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남월국9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2) 내가 광동성으로 간 까닭 내가 처음으로 광동성 광주로 남월국 유적 답사를 가기는 2007년 무렵이 아닌가 하는데 자료를 찾아봐야겠다. 내가 이곳을 찾은 까닭은 그 직전 요서 지역 탐방에서 감발한 바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양에서 출발해 오한기 적봉을 거쳐 산해관에 이른 이때 탐방에서 나는 말로만 듣던 진황도와 인근 수중현 일대 소위 진·한秦漢 시대 진시황·한무제 시대 행궁行宮 유지를 둘러봤다. 금산취며 흑산두 일대에서 중국 고고학이 찾았다는 이들 행궁 유적을 보니 내가 놀란 점은 첫째, 그들 행궁이 조영·운영된 시기가 위만조선과 거의 겹치고, 둘째 그 위상이 행궁이라는 말에 어울리게끔 높았으며, 셋째 유구·유적이 소위 현지의 토속미를 풍기기는 했지만 완연한 진·한의 소위 중국풍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넷째.. 2023. 6. 14.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1) 남월국은 위만조선의 투사물이다 지금 그 정확한 영역, 혹은 중심지가 논란인 위만조선이 존재하던 무렵, 중국 남방 지금의 광동성 광주 일대에는 남월南越이라는 왕조가 존재했다. 이 남월은 여러모로 위만조선과 일란성 쌍둥이를 방불하는 판박이다. 첫째, 위만조선이 중국계 연燕나라 망명객인 위만이라는 자가 수립한 왕조이듯이, 남월 역시 지금의 산동성 출신인 조타라는 자가 현지 관리로 파견되어 일하다가 그 자리에서 자립해 이룩한 왕조 국가다. 둘째, 그런 까닭에 위만조선이나 남월은 모두 현지인과 중국계 이민자들의 혼합 정권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하이브리드 왕조인 셈이다. 셋째, 그 성립 시기 역시 거의 같다. 두 왕조 모두 시황제에 의한 진秦 제국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이 붕괴하면서 우후죽순으로 그 영역 혹은 주변부에서 생겨난 독립정권들 중 .. 2023. 6. 14. 남월국왕묘南越國王墓, 서한의 유물과 서한시대 유물은 다르다 2007년 광동성廣東省 광주廣州 남월국南越國 문물 답사는 나한테는 여러 가지를 일깨운 기회였다. 남월국은 그 태동 시기, 태동 주체, 멸망 시점이 위만조선과 일란성 쌍둥이다. 남월국 창건주 조타는 산동성 출신으로 남월국에서 독립해 남월국을 세웠다. 현지 민족과의 복합세력이 구축한 왕조로 100년간 지속하다가 기원전 111년인가 한 무제에게 멸망당하고 그 땅에는 7군이 설치되었다. 위만조선 역시 이와 판박이라, 아마도 북경 일대 출신일 가능성이 많은 위만이 기자조선으로 망명해 처음에는 그 서쪽 방 100리를 분봉받았다가 이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해 위만조선을 열었으니, 그러다가 역시 100년만에 한 무제에게 망하고는 그 땅에 4군이 설치되었다. 남월국을 정벌한 장수가 그대로 위만조선 정벌군 상층부를 형성했으.. 2019. 3. 2. 이전 1 2 다음 반응형