 부처님에게 감통感通할 수 있으니 중생의 마음이 제불에 합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인심의 미망迷妄이 극에 달했다 할지라도 진실로 일념의 선이 마음 가운데에 싹튼다면 일념의 망妄은 이미 제거되는 것입니다. 일망一妄의 제거는 즉 일진一眞의 나타남이니 비유컨대 벽을 뚫어 창을 내면 밝음[明]이 생기고,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면 빈 데[空]가 있게 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명明과 공空은 밖으로부터 이르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가려진 것을 제거하면 전체가 자연히 나타날 뿐입니다.
다만 각성覺性은 항상 고요하여 왔다갔다 함이 없으므로 반드시 사람의 마음에 느낌이 있은 후에 영靈의 응함이 뚜렷하여지니, 이것은 사람의 마음에 지극한 정성이 있으면 바로 불심佛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은 소상塑像으로, 혹은 불림[範]으로, 혹은 조각으로, 혹은 회화로 불신佛身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경신敬信하는 마음을 쏠리게 하면 부처님의 영험이 이에 감응하는 것입니다. (양촌의 이 말을 현대식 관념으로 치환하면,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변환해야 한다는 말이다. 요컨대 추상은 구상으로 해체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불심佛心을 아무리 입으로 떠들어 봐야 소용없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며 귀로 들을 수 있는 구상이 필요하다. 그런 필요성에 따라 불교조각과 불교회화가 등장한다는 말이다. 불심 혹은 불성이라는 추상이 조각 혹은 그림과 조응하여 무엇을 일으키는 현상을 바로 뒤에서 양촌은 감통感通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정성이 이쪽에 지극하면 그 응함이 저쪽에 나타나 감통의 묘妙는 빠르지 않으면서도 속하게 됩니다. 한 마음은 천백억불千百億佛로 분화할 수 있고 천백억불도 한 마음을 벗어나지 않으므로, 비록 내 마음으로써도 부처님의 마음을 삼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안변安邊에 석왕사釋王寺가 있는데 옛날 진병鎭兵의 비보裨補로서 내가 잠저潛邸(임금이 되기 전에 살던 집)에 있을 때 원찰願刹로 만들기 위하여 다시 새롭게 건조하였더니, 다행히도 천거의 도움과 조종祖宗의 덕을 힘입어 한 가정이 변해 나라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진병의 비보란 전방부대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이 이용하는 사찰이라는 뜻이다. 이 글이 봉교찬, 다시 말해 임금 명령을 받들어썼다 했지만, 이를 보면 왕을 대신해 쓴 대필이다.)
위로는 선세先世를 복되게 하고 아래로는 군생群生을 이롭게 하고자 하여, 삼천불三千佛과 석가삼존釋迦三尊·비로자나삼존毗盧遮那三尊·지장보살地藏菩薩·시부명왕十府冥王을 그림으로 완성하고, 오백나한五百羅漢을 석조石造하였습니다. (석왕사라는 사찰을 새로이 크게 중창하면서 그 안을 채워야 하는 필요조건들을 나열한다. 오백나한만 돌을 깎아서 만든 반면에 다른 주요 부처와 보살, 그리고 명부 세계를 관장하는 지장보살과 그 권속은 그림으로 만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돈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 돈이 없어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또한 이제 옛날에 만든 당주堂主 비로자나만이 홀로 모셔지고 좌우 보처補處가 없으므로 이에 다시 문수文殊·보현普賢 두 보살존상을 목조木造하였습니다. 외식外飾이 이미 장엄하니 중장中藏 또한 근엄해야 하므로 발원하는 생각을 글로 적어 복중腹中에 넣습니다. (이로 보아 석왕사는 비로자나를 주불로 봉안한 사찰이었다. 비로전이 정전이었다. 이 비로자나불만은 이전부터 봉안한 조각이었을 것이다. 한데 이 비로자나가 좌우 협시보살이 없다. 이 또한 틀림없이 돈 문제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부처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모름지기 시봉하는 협시보살을 양쪽에 거느려야 가오가 서는 법, 한데 어찌된 셈인지 이전 석왕사에는 비로자나 한 분만 덜렁 모시고 협시보살이 없었다. 돈이 없어 이랬을 것이다. 나중에 여유가 좀 생기면 만들겠다 했겠지만 안변 같은 촌구석에 무슨 돈이 있겠는가? 어영부영하다가 단독불인 시대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중창하는 김에 그 좌우협시로 보현 문수를 만들어 한 분은 코끼리에, 한 분은 사자에 태운 것이다. 두 협시는 목조라는 것으로 보아 중창 이전 비로자나 역시 목조가 아녔나 싶다. 완성하자 복장은 이참에 비로자나까지 다 해서 넣었다. 복장의 새로운 일면을 본다.)
오직 원컨대 선대의 조종께서는 먼저 신덕神德의 선가仙駕를 짝하여 내려와서 법계法界의 모든 생명을 정토淨土에 오르게 하시고, 종친宗親 재상과 조야朝野의 신민이 다 함께 복된 경사를 누리며, 전쟁이 영원히 종식되고 국운이 길이 편안하며, 대대 손손을 영원히 보우하사 마침내 자비의 빛을 바라보아 묘과妙果가 실제로 이룩되게 하옵소서. (조상의 영령이 하늘, 혹은 서방극락정토 같은 데 머무르며 후손을 보살피는 존재로 인식했음을 본다. 그 조상의 영령이 지상에 강림하기 위해서는 탈것이 필요한 법. 당시 자동차 비행가가 수레였으니 하늘을 붕붕 날아 착륙하므로 선가仙駕라 했다. 저 모습은 미륵하생을 연상케 하는 구절이다.)
오직 원컨대 대성大聖께서도 이 같은 정성스러운 소원을 살피시고, 제 오늘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으시며, 제 큰 소원으로 하여금 만족하고 원만하게 하시어 영원히 다함이 없도록 하시옵소서. 발원發願하여 이미 삼보三寶에 귀명례歸命禮 하였나이다.
[주-D001] 복장(腹藏) : 불상(佛像)을 만들고 그 배 속에 주문을 써서 넣는 것을 말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송하경 (역) | 1979
諸佛衆生。本同一心。但迷悟不同爾。故諸佛能以其心。而爲衆生之心。衆生亦可以其心。而爲諸佛之心。億身之化無非濟接於衆生。則諸佛之心非順於衆生歟。一念之善亦可感通於諸佛。則衆生之心非合於諸佛歟。蓋雖人心迷妄之極。苟一念之善萌於中。則一念之妄已除也。一妄之除。卽一眞之現。譬如鑿墻而牖明斯生。鑿地而穴空斯在。明與空非自外至。a007_290d但去其弊而全體自現爾。但覺性常寂。無去無來。必因人心之感。而後靈應赫然。是人心誠願之所湊。卽佛心之所在也。故或塑或範或雕或繪以成佛身。而歸人心之敬信。則佛之靈變於斯應矣。誠格於此。應現於彼。感通之妙。不疾而速。一心可分千百億佛。千百億佛不出一心。雖以吾心爲佛之心可也。安邊有釋王寺。古鎭兵裨補也。予在潛邸。嘗爲願刹。重新營搆。幸賴天地之佑祖宗之德。化家爲國。以致今日。思欲上福先世。下利群生。畫成三千佛。釋迦三尊,毗盧遮那三尊,地藏菩薩,十府冥王。石造五百羅漢。又今a007_291a舊造堂主毗盧遮那。獨尊而無左右補處。於是又以木造文殊,普賢兩大菩薩尊像。外餙旣嚴。中藏亦謹。爰書願意。實于腹中。惟願先代祖宗先耦神德仙駕。下及法界有情超登淨刹宗親宰輔朝野臣民。共膺福慶。兵塵永息。國祚永康。世世生生。保佑無疆。終覩慈光。證成妙果。惟願大聖照此誠願。以吾今日之心爲心。令我大願具足圓滿。永無窮盡。發願已歸。命禮三寶。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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